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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만 누리는 멋진 경험, 함께 나누고 싶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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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08면

지금까지 영상으로 만든 공연 작품 포스터 앞에 앉아 있는 정성복 패뷸러스 대표.

지금까지 영상으로 만든 공연 작품 포스터 앞에 앉아 있는 정성복 패뷸러스 대표.

패뷸러스(fabulous)는 ‘기가 막히게 좋은’ ‘굉장한’이란 뜻이다. 정성복(42) 대표가 이 단어로 회사 이름을 지은 건 최고로 좋은 것만 만들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멋진 예술을 한순간만, 한정된 곳에서, 한정된 사람들만 즐긴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더 많은 사람이 더 손쉽게 행복한 경험을 공유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저희가 3D 입체·초고화질 4K·VR 영상으로 공연을 찍는 이유입니다.”

첨단 영상 제작사 패뷸러스가 칸과 베니스에 간 이유

2010년 4월 시작된 패뷸러스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그 해 가수 휘성과 2AM의 무대를 각각 3D 영상으로 선보였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뮤지컬 ‘모차르트 락 오페라’를 역시 3D로 제작해 제작진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 이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SM타운 공연 실황을 영화로 옮긴 ‘I AM’(2012), 예술의전당이 영상으로 상영한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2014)과 뮤지컬 ‘명성황후’ 20주년 공연(2015), 스크린X(3면 영상)로 만든 동방신기·슈퍼주니어 공연(2015), DDP에서 열린 샤넬의 패션쇼와 디올의 에스프리 전시(2015), ‘태양의 서커스’ 창시자 노만 라투렐이 만든 승마 아트 서커스를 3D·4K·스크린X로 작업한 ‘오디세오 바이 카발리아’(2016) 등을 잇달아 선보이며 자신만의 보폭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올해는 유럽의 대표적인 예술 축제로 꼽히는 제57회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와 제70회 프랑스 칸 영화제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참가하며 색다른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행진에 중앙SUNDAY S매거진이 발맞춰 걸어 보았다.


패뷸러스가 첨단 영상방식으로 찍은 작품들.

패뷸러스가 첨단 영상방식으로 찍은 작품들.

칸 영화제서 입체 안경 쓰고 보는 뮤지컬 영상 선봬

지난달 22일 오후 5시 칸에 있는 아케이드1 극장. 칸에서 3D·4K 영화 상영이 가능한 두 곳 중 하나다. 이제 30분 있으면 패뷸러스가 3D·4K로 만든 프랑스의 대표적인 송스루(노래로만 이어지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프리미어 시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지난해 진행된 18주년 기념 공연을 5개국 120명의 스태프가 14대의 특수 카메라와 3대의 테크노 크레인을 이용해 찍었다. 이날 시사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 제작자인 니콜라 탈라를 비롯해 프랑스의 전설적인 극작가 뤽 플라몽동, 작곡가 리카르도 코치안테, 에스메랄다 역의 히바 타와지, 콰지모도 역의 안젤로 델 베치오 등 관계자와 각국 영화인들이 참석해 3D 안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탈라는 “1998년 초연 당시 DVD로 만든 이후 영상물은 없었고 최신 기술과 포맷을 적용한 영상물로 신규 시장 진출을 생각하고 있었다”며 “티켓 값이 부담스러운 관객들이 보다 쉽게 공연에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는 마이런(Myron·정성복 대표)의 생각에 공감했고,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예술성과 기술력을 모두 갖춘 패뷸러스와 함께 일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생생한 영상을 본 사람들은 작품과 출연 배우에 대한 애정이 생겨나 결국 공연을 직접 보고 싶어할 것이고 이것이 결국 공연 시장을 키우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경을 쓰고 보는 뮤지컬 영상은 독특했다. 무대 앞쪽에 서 있는 주인공의 존재감이 확연히 부각됐다. 상하좌우 종횡무진 오가며 배우들의 표정과 디테일한 몸 연기를 잡아내는 카메라 워크는 통쾌했고 편집은 스피디했다. 초연부터 프롤로 주교역을 하고 있던 다니엘 라부아의 강렬한 표정 연기를 특히 생생하게 잡아냈다. 심지어 무대 뒤에서 객석 쪽으로 훑어 내려오는 시각은 정작 공연장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클래식 부문 최우수 녹음기술상을 두 차례(2008·2012) 수상한 사운드미러의 황병준 대표는 ‘대성당들의 시대’ ‘아름답다(Belle)’ ‘춤을 춰요, 나의 에스메랄다’ 같은 대표 넘버들에 윤기를 보탰다. 중간 중간 터져 나오는 박수 소리도 마치 객석에 앉아 있는 듯 흥을 돋웠다.

