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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탱크 심장’ 파워팩 없어 … K-2 흑표 100대 창고서 낮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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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해 2월 육군 제11기계화보병 사단 기갑수색대대 소속 K-2 흑표전차가 경기도 양평 비승사격장에서 기동 및 실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이 전차들은 1차 생산분이다. [중앙포토]

지난해 2월 육군 제11기계화보병 사단 기갑수색대대 소속 K-2 흑표전차가경기도 양평 비승사격장에서기동및 실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이 전차들은 1차 생산분이다. [중앙포토]

한때 세계 최고 성능의 명품무기로 여겨졌던 K-2 흑표 전차의 추가 생산을 두고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흑표 전차는 시제품 3대를 공개했던 2007년에만 해도 그 어떤 전차보다 우수했다. 그러나 전차의 심장인 파워팩(엔진+변속기)의 개발 지연으로 생산이 늦어지고 결국 수출 기회도 놓치게 됐다.

10년 전 시제품 공개 땐 최고 성능 #국산 파워팩 개발 차질로 생산 지연 #수출 기회 놓치고 이젠 퇴출 위기 #예산 수조원 … 실전 쓰임새 논란도

이런 가운데 선진국들은 4세대 무인 전차 개발에 착수했다. 국제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몰린 흑표 전차, 그 굴욕의 과정을 따져본다.

◆고무줄 생산 대수=흑표 전차의 생산 목표는 600여 대→300대→ 200여 대→300여 대로 줄고 늘기를 반복했다. 대당 80억원을 상회하는 가격, 육군의 과도한 확보 목표량, 이를 뒷받침할 예산, 실제 전장에서의 전술적 필요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흑표는 소요를 처음 제기한 2011년에만 해도 600여 대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북한군의 신형 전차인 선군호를 상대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제한된 육군 예산 때문에 300대로 줄었다가 국방개혁 과정에서 2014년 200여 대로 최종 확정했다. 그러다가 육군은 2015년 10월 100여 대를 추가 요구했고, 국방부 소요검증위원회는 지난해 육군의 추가생산 요청을 승인했다. 하지만 이번엔 기획재정부가 사업타당성평가를 계속 미루고 있다.

지난해 2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양촌리훈련장에서 열린 '육군 기계화부대 전투장비 기동훈련'에서 육군 20사단 K-2 흑표 전차가 기동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2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양촌리훈련장에서 열린 '육군 기계화부대 전투장비 기동훈련'에서 육군 20사단 K-2 흑표 전차가 기동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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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표의 생산량이 들쑥날쑥한 것은 전술적 가치를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할 만큼 흑표가 실전에 쓰임새가 있느냐다. 이에 대해 육군은 “유사시 북한 지역에 가장 먼저 투입될 기동군단의 전차부대를 흑표로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군 기동군단에는 360대 이상의 전차가 필요하다. 육군 관계자는 “흑표는 표적을 자동으로 찾아 정확하게 공격하기 때문에 숙련된 북한 전차병을 상대할 수 있고, 능동방어체계로 북한군이 다수 보유한 대전차 로켓(RPG-7)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전차를 상대할 우리 군의 무기는 흑표가 아니라도 충분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아파치 공격헬기, 전투기에서 발사하는 매브릭(AGM-65) 공대지 미사일 등으로도 북한 전차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전쟁 발발 3∼4일이면 북한의 공군은 거의 전멸할 것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 때문에 “ 한·미 연합 공군 전투기 앞에 북한 전차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일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미 공군도 이라크 공군을 궤멸한 뒤 이라크 육군의 전차를 마음대로 사냥했다.

◆파워팩 개발 지연=흑표 전차가 국제시장에서 수출 기회를 잃은 것은 1500마력 파워팩의 개발이 지연돼서다. 당초 방위사업청은 2012년에 생산될 1차분 100대에 국산 파워팩을 사용하기로 했다. 로템이 개발한 흑표는 2008년 전투용 적합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두산 인프라코어가 담당한 국산 파워팩은 개발이 지연됐다. 이 때문에 방사청은 독일제 파워팩을 구매해 2014년에야 흑표에 장착토록 했다.

두산의 파워팩 개발 지연은 미흡한 기술로 5년이란 짧은 기간에 개발하려 했기 때문이다. 100년 이상의 엔진 역사를 가진 독일도 13년이나 걸려 개발했다.

흑표의 굴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방사청은 1차 생산분 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독일제 파워팩을 사용했지만 2015년 말부터 생산할 2차분 100여 대에 대해선 국산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차분 국산 파워팩 사업을 넘겨받은 S&T 중공업도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로템 관계자는 “파워팩만 얹히면 되는 흑표 전차가 창고에서 놀고 있다”며 한숨이다.

이 바람에 육군 기동군단의 전차 교체에 차질이 생겼다. 흑표 전차의 개량사업 착수도 당연히 늦어졌다. 수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2008년 흑표 전차의 기술을 이전받은 터키는 알타이 전차를 개발, 올해 사우디아라비아와 300대의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은 2015년 기자간담회에서 “흑표 전차를 개량하지 않으면 방산시장에서도 퇴출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흑표 전차의 굴욕은 육군의 과욕, 방사청의 판단 미숙, 국내 방산업체의 기술 한계가 낳은 복합 참사다.

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kimseok@joongang.co.kr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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