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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의 상식을 뒤엎다…삼겹 대신 사태에 절인배추

중앙일보

입력

맛대맛 다시보기 ⑦고향집
매주 전문가 추천으로 식당을 추리고, 독자 투표를 거쳐 1·2위 집을 소개했던 '맛대맛 라이벌'. 2014년 2월 5일 시작해 1년 동안 77곳의 식당을 소개했다. 1위집은 '오랜 역사'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집이 지금도 여전할까, 값은 그대로일까. 맛대맛 라이벌에 소개했던 맛집을 돌아보는 '맛대맛 다시보기' 7회는 보쌈(2014년 11월 26일 게재)다.

삼겹보쌈 대신 사태보쌈, 보쌈김치 대신 절인배추 #식당에 식자재 납품하던 인연으로 가게 인수 #"경기 나빠 힘들지만 30년 지켜온 맛 이어갈 것"

‘고향집’ 제육보쌈. 삼겹 부위 대신 돼지고기 사태를, 보쌈김치 대신 절인 배추와 고춧가루에 버무린 무 등 김치속을 함께 낸다. 김경록 기자

‘고향집’ 제육보쌈. 삼겹 부위 대신 돼지고기 사태를, 보쌈김치 대신 절인 배추와 고춧가루에 버무린 무 등 김치속을 함께 낸다. 김경록 기자

서울 논현동 관세청사거리에서 강남구청역 방향으로 걷다보면 왼쪽 골목에 작은 식당들이 모여있는 먹자 골목이 나온다. 이중 '고향집'은 올해로 문을 연 지 30년이 넘은 터줏대감이다. 1986년 문을 열 당시 식당 주변엔 강남 개발로 주변에 건설회관, 석유개발공사, 토지개발공사 등 큰 건물이 생겼고 고향집을 비롯해 여러 식당이 문을 열었다. 현재 고향집 사장 안덕수(59)씨와 아내 오순환(53)씨는 고향집에 식자재를 납품하던 슈퍼마켓 사장이었다. 당시 고향집은 40대 여사장 민혜자씨가 운영하고 있었다. 민 사장과 안 사장 부부는 다들 고향이 안성이라 쉽게 친해졌고 20년을 알고 지냈다. 그런데 95년 민 사장이 안 사장 부부에게 “고향집을 한 번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예순을 넘긴 민 사장이 힘들다며 가게를 내놓은 것이다. 동네마다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는 바람에 장사가 예전같지 않아 힘들었던 안 사장 부부는 그날로 슈퍼마켓을 정리했다.

전(前) 사장에게 요리 전수받아

아내 오씨는 민 사장 밑에서 한 달간 요리를 배웠다. 단골들한테 “맛이 변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민 사장의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했다. 손맛은 그런대로 익혔지만 처음 해보는 식당일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다. 특히 김치를 비롯해 반찬을 모두 다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부부는 남들은 적당히 사다 팔라고도 했지만‘ 남이 만든 찬을 손님한테 내면서 우리 음식 맛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직접 만들었다.
“우리 식구 먹듯이 정성껏 만들어 손님상에 내야 할 말이 있죠. 또 항상 똑같은 맛을 내려면 반찬 한 가지도 직접 만들어야해요.”

삼겹보다 사태가 왜 좋으냐면  

예나 지금이나 고향집 최고 인기 메뉴는 제육보쌈이다. 돼지고기 사태를 1시간 동안 삶아 썰어 낸다. 더 삶으면 고기가 쉽게 부셔지고, 덜 삶으면 고기가 제대로 익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 또 대부분의 보쌈집이 지방이 많은 삼겹살을 쓰지만 고향집은 사태만 고집한다. 안 사장은 “사태가 삼겹살보다 다루기 힘들다”고 했다. 삼겹살은 삶아서 그냥 자르면 되지만 사태는 결대로 잘 잘라야 식감이 퍽퍽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루기 힘든 대신 잘만 요리하면 삼겹살보다 더 고소하고 담백해요. 기름기가 없으니 건강에도 좋고요.”

삼겹살을 쓰는 다른 보쌈집과 달리 사태만 고집한다. 담백하고 고소하기 때문이다. 김경록 기자

삼겹살을 쓰는 다른 보쌈집과 달리 사태만 고집한다. 담백하고 고소하기 때문이다. 김경록 기자

삼겹살로 만든 보쌈에 익숙한 사람들은 고향집 보쌈을 처음 보고 생소하게 느낀다. 전에는 가끔 삼겹살 보쌈 달라는 손님도 있었다. 그러나 이 집 사태 보쌈을 맛 본 후에는 다들 단골이 된단다.

보쌈 김치 대신 절임 배추  

안덕수 사장이 보쌈 고기를 썰고 있다. 김경록 기자

안덕수 사장이 보쌈 고기를 썰고 있다. 김경록 기자

다른 보쌈집과 다른 건 이뿐만이 아니다. 고향집엔 보쌈용 포기김치가 없다. 당일 아침 2~3시간 절여 씻어낸 배추, 그리고 무채에 굴·고춧가루로 버무린 김치 속만 함께 낸다.김장하는 날을 떠올리면 된다. 김치 담그고 남은 절인 배춧속에 보쌈을 넣고 함께 먹는 것과 같다. 이처럼 다른 보쌈집이랑 차별화를 하니 사람들이 계속 찾는다고. 부부가 직접 만든 메뉴도인 황태탕과 황태미역국도 인기다. 점심에 많이 오는 인근 직장인들이 먹을 점심 메뉴가 필요하다고 느껴 만들었는데 꾸준히 찾는 사람이 많다. 요즘 같은 여름엔 국산콩을 직접 갈아 만든 콩국수도 판다. 안 사장 부부가 고향집을 맡은 지 올해로 13년이 됐다.3년 전 맛대맛에 소개됐을 때 “올해가 가장 힘들다”던 오씨에게 요즘은 어떤지 물었다. “경기가 나빠 더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목소리는 밝았다. 3년 전 “똑같은 맛 찾아오는 손님 위해 힘들어도 변함없이 가게를 지키겠다”는 부부의 각오가 변함없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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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메뉴:제육(사태)보쌈 3만9000원, 수육 4만3000원,청국장 7000원, 황태탕 8000원  ·개점: 1986년 ·주소: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134길 20(논현동 115-5) 1층 ·전화번호: 02-543-6363 ·좌석수: 80석(룸 2개)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30분 (일요일 휴무) ·주차: 발레 주차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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