그런데 130분 간의 시사가 끝나자마자 정 대표가 객석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화면 비율이 약간 어긋났고 극장 영사기도 4K 화질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영화제 특성상) 사전에 시연해 볼 수가 없었다. 원본은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말씀드린다”고 무척 아쉬워했다.

“사람들이 뭘 보고 싶어할까 가장 먼저 생각”

그렇다면 제대로 구현된 3D·4K 영상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학동역 근처에 있는 패뷸러스 본사를 찾아갔다. 시사실 TV에서 영상이 흘러나오자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치 눈 앞에 배우가 서 있는 듯, 쨍하게 선명했다. “올 하반기부터 프랑스를 시작으로 전세계에 배급될 예정”이라고 미소 짓는 정 대표에게 물었다.

얼마나 찍은 건가.
“오후 리허설 때, 저녁 정식 공연 때, 그리고 하루종일 리허설을 하며 찍었다. 정식 공연 때는 관객에 양해를 구하고 와이어캠도 사용했다. 콘티를 치밀하게 짜놓고 빨리 찍는 게 특기다.”  
3D 카메라 활용이 어렵지 않나.
“렌즈가 두 개니까 고려할 게 많다. 영화 ‘아바타’를 찍을 때 사용한 미국 제품 3ALITY사 제품을 쓴다. 워낙 고가라 빌려쓰기도 조심스럽다.”  
또 무슨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역시 3D·4K로 찍은 프랑스 뮤지컬 ‘적과 흑’, 벨기에 뮤지컬 ‘피터팬’도 지금 후반 작업중이고 하반기에 공개한다. 또 가을에는 러시아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를 찍으러 간다. 모두 세계적인 문호의 작품들인데, 이런 대작들로 ‘헤리티지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  
3D 영상 제작업체들이 많을 텐데, 왜 패뷸러스인가.
“나는 사람들이 뭘 보고 싶어할까, 또 제작자들은 뭘 보여주고 싶어했을까 생각한다. ‘어떻게 내 맘을 알았니’하고 말하는 제작자도 있었다.”  
어떻게 알았나.
“작품을 두세 번 보면 보인다. 어디를 어떻게 강조하고 화면은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그리고 각 분야 톱들과 일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명성의 외국인, 국내 최고 인재들과 팀을 꾸린다. 우리 회사 정현철 부사장만 해도 영화 ‘패딩턴’ ‘토르’ 등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 전문가다.” 
원래 영상에 관심이 많았나.
“음악을 좋아했다. 대학(서강대 정외과)에 가서 본격적으로 했다. 2004년 제1회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서 프로듀서로 일했다. 2007년 만든 음반 ‘헤리티지’가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SK텔레콤에서 T스토어 오픈할 때 영상물에 이런저런 조언을 했는데, ‘그럼 직접 해봐라’는 얘기에 시작한 셈이다.”  
타이틀에 ‘감독’으로 나온다.
“영상 감독이니까. 그리고 공연 제작사와는 파트너다. 쉽게 말해 ‘50대 50’, 프랑스어로 ‘쌩콩, 쌩콩’이다.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는 소유권이나 공동소유권을 갖고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보다 잘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꼭 필요하다 싶으면 수익분을 모두 추가촬영 경비로 쏟아부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하니 외국에서 다음에 또 하자고 연락이 온다. ”
시행착오는 없었나.
“처음 ‘모차르트 락 오페라’를 3D로 만들 때 잘 몰라서 DVD 수입의 6%만 받는 것으로 한 것이다. 지금은 무조건 ‘쌩콩, 쌩콩’이다. 첫 작품 만들 때 제작비가 10억인데, 만약 제작사가 맘에 안 들면 작품은 그냥 버리고 10억도 못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악착같이 해냈다. 프랑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며 기립 박수를 치더라.”
뭘 보여주고 싶었나.
“새로운 경험, 몰입에의 경험이다. 패뷸러스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회사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하이퍼파빌리온’관을 설치한 것도 세계적인 미디어 작가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차원의 관람 방식을 사람들이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클레르 말뤼유의 ‘일반적 기후’(2017), Courtesy of HyperPavilion, Venice, Avec le support du DICREAM

클레르 말뤼유의 ‘일반적 기후’(2017), Courtesy of HyperPavilion, Venice, Avec le support du DICREAM

