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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⑬ 코너링이 뭐길래 (하) 강함은 부드러움을 이길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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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사진 KBS 캡처]

[사진 KBS 캡처]

지난 연말, 한 배우의 수상 소감이 화제를 모았다. 2016 KBS 연기대상에서의 일이다. 배우 차인표 씨는 라미란 씨와 함께 '베스트 커플 상'을 받고서 "50년을 살면서 느낀 것 3가지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사진 JTBC 캡처]

[사진 JTBC 캡처]

차씨의 소감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고,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에서도 재차 소개됐다. 이후에도 이 이야기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퍼져 나갔다.

모터스포츠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치가 있다. 바로, "강함은 부드러움을 결코 이길 수 없다"이다.

<빠른 것, 그리고 빨라 보이는 것>

영화나 광고 속에서 자동차의 속도감 또는 역동성을 부각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클리셰가 있다. 기어 셀렉터와 스티어링휠의 격한 조작, 그리고 도로를 비스듬히 달리며 한껏 내뿜는 하얀 타이어 연기가 바로 그것이다.

스키드음과 함께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스릴 넘치는 모습에 속도감은 배가된다. 게다가 연신 액셀레이터를 밟고 있으니 당연히 빠를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사진 기아자동차]

[사진 기아자동차]

앞서 <코너링이 뭐길래 (상) 달리고 싶다면 멈추는 것 부터>에서 강조한 부분이 있다. 자동차는 오직 타이어를 통해서 노면과 접촉하고 있고, 이를 통해 달리고, 멈추고, 돈다는 것이다. '트랙션 서클'을 항상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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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션 서클. [사진 포뮬러원딕셔너리]

트랙션 서클. [사진 포뮬러원딕셔너리]

트랙션 서클의 크기는 차종에 따라, 또는 타이어의 종류에 따라 상이하다. 차종마다 무게나 서스펜션의 특성이 다르고, 타이어에 따라 땅을 움켜쥐는 그립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코너링은 이러한 트랙션 서클 안에서, 더 정확히는 트랙션 서클의 둘레에서 벌어지는 일을 의미한다. 종그립과 횡그립의 사용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급격히 스티어링휠을 돌려 차량의 하중을 흐트러뜨리고, 조타량 또는 선회 정도에 상관 없이 가속페달을 밟는다면 어떻게 될까. 차량의 움직임은 트랙션 서클을 벗어나게 된다. 이를 벗어나가는 힘은 곧 '버리는 힘'이 되고, 이는 결국 랩타임의 손실을 의미한다. 빨라 보이지만 결코 빠르지 않다는 것이다.

<강함은 부드러움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한 사례가 있다. 모터트렌드는 레이스카 드라이버인 랜디 폽스트와 함께 "Smooth vs. Aggressive : Which is Faster?"라는 영상을 통해 이를 실험해봤다. 동일한 차량에 동일한 서스펜션 세팅, 동일한 타이어를 구성해 변수를 최소화했다. 다른 것은 '운전 방식'일 뿐.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한 드라이버는 트랙션 서클의 마진을 최소화하며 부드럽게 주행했고, 다른 드라이버는 뒷 타이어를 열심히 태워가며 주행했다. 전자의 경우, 드라이버는 하품을 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 반면, 후자의 경우 '감정 과잉'의 상태로 격정적인 드라이빙을 선보였다. 두 드라이버 중 누가 더, 그리고 얼마나 빨랐을까.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부드러운 주행과 공격적인 주행의 랩타임 차이는 2.2초였다. 빠른 것은 트랙션 서클의 마진을 최소화해서 달린 부드러운 차량이었다.

실제 서킷 주행을 통해서도 이러한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 인제 스피디움에서 2분 8초와 2분 3초를 기록한 주행 영상을 되돌아봤다. 동일한 차량에 동일한 드라이버가 달렸고, 달라진 것은 주행 방식뿐이었다.

눈을 감고 소리만 들어보면, 2분 8초를 기록한 주행 당시의 소리가 더욱 박진감이 넘친다. ABS가 작동하는 소리와 타이어의 스키드 음 등이 훨씬 많이 들리기 때문이다. 반면, 2분 3초를 기록한 주행 당시의 소리는 이에 비하면 평온하기 그지없다. 듣기에 박진감 넘치던 그 소리는 트랙션 서클을 벗어난 주행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에선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 소리와 비슷했다. 더 느렸던 주행의 영상이 더 박진감 넘쳐 보였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양이 더 많았을 뿐더러, 이를 돌리는 속도도 빨랐다. 2분 3초를 기록한 주행 당시의 영상은 2분 8초 대비 조향이 부드러웠고, 조타량도 그보다 적었다. 거의 모든 코너에서 스티어링휠을 덜 꺾었고, 속도는 더 빨랐다. 보다 빠른 속도로 코너에 진입하게 되면 조타량이 당연히 많아져야 할텐데 어찌된 일일까. 여기에 대한 답도 트랙션 서클에 있었다. 타이어의 접지, 하중의 이동에 더욱 집중함에 따라 이전보다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었던 것이다.

