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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박2일 '날밤' 연구…성균관대 학생들 ‘해카톤’ 지켜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성균관대 학생들이 3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해카톤 프로젝트'에서 시제품을 완성한 후 교수와 변리사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성균관대 학생들이 3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해카톤 프로젝트'에서 시제품을 완성한 후 교수와 변리사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3일 오전 3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 올림픽파크텔. 호텔 앞 왕복 8차선 도로는 자동차가 거의 없이 한산했다. 호텔 1층 커피숍과 상점도 불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호텔 4층 아테네홀은 불이 훤했다. 홀 안엔 20대로 보이는 70여 명이 4~6명씩 테이블에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한 테이블에선 골판지를 오려내 건축물 비슷한 모형을 만들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에선 노트북 화면을 보고 얘기 중이었다. 중간중간 엎드려 자는 이도 이따금 눈에 띄었다.

해킹 하듯 아이디어 나누며 마라톤식 끝장 연구 #학교 밖 호텔서 밤 새우며 18시간 집중토론 #학기당 60명 신청…학점 없어도 입소문 꾸준 #사회문제 발굴해 해결방안 시제품으로 완성 #사용시한 알려주는 콘텐트렌즈 등 12건 특허 #창업·취업 효과도…"이게 살아 있는 공부"

이들은 성균관대 학생들이라고 했다. 얼굴에 피로가 역력한 한 학생에게 물으니 전날 오후 6시부터 밤을 새우고 있다고 했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학교도 아닌 호텔에서 이 시간에 뭘 하는 것일까.

이들은 성균관대가 진행하는 ‘융합기초프로젝트’ 참가자들이다. 학기별로 약 두 달간 다양한 사회 현안을 발굴해 이를 해결할 방안을 시제품으로 만들고 발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4년 2학기에 시작됐다. 학점이 인정되는 강의가 아니다. 주로 휴일에 이뤄진다. 전공 간 융합이라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한 조에 최소 3개 이상의 학과·전공 학생을 섞는다.

이날은 23일 성과발표회를 앞두고 시제품 완성하는 날이었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배상훈 성균관대 대학교육혁신센터장(교육학과 교수)은 “학교를 벗어나 창의적인 생각을 하라는 의미에서 외부 장소를 빌렸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참가팀 중 하나인 ‘퍼스트펭귄’은 해양 오염과 선박 고장을 일으키는 해조류 ‘괭생이모자반’을 쉽게 제거하는 방법을 고안 중이었다. 이들은 라면박스 크기의 수조에 물을 채우고 괭생이모자반 역할을 대신할 돌자반을 띄웠다. 여기에 갈고리가 달린 끈을 띄우고 선풍기를 틀었다. 물결이 생기면서 돌자반이 갈고리에 조금씩 걸렸다. 이 팀의 김우영(20·글로벌경제학 2)씨가 “갈고리를 더 촘촘히 달아야 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이에 또다른 팀원인 박지성(20·글로벌바이오메디컬엔지니어링 2학년)씨는 “배에 줄을 연결해 해조류를 한 곳으로 모으고서 수거하는 게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퍼스트펭귄은 10분 정도 토론 끝에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집에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놓고 나오면 알려주는 스마트 문고리를 개발 중인 성균관대 '나는 가수다'팀이 박길환 변리사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집에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놓고 나오면 알려주는 스마트 문고리를 개발 중인 성균관대 '나는 가수다'팀이 박길환 변리사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 임현동 기자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박희선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도 그중 하나였다. 휴대전화·지갑 따위를 안 챙긴 채 외출할 때 진동이 울리는 '스마트 문고리'를 개발 중인 '나는 가수다'팀에게로 박 교수가 다가섰다. 이 팀의 최재혁(21·수학과 2학년)씨가 “이 시스템이 상용화 되면 중요한 물건을 두고 외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박교수에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박 교수는 “스마트 문고리식와 같은 스마트홈은 대기업에서 10년 전부터 해온 아이템이다. 참신성이나 독창성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 지적에 팀원들은 보완점과 차별화 포인트를 논의했다. 박 교수 외에도 변리사·연구원 등이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줬다.

이날은 융합기초프로그램의 다섯 번째 단계이자 하이라이트인 ‘해카톤’(‘해킹’과‘마라톤’을 합친 신조어)이다. 학생들이 1박2일간 밤샘 작업으로 시제품을 제작하고 전문가 피드백을 거쳐 보완점을 찾아 수정하는 날이다. 해카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 등에서도 자주 개최된다. 여러 사람이 해킹하듯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것을 마라톤처럼 장시간 이어가는 것이다.

학생들은 전날 오후 6시부터 이날 낮 12시까지 18시간 동안 연구에 몰입했다. 학생별로 호텔 방이 배정돼 있었지만 팀원 전체가 자리를 비운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책상이나 홀 한편의 소파에서 잠시 쪽잠을 청하는 정도였다. 눈은 토끼처럼 빨갛게 충혈되고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융합기초프로젝트의 하나인 해카톤 프로그램에 참여해 1박2일 동안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임현동 기자

성균관대 학생들이 융합기초프로젝트의 하나인 해카톤 프로그램에 참여해 1박2일 동안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들은 왜 힘겨운 해카톤을 하게 된 것일까. 배 교수는 “극한 상황에서 창의력이 발현된다는 교육 이론도 있다. 몇 주 동안의 고민에도 안 풀리던 문제가 1박2일 밤샘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학생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퍼스트펭귄팀의 강민수(24·화학공학 3)씨도 “피곤함이 몰려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신기하게도 새 아이디어가 ‘반짝’하고 떠올랐다”고 말했다. ‘도시 조성 제안 어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인 이재희(교육학 3)씨는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맑다. 누가 시켜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매력 때문에 기초융합프로젝트엔 매학기 60명 이상이 신청한다. 전공·학문의 경계를 넘어 사회문제를 탐구하고 해결책을 찾아본다는 취지에 끌려 신청하는 학생이 많다. 따로 홍보를 안 해도 입소문을 통해 매 학기 새로운 학생들이 찾아온다.

학생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시제품을 완성해 나간다. 임현동 기자

학생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시제품을 완성해 나간다. 임현동 기자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특허 출원이나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콘택트렌즈의 사용 시한을 알려주는 ‘착한 렌즈통’, 교통사고 발생률을 낮추는 횡단보도 디자인 등 12건이 이미 특허 출원을 마쳤다. 아기 피부에 좋고 환경오염도 덜한 천 소재의 기저귀를 쓰자며 기저귀 세탁·배달 서비스 개발에 도전한 학생들은 실제로 창업에 도전 중이다.

프로젝트 참여 경험 덕분에 글로벌 기업에 취업 혹은 인턴 근무 기회를 얻기도 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보쉬에서 지난 4월부터 인턴으로 근무 중인 유재연(경영학 4)씨가 이런 사례다. 유씨는 2년 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건물 화재시 안전한 탈출을 돕는 비상조명을 연구해 특허를 출원했다. 유씨는 “프로젝트에 참여 전엔 내게 주어진 문제의 정답만 찾는 ‘죽은’ 공부를 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문제를 직접 발굴해 해결하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라는 것을 알았다. 서로 전공이 다른 학생들끼리 모여 창의력을 발휘하고 협동심을 키우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전민희·하준호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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