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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없이 아이라인 그리기는 신공이었네

중앙일보

입력

첫 회가 뷰튜버 세계에 대한 개론이었다면, 이번부터는 실전이다. 첫 미션은 겟레디위드미(Get Ready With Me). 그러니까 외출하기 전 평소에 하는 화장과 머리 준비과정을 세세히 소개해주는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다. 뷰튜버의 ‘일상’을 친근하게 소개해주는 게 핵심이라 복잡한 기획과 편집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입문자가 시작하기 좋은 영상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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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가 제일 중요해요”

카메라 앞에 서자 강의를 맡은 황승찬 PD의 당부가 귀에 맴돌았다. 하지만 이미 코믹한 이미지의 ‘씬님’, 전문적인 화장 기술을 자랑하는 ‘포니’와 ‘이사배', 그리고 친근한 옆집 언니 느낌의 ’밤비걸‘까지. 레드오션인 시장에서 어떤 개성의 캐릭터를 선택해야 할지 난감했다. 해외 대학을 졸업한 이력을 털어놓자 한국말이 어눌한 교포부터 화알못(화장을 알지 못하는 사람) 등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어느 것도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코믹한 이미지의 씬님. [사진 ssin 씬님 유튜브]

코믹한 이미지의 씬님. [사진 ssin 씬님 유튜브]

'옆집 언니' 이미지의 밤비걸. [사진 Bambigirl 밤비걸 유튜브]

'옆집 언니' 이미지의 밤비걸. [사진 Bambigirl 밤비걸 유튜브]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mbc 특수분장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뷰튜버 이사배 [사진 Risabe 이사배 유튜브]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mbc 특수분장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뷰튜버 이사배 [사진 Risabe 이사배 유튜브]

“그렇다고 본인이 아닌 옷을 입으면 안돼요. 아무리 연기를 해도 다 꾸민 게 드러나거든요.”

인턴기자의 뷰티 유튜버 도전기② #카메라 앞에서 화장은 고수의 묘기 #앵글과 배경, 자연광까지 설정해야 #10분짜리 영상 해질 때까지 못 찍어

결국 자연스러운 매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평소 얼굴 표정을 많이 쓰고 혼자서도 잘 중얼거린다는 소리를 듣는 터. ‘수다스러운 아줌마’라는 캐릭터가 떠올랐다.

일단 컨셉트를 정했으니 다음은 그에 맞는 촬영 구도를 선택할 차례다. 그냥 카메라 앞에서 화장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구도에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 예를 들어 수더분한 이미지의 뷰튜버 ‘미아’는 화면에서 얼굴이 1/3이 조금 넘게 차지한다. 카메라의 각도도 위에서 아래로 시청자와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가까워 보인다. 그 결과, 화장에 집중하기 좋고 캐릭터도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반면 패션 유튜버 ‘제니’의 영상은 아래에서 위를 향해 찍은 형태로, 인물 외에 배경도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패션 악세사리로 인테리어를 한 모습이 패션 유튜브 영상임을 확인시켜준다. 또아래에서 영상을 찍는 만큼 상체 전반까지 화면에서 잡혀 거리감이 느껴진다. 시크한 그녀의 이미지에 걸맞는 구도인 셈이다.

수다스럽고 친근한 이미지의 뷰튜버 미아. 얼굴이 화면의 1/3 가량 차지해 시청자가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한다. [사진 Made in Mia 미아 유튜브]

수다스럽고 친근한 이미지의 뷰튜버 미아. 얼굴이 화면의 1/3 가량 차지해 시청자가 더욱 가깝게 느끼게 한다. [사진 Made in Mia 미아 유튜브]

“카메라 빨도 무시할 수 없죠.”

카메라 빨? 연예인들이 데뷔 후 점점 예뻐진다는 일명 ‘카메라 마사지’라는데. 카메라 화각에 따라 얼굴이 다르게 보여, 자신에게 맞는 화각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가령 18-50mm 렌즈를 기준으로 18mm에 가까울수록, 그러니까 줌 인을 당길수록 화면은 가로로 넓어진다. 볼살이 있다면 피해야할 각도다. 반면 50mm에 가까울수록 화면은 세로로 길어져 긴 얼굴형의 경우 삼가는 것이 좋다. 자, 이제 거울을 앞에 놓고 냉정해져야 했다. 동그란 얼굴에 통통한 볼살을 확인하는데 1초. 조용히 바짝 당긴 줌을 풀어 카메라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렌즈에 따라 왜곡되는 얼굴모양. [사진 Gizmodo 홈페이지]

렌즈에 따라 왜곡되는 얼굴모양. [사진 Gizmodo 홈페이지]

"자연광이 가장 예쁘게 나와요."

좀 더 예뻐보일 수 있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못하랴. 볕이 가장 좋은 12시부터 카메라 앞에 선 이유였다. 그런데 막상 찍은 영상을 확인해 보니 뒷배경이 엉망이었다. 방 안에서 햇빛을 정면으로 받을 곳만 생각하다 등뒤에 너저분하게 옷들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부랴부랴 큰 천을 가져와 흉물을 덮었다. 그래도 영 폼이 나질 않았다. 패턴이 있으면 좀 나을 듯 싶어 이런저런 천을 덮어보는 사이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지는 해의 그림자처럼 화면 속 얼굴엔 다크서클이 도드라보였다.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껐다.