2분 8초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8월, 2분 3초를 기록한 것은 지난 1월의 일이다.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 사이 서킷을 몇차례 더 방문했던 만큼 경험이 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연습이 더 큰 변화를 불러왔다. 이 6개월간 시뮬레이터를 통해 테크닉을 익히고, 이를 실제 구현할 수 있을지 확인차 서킷을 방문했던 것이다.

<시뮬레이터, 드라이버의 연습 수단이자 꿈나무 육성의 길>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GT기어. 다양한 종류의 시뮬레이터가 전시되어 있다. 박상욱 기자.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GT기어. 다양한 종류의 시뮬레이터가 전시되어 있다. 박상욱 기자.

시뮬레이터를 이용하면 유류비나 타이어, 브레이크 패드 등 기타 소모품에 대한 비용 걱정 없이 시간이 나는 만큼 연습이 가능했다. 비록 연습에 이용한 시뮬레이터 프로그램에 국내 서킷이 없어 인제 스피디움이나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 대한 맞춤형 연습은 하지 못했지만 기본적인 '감속-선회-가속'이라는 코너링의 기본기를 연습하는 데에 있어 서킷의 위치는 상관 없었다.

[사진 INTU레이싱·GT기어 제공]

[사진 INTU레이싱·GT기어 제공]

해외에선 실제 모터스포츠와 시뮬레이터의 연계가 활발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모터스포츠 시장 자체의 규모가 작다보니 시뮬레이터와의 연계가 정례화된 경우는 드물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9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모터스포츠-시뮬레이터 연계 대회인 '사이드바이사이드'에는 현재까지 200명 가까운 참가자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고 있다. 대회는 이달 3일까지 계속돼 더 많은 참가자들이 몰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 대회에서 활용되는 시뮬레이터 프로그램은 전세계 다수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아세토 코르사'이다. 이 프로그램의 국내 온라인 이용자가 300명 가량으로 추정되는 만큼, 첫 대회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이다. 최종 우승을 차지한 1인에겐 INTU레이싱(대표 박현식)에서 체계적인 이론과 실기 교육을 거쳐 2017 엑스타 슈퍼챌린지 스파크전에 출전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INTU레이싱과 함께 이번 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GT기어 측은 "서킷에서 풍부한 실제 주행경험을 자랑하는 참가자도 있는 반면, 아직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지 못한 중고등학생 참가자도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한 참가자는 이번 '사이드바이사이드' 대회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기록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히 시뮬레이터와 모터스포츠의 연계를 넘어 향후 한국 모터스포츠의 꿈나무 육성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쉐보레의 스파크 차량으로 인제스피디움을 주행하는 &#39;사이드바이사이드&#39; 대회. 박상욱 기자.

쉐보레의 스파크 차량으로 인제스피디움을 주행하는 &#39;사이드바이사이드&#39; 대회. 박상욱 기자.

이와 관련해 양우호 GT기어 대표는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에서도 시뮬레이터를 통한 연습이 유효함을 증명한 선수들이 있다"며 "현재 프로로 활동하고 있는 강동우, 이원일 드라이버와 아마추어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재복 드라이버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양 대표는 "사이드바이사이드는 1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분기마다 정례화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한국의 선수가 해외 e스포츠 대회의 카레이싱 종목에도 출전하고, 실제 오프라인에서 레이스 드라이버로 진출하는 기회를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20만원대에서 3000만원대까지 다양한 종류의 시뮬레이터가 판매되고 있다. 박상욱 기자

20만원대에서 3000만원대까지 다양한 종류의 시뮬레이터가 판매되고 있다. 박상욱 기자
20만원대에서 3000만원대까지 다양한 종류의 시뮬레이터가 판매되고 있다. 박상욱 기자
20만원대에서 3000만원대까지 다양한 종류의 시뮬레이터가 판매되고 있다. 박상욱 기자

이처럼 시뮬레이터를 통해 모터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일고 있다. 하지만 '넓은 매장에서나 가능하지 집에서는 할 수 없다', '시뮬레이터 가격이 자동차 한 대 가격과 맞먹는다더라'와 같이 여전히 시뮬레이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3000만원을 호가하는 시뮬레이터도 판매중인 만큼 단순히 이를 '오해'로 치부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최근 시뮬레이터의 대중화로 인해 최소 20만원대에서 수백·수천만원대까지 제품군이 다양해졌다.

[사진 GT기어 제공]

[사진 GT기어 제공]

꼭 시뮬레이터를 구매하지 않더라도, 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늘어났다. 최근 전국 곳곳에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마련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판매하는 GT기어는 시뮬레이터 인기의 급증을 몸소 실감하는 곳 중 하나다. GT기어 측은 "시뮬레이터에 대한 인기가 점차 확산됨에 따라 2016년 매출이 전년 대비 3배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더욱 커진 관심에 전화문의도 급증했다고 덧붙였다.

'공부하는 다이어리'인 모터스포츠 다이어리, 다음주에는 시뮬레이터를 통한 본격적인 연습과 이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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