테오 트리안타필리디스의 ‘하우 투 에브리씽’(2017), Courtesy HyperPavilion, Venice

테오 트리안타필리디스의 ‘하우 투 에브리씽’(2017), Courtesy HyperPavilion, Venice

로렌스 렉의 ‘지오멘서 4K’(2017), Commissioned for the Jerwood/FVU Awards, Courtesy the artist

로렌스 렉의 ‘지오멘서 4K’(2017), Commissioned for the Jerwood/FVU Awards, Courtesy the artist

뱅상 브로퀘르의 ‘리플렉션-구글’(2017), Courtesy HyperPavilion, Venice

뱅상 브로퀘르의 ‘리플렉션-구글’(2017), Courtesy HyperPavilion, Venice

베니스에선 현대미술 작가 11인 디지털 작품전

지난달 19일 베니스 마르코폴로 공항에서 내려 수상버스 타러 가는 길 벽면은 짙푸른 입간판으로 가득했다. 패뷸러스의 ‘하이퍼파빌리온(HyperPavilion)’을 알리는 전시물이었다. 하이퍼파빌리온은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이 열리는 아르세날레 북쪽에 자리를 잡았다. 바로 옆은 구글 전시관이었다. 중세부터 조선소로 사용된 거대하고 고풍스런 벽돌 건물 안에는 세계적인 디지털 미디어 작가 11명의 작품들이 1000평에 달하는 전시공간과 맞서고 있었다.

큐레이터인 필립 리스-슈미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서 어떤 예술이 펼쳐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전시”라며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아쉽게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작품을 본 관람객들이 얻고자 하는 해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안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면 우선 쥘리엥 프레비유의 ‘다음엔 뭘 할 거니?’가 보인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무용수들이 스마트폰의 잠금장치를 푸는 것과 같은 패턴을 동작으로 표현 중이다. 그 뒤로 지름이 14m에 달하는 360도 원통형 설치물 ‘일반적 기후’가 있다. 작가 클레르 말뤼유는 세계 각지의 기후 정보를 알고리즘으로 분석, 5개의 프로젝터를 통해 드로잉으로 그려낸다.

NASA와의 협업으로 ‘현존하는 가장 검은색’인 나노블랙을 만들어 작품에 활용하는 프레데릭 드 와일드는 테러로 다리 하나를 잃은 나노블랙 조각상 ‘생각하는 사람’을 선보였다. 그는 인터넷에 드러나지 않아 일반인은 존재조차 모르는 해커들의 이너서클 다크 웹(dark web)을 모니터들로 보여주며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알리는 것도 작가의 임무”라고 주장한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주장하는 인공지능의 머릿속을 4K 영상으로 구현한 로렌스 렉의 ‘지오멘서’는 섬뜩했다. AI가 아티스트가 되려고 마음먹는 순간 인류의 종말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3ALITY사의 3D 입체 영상용 카메라.

3ALITY사의 3D 입체 영상용 카메라.

아람 바르톨의 ‘우는 천사들’은 “누군가 우리를 매일 염탐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인터넷 마케팅 브랜드 회사들의 로고가 빽빽하게 인쇄된 카펫 위에 설치된 거울로 감싸진 장갑차는 관람객의 신분증을 검사하는 군인 복장의 퍼포먼서들과 함께 정보화 사회의 이면을 은유한다.

몬트리올 대학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랩NT2’ 역시 디지털 시대의 그림자를 말한다. ‘왓 이프(What if?)’라는 작품은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의 문제점, 즉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게 되는 세상에서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공연을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로 찍고 있는 모습.

공연을 다양한 종류의 카메라로 찍고 있는 모습.

젊은 크리에이터들에게 희망 주고파  

BBC 월드서비스라디오가 가장 주목할 4개 전시관 중 하나로 ‘하이퍼파빌리온’을 꼽았다.
“작가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최대한 지원한 덕분 아닐까. 원통형 캔버스도 설치했고 홀로그램도 설치해 주었다. 벌써 작품도 하나 팔렸다. 베니스 이후 세계 투어를 준비중이다. 마찬가지로 현대미술도 많은 사람들과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 분야는 크리에이터들이 많이 필요하다. 재주있는 젊은이들과 일하고 싶다. 공급자와 소비자의 니즈를 맞춰주면 구매가 일어난다. 그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감각을 우리의 노하우로 세계 시장에 파는 거다. 물론 ‘쌩콩, 쌩콩’이다. 하하.” ●

칸(프랑스)·베니스(이탈리아)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패뷸러스·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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