뒤에 배경도 엉망인데다 조명도 미스다. 해가 지자 화면이 너무 어둡게 나와 결국 이날 촬영본은 쓰지 못했다. 

뒤에 배경도 엉망인데다 조명도 미스다. 해가 지자 화면이 너무 어둡게 나와 결국 이날 촬영본은 쓰지 못했다. 

다음 날 뒷배경을 다르게 해 찍어보았다. 보다 정리된 인테리어가 안정감을 준다. '친근하고 수다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얼굴을 화면 1/3 가량 차지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 날 뒷배경을 다르게 해 찍어보았다. 보다 정리된 인테리어가 안정감을 준다. '친근하고 수다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얼굴을 화면 1/3 가량 차지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음날 재도전에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 위치를 잡았다. 정면 자연광을 포기하고 책장이라는 인테리어를 택했다. 화면 반을 차지하는 책장을 설정으로 꾸몄다. 어떤 책이 '수다스러운' 이미지에 적합할까 고민하다 만화책 몇 권을 집어 넣었다. 나머지 빈 화면에는 적당한 소품을 찾다가 꽃병과 다기(茶器)를 놓았다. 만화책과의 대비라니! 알듯 말듯한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아이라인 그리기는 묘기에 가까웠다. 평소 한 손으로 눈꺼풀을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라인을 잡고 그리는데, 이번에는 손거울도 잡아야 해 손이 모자랐다. 

아이라인 그리기는 묘기에 가까웠다. 평소 한 손으로 눈꺼풀을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라인을 잡고 그리는데, 이번에는 손거울도 잡아야 해 손이 모자랐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평생 화장대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해왔는데 그 위치에 카메라가 떡하니 있으니 영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섀도우는 한 손으로 손거울을 들어 그럭저럭 바를 수 있었지만 아이라인은 원래 한 손으로 눈꺼풀을 누르고 그리는지라 불가능에 가까웠다. 카메라 위에 손거울을 올려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묘기를 부려가며 손거울을 집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 부분은 촬영을 생략했다.
발색도 어려웠다. 평소 바르는 아이섀도우 양으로는 카메라에 색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계속 덧대어 발라도 소용 없었다. 연예인들이 소위 '빡세게' 메이크업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편으로 색감을 딱 잡아내는 뷰튜버들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결국 끝에 가서는 두 눈이 시퍼럴 정도로 섀도우를 발라야 화면에서 티가 났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편집하는 내내 한숨이 나왔다. 성공의 골든 라인이라는 평균시청시간 6분을 '껌이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내가 봐도 재미가 없었다. 게다가 거울 없이 화장을 하다보니 가장 기본인 아이라인조차 울퉁불퉁했다. 그래서인지 피드백 시간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렌즈를 보지 않고 카메라 LED화면을 응시해 시청자와 아이컨택트를 하지 않는 모양새다. 

렌즈를 보지 않고 카메라 LED화면을 응시해 시청자와 아이컨택트를 하지 않는 모양새다. 

"일단 소통한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첫 펀치부터 스트라이크. 화면 속의 나는 렌즈가 아닌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캐논 70D는 LED화면을 렌즈쪽으로 돌려 본인의 모습을 보는, 일명 '셀카모드'가 가능하다. 본능적으로 내 모습을 확인하려 화면을 본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청자가 이걸 왜 봐야 하죠?"
두 번째도 스트라이크. 실은 어떻게 하면 예쁘게 나올까만 고민하며 카메라만 만졌지, 영상의 테마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한강공원 산책을 나가는 데 하는 메이크업이라고만 했지, 굳이 내가 쓴 아이섀도우와 블러셔과 '산책'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 산책용으론 '화사함'이 적합하고, 그에 어울리는 색은 '핑크'다-라는 맥락도 생략된 셈이었다.

"조금 지루한 감도 있네요."
마지막도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이다. 평면적으로 내 얘기만 하다보니 '강의'를 듣는 것 같다는 거다. 상대방이 이해했는지 질문을 던지거나 혹은 감탄사 등을 적절히 배치해야 집중도가 높아진다는 것.

화면에 비해 자막이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자막 폰트나 색상 역시 감각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화면에 비해 자막이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았다. 자막 폰트나 색상 역시 감각이 없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미 넉다운 된 내겐 자잘한 칼날들이 쏟아졌다.
"자막이 너무 커요."
"사용한 화장품 소개 디자인이 감각이 없어 보여요."
"하나의 구도로 이어져서 화면이 단조로워요."

그렇다. 이미 레드오션인 뷰튜버 시장에서 억대연봉을 받는 뷰튜버가 손에 꼽히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피드백을 하나하나 공책에 받아 적었다. 다음 주에 있을 메이크업 튜토리얼에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계속.

이자은 인턴기자 lee.jaeun1@joongang.co.kr

http:www.joongang.co.kr/article/2161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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