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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환경단체와 농민들이 "보 개방" 요구하는 여주 남한강 3개 보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다음 달 1일부터 4대강 6개 보의 상시 개방을 결정하자 환경단체와 농민들의 반응이 엇갈렸다. 환경단체는 수질 개선을 위해 더 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농민들은 농사에 사용할 물이 줄어든다며 개방에 반대하고 있다.

29일 남한강 3곳 지점서 오염된 물 사는 실지렁이 확인 #지난 2월 수위 낮아졌을 때 4급수 지표종 무더기 발견 #전문가 "수생태계 변화, 보 개방하면 돌릴 수 있어" #보 개방 반대하는 지역과 달리 "개방해야" 목소리도 #4대강 사업 후 일부 지천 고갈 주장 근본대책 마련촉구

하지만 3개 보가 들어선 경기도 여주 지역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일부 농민들의 여론이지만 보를 개방해 훼손된 자연환경을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강은 2300만 명 수도권 주민의 상수원이지만 4급수 지표종인 실지렁이 등이 발견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남한강 준설로 지천의 물저장 창고 역할을 하던 모래가 대부분 쓸려 내려가면서 고갈현상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4대강 보(洑) 일부 개방을 사흘 앞둔 지난 29일 오전 11시30분쯤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가정리 남한강. 4대강 사업 목적으로 준공된 여주 지역 3개 보 중 하나인 강천보에서 직선거리로 2.5㎞쯤 떨어진 하류 지점이다.

여주환경운동연합 신재현 집행위원이 남한강 바닥 펄에서 나온 실지렁이를 보여주고 있다. 김민욱 기자

여주환경운동연합 신재현 집행위원이 남한강 바닥 펄에서 나온 실지렁이를 보여주고 있다. 김민욱 기자

여주환경운동연합의 수생생태계 조사 장면. 김민욱 기자

여주환경운동연합의 수생생태계 조사 장면. 김민욱 기자

여주환경운동연합 신재현 집행위원과 김민서 사무국장이 수생생태계 관찰조사에 나섰다. 장화와 하의가 붙은 어부용 방수복을 입은 신 집행위원이 삽을 들고 남한강으로 들어갔다. 신장 167㎝인 신 집행위원은 강물이 허리 중간쯤 다다르자 삽으로 강바닥 펄(개흙)을 떴다.

강변으로 퍼 올린 펄은 시커멓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핀셋으로 펄을 헤집으니 몸길이가 6㎝쯤 되는 불그스름한 색의 ‘실지렁이’가 나왔다. 이보다 길이가 짧은 실지렁이 7마리도 같이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실지렁이는 하수구 또는 시궁창 등 오염된 환경에 서식하는 생물로 알려져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등에 따르면 실지렁이는 저서성(底棲性) 대형무척추동물의 한 종이다.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은 이동성이 활발하지 않은 데다 오염 정도에 따라 종류별로 다양하게 나타나 생물학적 수질 평가에 이용된 생물 종이다.

수질지표생물군 [자료 상지대 생명과학과]

수질지표생물군 [자료 상지대 생명과학과]

실지렁이는 붉은 깔다구류·나방파리류·꽃등에류와 함께 수질 4등급 지표종에 포함돼 있다. 4등급은 공업·용수로 사용된다. 수영을 금지하는 물이기도 하다. 가장 오염이 심한 5급등 바로 윗단계다.

비슷한 지점에서 두 번째, 세 번째 삽으로 퍼 올린 펄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지렁이가 5마리 이상 나왔다. 신 집행위원은 “수심이 더 깊은 지역의 펄 안에서는 보다 많은 실지렁이가 나올 것”이라며 “전문장비를 갖추지 못해 조사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찾아간 이포보 상류 4.4㎞ 지점 찬우물나루터와 양화천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지점 강바닥에서 각각 퍼 올린 흙에서도 실지렁이가 관찰됐다. 흙색이 상대적으로 거므스름하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데도 실지렁이가 나왔다.

여주 남한강 3개보 실지렁이 발견 위치 [구글지도]

여주 남한강 3개보 실지렁이 발견 위치 [구글지도]

지난 2월 여주 남한강에서 발견된 실지렁이. [사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지난 2월 여주 남한강에서 발견된 실지렁이. [사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여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월28일 남한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양화천·남한강 합류지점서 모니터링 활동을 벌였다. 강변 인근의 바닥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는데 4급수 지표종인 붉은 깔다구가 나오기도 했다. 김민서 사무국장은 “당시 실지렁이가 대량으로 발견돼 수생생태계의 오염정도를 알 수 있었다”며 “보를 개방해 훼손된 수생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개발연구원 송미영 선임연구위원은 “실지렁이, 붉은 깔다구가 발견됐다는 것은 그 만큼 수생생태계가 나빠졌음을 의미한다”며 “보를 개방하면 고인 물이 흐르면서 강바닥에 공기공급 등이 보다 원활해진다. 수질 보다는 생태계 복원 속도가 느리겠지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여주 삼합1리 주경옥 이장이 청미천 하류 삼합교 교각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교각 아래 물저장 창고 역할을 하던 깊이 3m의 모래가 4대강 사업 이후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여주 삼합1리 주경옥 이장이 청미천 하류 삼합교 교각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교각 아래 물저장 창고 역할을 하던 깊이 3m의 모래가 4대강 사업 이후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김민욱 기자

수생생태계 변화 외 4대강 사업으로 지천인 청미천이 고갈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천의 고갈은 농업용수 부족현상으로 이어졌다.

남한강 지천인 점동면 청미천은 자동차 내비게이션 지도에 푸른색의 강으로 표시됐지만 이날 바닥을 거의 드러냈다. 굵은 자갈과 단단한 흙이 보였다. 모래는 찾기 어려웠다. 점동면 삼합1리 주경옥(63) 이장은“4대강 사업 공사를 하면서 모래 유실 방지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물저장 창고 역할을 하는 깊이 3m가량의 모래가 다 떠내려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급수시설이 없어 남한강 물을 끌어다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휴대용 양수기로 물을 퍼올려야 하는데 지원되지 않는다고  했다. 청미천이 고갈되면서 극심한 가뭄 피해를 호소 중인 농가는 100여 가구에 이른다.

주 이장은 “4대강 사업은 6.25 한국전쟁 이후 우리 민족이 저지른 최대 실수”라며 “보를 개방해 자연환경을 돌려야 하고, 농업용수를 확보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항진 여주시의원이 말라버린 청미천 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김민욱 기자

이항진 여주시의원이 말라버린 청미천 바닥을 가리키고 있다. 김민욱 기자

이항진 여주시의원은 “농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4대강 사업 전에는 청미천이 고갈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며 “3개보 가 들어선 여주지역 전역에서 남한강과 연결된 지천의 수량이 감소하고 있다. 고갈에 따른 농업용수 부족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정부는 수질 오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오는 6월 1일부터 16개 대형보 중 낙동강 강정고령보·달성보·합천창녕보·창녕함안보, 금강 공주보, 영산강 죽산보 등 6개 보를 상시 개방한다고 29일 밝혔다.4대강 보의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개방을 추진하지 않는 것은 보 건설 후 5년이 경과해 그동안 생태계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여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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