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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문 정부, 친문 단체들 요구에 휘둘리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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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 진보 성향 단체들의 입법 요구와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200일 넘게 계속된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했던 이들은 “이 정권은 촛불 덕분에 집권했다”며 마치 빚쟁이가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청와대와 여당에 요구 조건을 늘어놔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자기 덕에 정권 잡았다는 단체들 #새 정부는 그들 아닌 국민에만 빚 #통합·공존 위해 한눈 팔지 말아야

언론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에 접수되는 민원은 하루 300여 건에 이르고 민주당에도 매일 150건가량의 요구사항과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전교조는 새 정부에서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를 상대로 ‘전교조 합법화’ 등 요구 사항들을 팩스로 전달하는 ‘팩스투쟁’을 벌일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가 단지 ‘대통령 하나 바꾸자’고 그 추운 겨울 광장에 모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조합원들에게 투쟁을 독려하고 있기까지 하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 출범한 정권을 지지하는 단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개진하는 것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해 공적 또는 사적 이익을 확보하는 게 그들의 존재 이유며, 이념 성향이 맞는 정부가 들어선 만큼 단체들의 기대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고 국정을 농단한 데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자연스레 결집한 촛불집회를 마치 자기들이 주도한 양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촛불집회 당시 이 단체들의 조직적 동원이 있었다고는 하나 대다수 참여자들은 가족, 친구 또는 혼자서 촛불을 든 일반 시민들이었다. 그런 시민들의 요구는 전교조를 합법화하거나 폭력시위를 주도해 사법 처리된 인물의 석방이 결코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런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자제를 요구했다.

그런 시민들이 없었다면 촛불집회는 23회에 걸쳐 연인원 1684만 명이 참여한 초대형 집회로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며 고작 일부 단체들의 시위로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덕에 됐으니 빚을 갚으라”고 하는 것은 대다수 국민의 열망을 담았던 ‘촛불 정신’을 욕보이는 짓이며, 자신들의 참여가 순수한 목적이 아니었음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 된다.

특히 전교조는 해직자까지 조합원으로 인정한 규약의 시정을 거부함으로써 2013년 법외노조가 되고, 1, 2심 법원 모두 적법·타당하다고 인정한 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 권한으로 즉각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법치주의까지 무시한 그야말로 ‘생떼’라고밖에 할 수 없다.

새 정부와 집권당은 이들의 아전인수식 해석과 억지 요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을 명확히 가리고, 타당한 요구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파악해 국정운영에 반영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분명 촛불집회 덕에 가능했지만, 그 빚은 국민들에게 진 빚이며 국민들은 통합과 공존의 세상, 특권과 반칙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도 밝혔던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는 특정 단체의 어쭙잖은 요구에 한눈을 팔 시간이 한순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