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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기숙사, 학생 없는 방 들어가 '방 검사'…사생활 침해 vs 불가피한 조치

중앙일보

입력

서울대학교 정문. [중앙포토]

서울대학교 정문. [중앙포토]

서울대학교 의●치대 학생들이 생활하는 연건캠퍼스 기숙사에서 조교들이 학생 방을 불시에 무단 점검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기숙사 측이 “학생들의 규정 위반을 적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입장을 밝혀 점검의 적절성에 대한 갑론을박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의 사생활 침해 논란은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서울대 연건캠퍼스 기숙사, #"같은 학과, 같은 학년 룸메이트 안 돼" #불시 점검 적절성 두고 갑론을박

서울대 연건캠퍼스 기숙사 측은 ‘사생들끼리 허락 없이 방을 바꿔 생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사실 확인 차 지난달 22일 일부 학생들의 방을 예고 없이 점검했다. 학생이 방에 없는 경우에는 마스터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등록된 이름과 개인 용품에 적힌 이름을 대조 확인했다. 서울대 연건캠퍼스 기숙사 이용 내규에는 ‘같은 학과 같은 학년 학생끼리는 룸메이트가 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다. 학생들이 보다 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게끔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내규다. 제보 내용은 ‘이 규정을 피해 선후배끼리 방을 바꿔치기하는 일이 공공연하다’는 것이었다.

방 불시 무단 점검 사실은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익명의 고발 글이 올라오면서 알려졌다. 글쓴이는 “기숙사 조교들이 아무런 사전 공지 없이 학생 방을 돌면서 사진을 찍어가는 ‘방 검사’를 했다. 마치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과 같은 행태”라고 썼다. 또 다른 익명의 글쓴이는 “내 이름이 적혀 있는 물건이 통장 하나밖에 없다. 조교들이 내가 부재중일 때 내 통장까지 확인했다. 불쾌하다”고 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익명의 제보 글. [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 올라온 익명의 제보 글. [페이스북 캡처]

사생들의 반발이 빗발치자 기숙사 측은 “제보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데 미리 점검 계획을 알리면 학생들이 사실을 은폐할 수 있어 알리지 않았다”는 내용의 공식 답변을 냈다. 기숙사 측은 “학생들에게는 따로 사과 조치를 취했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구체적인 점검 방식이나 결과를 알리는 것은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지난해 12월 점검 계획을 미리 알린 뒤 점검하자 사실 확인이 어려웠다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숙사 측의 공식 답변에는 “절차의 문제없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면 절차상 문제점을 최소화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할지, 아니면 절차상 문제점 때문에 목적을 아예 포기해야 할 지 선택해야 한다”는 등 절차적 문제를 시인하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이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목적이 정당하면 어떤 절차든 용인된다는 말이냐”는 분노가 일었다.

사생 방 무단 점검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숙사 외부인과 내부인 간에 엇갈린다. 대학생 딸을 둔 일반 시민인 양모(56●여)씨는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면 어느 정도 기숙사의 통제를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정모(27)씨는 “학생들이 기숙사 내규를 알고 동의한 뒤 들어갔다면 그것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반면 학생들의 반발은 크다. 서울대 재학 중인 김모(23)씨는 “시대착오적이다. 학생들의 사생활 존중 의식을 관리자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의 거주 자유를 제한하는 규정 자체가 이상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대 재학 중인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해당 제보 글에 “왜 같은 학과 같은 학년 학생은 룸메이트가 되지 못하나. 선후배 상호 동의 하에 방을 바꿔 쓰는 데 누가 피해를 입는지 의문이다”고 썼다.

대학교 기숙사 방 불시 무단 점검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논란은 지난해 초 조선대에서도 일었다. 당시 조선대는 청소 상태, 금지 물품 반입 여부 등을 확인한다며 직원이 빈 방에 들어가고 학생들의 이불까지 들춰봐 논란이 일었다. 이를 지적하자 기숙사 측은 오히려 “빈 방 불시 점검도 가능하도록 사생 수칙을 다듬겠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은 기숙사에 들어올 수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3월 아주대에서는 바닥 먼지관리나 신발 정리정돈 상태 등을 점검하는 점호를 하겠다고 했다가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 사생들의 반발로 곤욕을 치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이미 ‘대학교 기숙사의 개인 방 불시 점검 조항은 불공정 거래 조항’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연세대 등 전국 8개 대학교에 있던 관련 조항을 고치도록 했다. 공정위는 “기숙사 점검은 학생이 방에 있는 경우에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고, 화재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불시 점검이 가능하다”고 의견을 냈다. 시설 점검에 대해서도 “입주생이 방에 있는 상황에서 이뤄져야 하고, 부재중 입실은 사전 동의를 받거나 2회 이상 방문 시 부재중일 경우로 제한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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