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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연주자들이 홍대 앞 거리에서 연주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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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신규(비올라), 김덕우(바이올린), 김재원(피아노), 고관수(오보에), 김상윤(클라리넷)이 24일 오후 서울 동교동의 홍대 앞 조각공원에서 길거리 연주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왼쪽부터 이신규(비올라), 김덕우(바이올린), 김재원(피아노), 고관수(오보에), 김상윤(클라리넷)이 24일 오후 서울 동교동의 홍대 앞 조각공원에서 길거리 연주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4일 오후 7시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의 조각공원. 닭집과 이자카야 앞 거리에 피아노 한 대가 놓였다. 곧 연주자 5명이 모였다. 피아노 김재원(29), 바이올린 김덕우(32), 비올라 이신규(31), 오보에 고관수(29), 클라리넷 김상윤(30)이 악기를 들었다. 바로 앞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다녔고, 빼곡한 상점들은 저마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있었다.
“소리가 바람에 다 날아갈 것 같은데?” “여기에서 타이스 명상곡 하면 들리기나 할까?” 서로 상의하기도 잠시. 길을 가던 사람들이 악기든 청년들을 보고 하나둘 모였다. 피아니스트 김재원이 슈만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걱정대로 악기의 소리는 주변 소음에 묻히기 일쑤였고, 행인들은 슈만에 익숙해보이지 않았다. 밤거리는 조금씩 어두워졌고 술집과 음식점의 간판은 더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길에서 연주한 이들이 ‘만만한’ 음악가들은 아니다. 한국ㆍ미국ㆍ프랑스ㆍ독일의 쟁쟁한 음악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가며 공부했고 국제 콩쿠르 입상 경력도 숱하다. 김덕우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제2바이올린의 제2수석이고 클라리네티스트 김상윤은 프라하 국제 콩쿠르 우승자이며 비올리스트 이신규는 줄리아드 음악학교의 예비학교부터 석사까지 마쳤다.
서울 예술의전당, 금호아트홀 등에서 촉망받는 연주자들이 술집 즐비한 거리의 썰렁한 무대에서 연주한 이유가 뭘까. 피아니스트 김재원은 “일부러 홍대 앞을 골랐다”고 했다. “클래식 음악과 가장 동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클라리네티스트 김상윤은 “언제까지고 음악회장에서만 연주하면 새로운 청중을 절대 만날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나온 것”이라고 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도 까다롭게 소리를 만드는 이들이 도시 거리의 소음 속에서 슈베르트ㆍ크라이슬러ㆍ마스네 등을 연주한 이유다.

24일 클래식 연주자들의 버스킹 공연은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됐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와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무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4일 클래식 연주자들의 버스킹 공연은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됐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와 피아니스트 김재원의 무대.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들은 클래식 공연의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팀 ‘클럽M’의 멤버들이다. ‘클럽M’의 멤버는 젊은 남성 연주자 8명. 7월 첫 공연을 한다. 그 중 5명의 홍대 거리 버스킹 공연이 ‘클럽M’의 첫 공식 무대였다. 이날 거리 공연은 한시간동안 이어졌다. 30여명이 길을 가다말고 음악을 들었고 공연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됐다. 이들은 “클래식 연주자가 버스킹을 한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클래식 연주자가 할 수 있는 일의 경계는 없어 보였다. “버스킹 말고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다. 대중 가수들처럼 술자리에서 연주하며 동영상을 찍어 올린다든지….”(김재원)
클래식을 쉽게, 대중 가까이에 가져간다는 아이디어는 흔하고 오래된 것이다. ‘클럽M’의 멤버들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리더인 김재원은 “우리는 대중화한 클래식이 아니라 정통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되, 접근하는 방식을 대중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클럽M’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서 멤버들이 연기자로 출연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로고를 디자인해 스티커로 만들어 배포한다. ‘음악은 완전히 정통으로, 홍보는 철저히 대중적으로’가 이들의 모토다.
연주자들은 리더인 피아니스트 김재원을 중심으로 모였다. 김재원은 성악부터 관악기까지 많은 연주자들의 반주를 도맡아온, 이른바 ‘실내악 전문 피아니스트’다. 멤버들끼리 서로 음악을 들어주고 함께 연주한 기간은 길다. 김재원과 고관수(오보에)는 예원학교 동기고, 김덕우(바이올린)와 이신규(비올라)는 줄리아드 유학 시절부터 알던 사이다. 이날 홍대 앞 거리 공연에 참여하지 못한 멤버 김홍박(36ㆍ오슬로 필하모닉 호른 수석), 유성권(29ㆍ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 심준호(30ㆍ첼로) 등 ‘클럽M’ 멤버의 공통점은 독주와 협주를 병행한다는 것이다. 김덕우는 “동료 연주자의 소리를 잘 들을 줄 아는 솔리스트라는 점이 우리의 공통점”이라고 소개했다.
멤버 8명의 평균 나이는 31세. 활동 지역은 서울에서 독일 베를린,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걸쳐 있다. 연주는 2중주부터 8중주까지 다양한 조합으로 가능하다. 공연 기획, 홍보, 해설까지 연주자들이 직접 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김재원은 “앞으로 플루트, 더블 베이스 같은 악기를 충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올리스트 이신규는 “10년쯤 지나 모두 중견 연주자가 돼 있을 때 클래식 음악계에 혁신적 시도를 했던 팀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7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첫 무대는 도흐나니 6중주로 시작해 브루흐ㆍ드비엔느 등을 들려주고, 작곡가 김재훈이 멤버 전원을 위해 새로 만든 8중주도 연주할 예정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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