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사 난맥상 … 쓴소리 필요한 청와대, 가상의 적군 ‘레드팀’ 조기 구성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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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권 초기 빚어진 인사 논란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청와대가 ‘레드팀’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29일 밝혔다.

“자의적 기준으로 논란 자초” 시인

이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선 과정의 허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레드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안을 충분히 참고하고 있다”며 “구성 시점과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레드팀(Red Team)은 원래 군사용어다. 군대 훈련 과정에서 아군인 블루팀(Blue Team)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편성된 가상의 적군(敵軍)을 레드팀이라 부른다.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레드팀 도입이 검토되는 이유는 “문제가 된 인선 과정에서 청와대만의 판단과 기준을 작동했다”는 반성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인사 논란의 핵심은 청와대가 자의적으로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판단한 오류 때문”이라며 “특히 일부 위장전입에 대해 스스로 낮은 잣대를 들이댔다가 논란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등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 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후보자에 대해선 “후보자와 청와대가 모두 인지하지 못했다”며 부실검증을 인정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에 대해선 “비난받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다”며 인사 과정에서 자의적 판단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특히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했던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 얽힌 사연이 다 다르다”는 발언도 ‘고무줄 잣대’라는 비판 여론에 시달리며 논란을 더 키웠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청와대의 판단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된 데다 인선 발표 과정에서 위장전입 등의 사실을 선제적으로 공개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마저 거짓말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며 상당히 엄중한 상황이 됐다”며 레드팀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레드팀은 청와대가 직접 운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레드팀 발족 필요성은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산하 ‘국민의나라위원회’(위원장 박병석)와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 ‘신정부의 국정 환경과 국정 운영 방향’에서도 제기됐다. 보고서는 “위기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레드팀을 활용해 상시적으로 외부의 시각과 비판을 전달하는 전담 부서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레드팀 시스템의 도입은 사실 박근혜 정부 때도 있었다.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정부의 조세개편안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자 “세법 개정의 정신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라고 말했다가 ‘거위털 논란’에 휘말렸다. 비난 여론이 지속되자 기획재정부는 2015년 10월 ‘세제실이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졌다’는 자성론을 펴며 레드팀 시스템을 도입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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