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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⑫ 코너링이 뭐길래 (상) 달리고 싶다면 멈추는 것 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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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픽셀즈닷컴]

[사진 픽셀즈닷컴]

어느 한적한 일반국도. 제한속도인 60km/h에 맞춰 산과 계곡의 푸른 경치를 감상하며 달리고 있다. 어느덧 굽이진 하천을 따라 커브길이 다가온다. 시야에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그려진 '갈매기 표지'라 불리는 커브길 유도 표지가 들어온다. 발은 어느덧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향한다. 그리고 그 커브길을 따라 스티어링휠을 꺾는다.

[사진 한국소방공사]

[사진 한국소방공사]

이렇게 커브를 마주하기 전, 운전자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행위는 바로 감속이다. 주행의 시작, 특히 코너링의 시작은 바로 브레이킹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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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브레이킹 : Non ABS, With ABS, 그리고 임계 브레이킹(Threshold Braking)

일상적인 도로주행에서 대부분의 운전자는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는 '풀 브레이킹(Full braking)'을 경험할 일이 극히 드물다. 설령, "앞차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풀 브레이킹을 했어"라고 말하는 사람의 대다수도 실제로는 풀 브레이킹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반 도로주행에서 운전자가 풀 브레이킹을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진 FIA WEC 홈페이지]

일반 도로주행에서 운전자가 풀 브레이킹을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진 FIA WEC 홈페이지]

풀 브레이킹은 그야말로 시트에 얌전히 자리 잡은 엉덩이가 들릴듯한 기세로 밟는 행동이다. 어렸을 적, 마치 우유팩이나 음료캔을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집중하는 것처럼 말이다. 순정 시트에 앉아 평소의 느긋하고 편안한 착좌 상태에서 하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온라인 상에서 'ABS의 예'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사진으로 자주 회자되는 사진. [사진 9GAG]

온라인 상에서 'ABS의 예'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사진으로 자주 회자되는 사진. [사진 9GAG]

효과적인 감속을 돕기 위해 최근 출시되는 거의 모든 차종에는 ABS(Anti-Lock Brake System)가 장착된다. ABS는 말 그대로 바퀴가 잠기는 것을 방지하는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자동차는 아직 멈추지 않았는데 바퀴만 멈춘 상태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ABS가 없이 풀 브레이킹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차량이 멈추기에 앞서 바퀴가 잠기게 된다. 바퀴가 잠겨 구르지 않게 되면 타이어는 타들어가고 희뿌연 고무 연기가 피어난다. 겉보기엔 마치 최대한 사력을 다해 멈추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타이어의 마찰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차가 멈추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거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또한, 바퀴가 잠긴 상태에서 제아무리 스티어링휠을 이리저리 돌려본들 차량은 그저 관성에 따라 미끌어지던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게 된다.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1초에도 수백번 자동차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놨다 풀었다 반복하며 바퀴의 잠김 현상을 막는 것이 ABS다. 운전자가 지속적으로 풀 브레이킹을 하는 동안, 자동차는 바퀴가 잠길 때마다 브레이크의 완급을 조절한다. 때문에 타이어의 마찰력을 보다 더 활용함으로써 제동시간과 거리는 줄어든다.

임계 브레이킹(Threshold Braking)은 이러한 ABS의 도움 없이 운전자가 스스로 타이어의 마찰력을 임계점까지 활용하는 브레이킹을 의미한다. ABS의 경우, 일단 바퀴가 잠겨야 작동을 시작하는 만큼 바퀴는 잠겼다 풀렸다를 반복한다. 때문에 임계 브레이킹은 바퀴가 잠기기 직전까지만 브레이크를 가하는 것으로, 가장 효과적인 감속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ABS가 작동하는 환경보다 더 짧은 제동시간과 거리를 자랑한다.

세계적인 F1 드라이버들도 브레이킹 과정에서 바퀴가 잠기는 일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진 F1 홈페이지]

세계적인 F1 드라이버들도 브레이킹 과정에서 바퀴가 잠기는 일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진 F1 홈페이지]

다만, 그 임계점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차량마다 타이어마다 임계점은 각기 다르다. ABS 없이 임계 브레이킹을 하는 것은 프로 드라이버들에게나 권고될 만큼 어려운 일이다. 실제 프로 드라이버들도 시시각각 변하는 타이어의 마모정도나 온도, 브레이크 시스템의 상태나 온도 등으로 인해 임계 브레이킹을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과유불급 : 트랙션 서클(Traction Circle) 그리고 트레일 브레이킹(Trail Braking)

코너링에 앞서 감속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그저 똑바로 가던 자동차를 돌려놔야하는 만큼, 좌우로 도는 앞바퀴에 더 많은 마찰력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둘째, 그 굽이진 길을 벗어나지 않기 위함이다.

충분히 감속을 했다면 이제 스티어링휠을 꺾을 차례다. 자동차가 노면과 맞닿은 부분은 타이어 뿐. 그나마도 크고 넓은 타이어의 고무 가운데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면은 A4용지 한장 크기에 불과한 컨택패치(Contact Patch)다.

타이어가 실제 노면과 접촉하는 면을 '컨택패치(Contact Patch)'라고 일컫는다. [중앙포토]

타이어가 실제 노면과 접촉하는 면을 '컨택패치(Contact Patch)'라고 일컫는다. [중앙포토]

자동차는 이 좁은 컨택패치를 통해 달리고, 멈추고, 굽이진 길을 돌며, 차량의 무게를 분산시킨다. 여기서 정상적인 마찰력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비싼 돈을 들여 첨단 안전장비를 장착한들 무용지물이다. 관성이나 중력 가속도에 의해 미끄러지는 한낱 쇳덩이에 불과한 것이다.

