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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트럼프는 미국 시스템의 위험, 임기 채울 수 있을지 의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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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 트럼프를 히틀러와 같은 폭군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시대 대표적인 공적 지식인이다. [사진 열린책들]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 트럼프를 히틀러와 같은 폭군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시대 대표적인 공적 지식인이다. [사진 열린책들]

“미국은 공직 경험이 없고 미국의 이해에 관심이 없으며 폭정을 갈망하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은 권위주의 정권 대부분이 선거로 탄생한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 미국이 역사적 교훈을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해야 할 때다.”

아마존 1위 ‘폭정’ 쓴 스나이더 교수 e메일 인터뷰 #NYT가 꼽은 대표적 공적 지식인 #“권위주의 정권 대부분 선거로 탄생 #경제적 불평등 만연한 미국 사회 #트럼프, 대중의 대표자 행세해 당선” #한국 민주주의 성취에 높은 평가 #“다음 활동은 작은 규모서 이어져야”

미국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48) 사학과 교수가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밝힌 생각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현재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의 위험성을 앞장서 고발하는 ‘공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 뉴욕타임스)’으로 불린다. 올 2월 미국에서 출간 이후 아마존 베스트셀러 상위를 지키고 있는 『폭정(On Tyranny)』 덕분이다.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전공한 역사학자는 책에서 트럼프를 히틀러에 비유하며 트럼프 정부의 위험성을 고발했다.

스타 지식인이 됐지만 스나이더 교수는 “교수나 학자로서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미국은 공적 지식인의 역사가 빈약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직접 행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터뷰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 시스템의 위험”이라고 못박았다. 책에서는 더욱 신랄했다.

‘히틀러의 언어에서 국민은 언제나 오로지 국민 일부만을 의미했고(트럼프 대통령이 이 단어를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 만남은 언제나 투쟁이었고(트럼프는 승리를 얘기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도자에 대한 비방이었다(또는 트럼프가 주장하듯이 명예훼손이었다).’- 『폭정』, 79쪽.

히틀러처럼 위험한 인물이 어떻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을까. 스나이더 교수는 미국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진단했다.

“미국 민주주의는 많은 면에서 불완전하다. 특히 돈이 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선거인단 제도는 미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다. 1인 1표제였으면 그는 낙선했다. 미국인은 최근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더 쉬운 방법을 기대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틈 타 트럼프 같은 인물이 대중의 대표자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그의 선거전략이 사회 분위기를 잘 활용했다고 봐야 한다.”

스나이더 교수의 『폭정』 표지. 지난달 국내에도 출간됐다.  

스나이더 교수의 『폭정』 표지. 지난달 국내에도 출간됐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폭정』은 처음 미국에서 출간되는 과정 자체가 트럼프와 맞서는 일이었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며칠 뒤 스나이더 교수는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올렸다.

“미국인은 유럽인보다 어리석다. 유럽인은 파시즘과 나치즘, 공산주의에 민주주의가 항복한 역사를 지켜봤기 때문이다”고 말문을 연 그는 “미국은 유럽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며 ‘20세기의 교훈 20가지’를 열거했다.

교훈은 구체적이었다. ▶미리 복종하지 말라 ▶직업 윤리를 명심하라 ▶진실을 믿어라 ▶사생활을 지켜라 등 교훈 20개는 그가 인터뷰에서 인정했듯이 “미국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한 매뉴얼이자 행동지침”이었다. 이 글은 며칠 만에 ‘좋아요’가 1만 개 이상 달렸고, 스나이더 교수는 이 글을 토대로 『폭정』을 출간했다.

그런데 책이 출간되자 해괴한 일이 일어났다. 영국 ‘아마존’ 사이트에 ‘티머시 스트라우스’가 쓴 컬러링북 『On Tyranny』가 등록됐다. 부제 ‘세상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교훈들’은 트럼프가 선거에서 사용했던 구호를 본뜬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와 컬러링북 모두 가짜였고, 이 일은 러시아 해커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가짜 책 사건이 알려진 뒤 『폭정』은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러시아 해커가 소란을 피운 건 스나이더 교수의 활동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스나이더 교수는 1년 전부터 러시아와 트럼프의 관계를 추적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트럼프와 러시아의 관계를 확신했지만 탄핵에 관해서는 냉정하게 판단했다.

“트럼프 캠프는 여러 방법으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한 일은 본질적으로 그의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탄핵을 낙관할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의 정치적 미래에 방해가 된다고 공화당 주류가 인정하는 경우에만 탄핵은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임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선의 러시아 연루 의혹을 조사하던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을 해임했다. 이에 반발한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차관이 17일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을 러시아 게이트 사건 특검에 임명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폭정』은 같은 날 아마존 종합 순위 1위에 다시 올랐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최근 상황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스나이더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 성취에 높은 평가를 내렸다.

“지금 한국인은 대중의 저항과 참여에 관한 전통이 자랑스러울 터이다. 내 생각에 한국인의 다음 활동은 작은 규모에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역사적 전환을 이룬 사건의 의의를 잃지 않고 시민적 가치가 사회에 두루 전파될 수 있다.”

▶티머시 스나이더
1969년 미국 출생.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다. 미 예일대 사학과 교수이며 비엔나 인문학연구소 종신 연구원, 미국 홀로코스트기념관 양심위원회 위원이다. 2010년 홀로코스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대표작 『Bloodlands』를 출간해 한나아렌트상ㆍ안토노비치상ㆍ비전97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는 『폭정』이 출간되자 스나이더 교수를 ‘용감하게 과거와 현재의 다리를 놓는, 떠오르는 공적 지식인’이라고 소개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티머스 스나이더 교수의 페이스북 화면. 지난해 11월 15일 '20세기의 교훈 20가지'에 관한 글을 올렸다. 지난 27일 현재 '좋아요'가 1만4000개 달렸다.

티머스 스나이더 교수의 페이스북 화면. 지난해 11월 15일 '20세기의 교훈 20가지'에 관한 글을 올렸다. 지난 27일 현재 '좋아요'가 1만4000개 달렸다.

『폭정』 일지

 2016년
 -11월 8일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11월 15일 : 스나이더 교수, 페이스북에 ‘20세기의 교훈 20가지’ 등록
 2017년
 -2월 28일 : 스나이더 교수, 『폭정』 출간
 -3월 중순 : 러시아 해커, 영국 ‘아마존’ 사이트에 『폭정』 패러디한 가짜 책 등록
 -3월 25일 : 스나이더 교수의『폭정』,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등극
 -5월 9일 : 트럼프 대통령,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이던 제임스 코비 FBI 국장 해임
 -5월 17일 : 미 법무부 차관, 러시아 게이트 사건 특검 임명
 -5월 17일 : 『폭정』, 아마존 베스트셀러 종합 1위 재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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