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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외로운 늑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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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김성탁 런던특파원

22살 맨체스터 토박이 대학생.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자살폭탄 테러범 살만 아베디의 신상이다. 그는 독재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리비아 출신의 부모 아래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리비아로 돌아갔지만 그와 형은 영국에 남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었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다음 학기에도 등록했었다고 한다.

영국 수사 당국은 아베디의 테러 네트워크 연루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아베디의 동생 하심이 형과 자신이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조직원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슬람 사원에서 아베디가 IS를 비판하는 설교를 듣다 증오하는 표정을 보였다는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영국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청년이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무차별 공격에 나선 배경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의미하는 ‘외로운 늑대’는 늘고 있다. 지난 3월 영국 의사당 인근에서 차량 돌진 테러를 한 칼리드 마수드도 영국 태생이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130명의 목숨을 잃게 한 북아프리카계 청년들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나고 자랐다. 지난해 7월 프랑스 니스 트럭 돌진 공격 등 테러가 발생하면 IS가 배후를 자처하고 나서지만 연계 여부가 확인된 경우는 많지 않다.

의아한 것은 서방 세계가 왜 자신들의 나라에서 자란 이들이 테러에 나서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따져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5년 미국 샌버너디노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두 명 중 한 명은 미국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주립대학까지 다닌 토박이였다. 당시 IS에 대한 추가 공습 요구와 국내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가 나왔지만 20년 가까이 정규 교육을 이수하고 터전을 닦아온 시민이 조국에 총을 들이댄 배경은 고찰되지 못했다.

테러는 IS의 손을 떠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슬림 청년들이 외로운 늑대가 되는 이유로 서방 국가에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과 이민자로서의 고립감을 꼽는다. 정보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런 고립감이 사제폭탄 제조로 이어지고 있다. 맨체스터 테러범 아베디의 여동생은 지난해 5월 리비아계 영국 인 친구 가 차에 치인 뒤 흉기에 찔려 사망한 이후 아베디가 급진주의 단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민 가정 출신의 죽음에 대해 무신경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가족의 얘기도 전해졌다.

미국에서는 학교가 ‘미국인’을 양성하는 역할을 해 왔으나 성적과 취업을 위한 실용적 교육 풍토가 퍼지면서 그 기능이 쇠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영국처럼 이민자를 규제한다고 자생적 테러가 막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채로운 사회 구성원이 서로에 대해 갖는 의무와 민주주의의 규범들, 의견 차이를 대화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어렸을 때부터 시민들에게 가르치고 뿌리내리게 하는 게 대책일지 모른다.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는 늑대는 우리 안의 미움과 증오로 자란다.

김성탁 런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