때문에 감속과 선회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트랙션 서클(Traction Circle)을 머리에 그려봐야 한다. 타이어가 지닌 마찰력의 한계는 분명하다. 트랙션 서클은 전후좌우 타이어가 활용할 수 있는 마찰력의 임계치를 가상으로 그린 원이다.

[사진 포뮬러1 딕셔너리 홈페이지]

[사진 포뮬러1 딕셔너리 홈페이지]

위에서 언급한 풀 브레이킹은 타이어가 지닌 마찰력을 최대로 활용해 감속을 하는 것, 다시 말해 종방향 그립을 최대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이때 타이어는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횡방향 그립을 갖고있지 않다. 이 상황에선 아무리 스티어링휠을 돌려봤자 타이어는 그저 비명을 지르며 관성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하중이 가는 곳에 그립이 있다. [사진 메르세데스 AMG DTM 홈페이지]

하중이 가는 곳에 그립이 있다. [사진 메르세데스 AMG DTM 홈페이지]

스티어링휠을 돌리고 싶다면 그만큼 브레이크를 풀어줘야 한다. 타이어가 좌우 방향으로 사용할 여분의 마찰력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가장 쉽고 단순한 코너링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충분히 감속하고, ② 스티어링휠을 조작하고, ③ 재가속하는 것이다. 1등을 달리는 드라이버든 꼴찌 드라이버든 이 과정을 수행하는 것은 똑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남들보다 빨라질 수 있을까. 실천이 어려울 뿐, 답은 단순하다. 재빨리 감속하고, 재빨리 가속하면된다. 바로, 트레일 브레이킹이다.

브레이킹은 곧 '코너링의 시작'이다.

브레이킹은 곧 '코너링의 시작'이다.

A라는 차량이 있다. 이 차의 한계 횡그립은 정해져 있다. 당신의 눈 앞에 코너가 놓여있다. 아무런 뱅크나 경사가 없는 이 코너에서 당신의 차는 60km/h의 속도 이상으로는 돌아나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은 위의 '감속→선회→가속' 이라는 3단계를 나눠서 실천하는 일이다. 스티어링휠을 돌리기 전, 브레이킹을 통해 속도를 60km/h까지 늦춘다. 스티어링휠을 돌린다. 코너를 지나 직선 구간이 나오면 액셀레이터를 밟는다.

이 과정에서 맹점이 있다. 코너를 돌아나가기 전, 다시 말해 '턴인(Turn-In)'을 하기 전 이미 당신은 60km/h라는 제한속도에 맞춰 감속했다. 스티어링휠을 꺾고 코너를 돌아나가는 와중에 당신은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밟고 있지 않다. 속도는 60km/h에 유지되고 있을까? 아니다. 동력을 가하지 않는데다 선회를 하며 마찰력이 가해져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코너를 다 돌아나가고 액셀레이터에 발을 가져가기 직전, 차의 속도는 50km/h까지 떨어져 있다. 패배다. 뒷차는 당신을 추월할 것이다.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사진 모터트렌드 유튜브 캡처]

트레일 브레이킹의 경우는 어떨까. 코너를 앞두고 풀 브레이킹을 한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는 만큼 조금씩 브레이크 페달을 풀어준다. '무리해서 들어온 것 아닌가' 겁이 나지만 어느순간 코너 한 가운데에서 속도계는 60km/h를 가리키고 있다. 절반의 성공이다. 코너를 돌아나갈수록 스티어링휠을 다시 풀어준다. 또 그만큼 액셀레이터 페달을 조금씩 밟는다. 성공이다. 감속에서 앞섰고, 가속에서도 앞섰다.

성공적인 코너링을 위해선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머릿속에 제 아무리 '트레일 브레이킹'을 떠올린들, 실전에서 이를 실천에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 이 역시도 과유불급이다. 브레이킹의 양과 스티어링휠의 조타량을 맞추지 못하면 자동차는 바로 스핀하고 만다.

그저 어렵기만 할까. 이를 깨닫기까지 많은 양의 타이어를 태워야 하고, 브레이크 패드를 써야 하며, 당연히 연료도 써야 한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한 번 서킷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모터스포츠를 취미로 삼은 직장인 드라이버들에겐 더더욱 그렇다. '그럼 어떻게 익히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2년째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안 따라주는 현상을 겪으며 찾은 대안이 있다. 바로 시뮬레이터다.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다면? 집에서 연습해보자

스포츠 드라이빙을 취미로 하는 사람이나 아마추어 드라이버에겐 이만한 연습 도구도 없다. 집, 또는 집 근처에서 부담 없이 연습하기엔 최고인 것이다. 하루에 100바퀴를 돈다고 해도 타이어 걱정도, 브레이크 걱정도, 기름 걱정도 없다. 혹시나 실수를 해서 벽에 부딪혀도 괜찮다.

[사진 맥라렌 혼다 F1 홈페이지]

[사진 맥라렌 혼다 F1 홈페이지]

혹자는 이를 두고 '게임기로 무슨 연습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외 할 것 없이 프로 선수들도 비시즌 또는 시즌 중간중간 시뮬레이터를 통해 드라이빙과 차량의 세팅을 점검하곤 한다. 시뮬레이터를 그저 재미만을 위한 '게임기'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다.

시뮬레이터는 날로 발달하는 기술로 점차 실제 환경과 흡사한 레이싱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타이어와 노면의 특징, 그에 대한 차량의 피드백 등을 실제 주행과 매우 흡사하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시뮬레이터를 통한 연습뿐 아니라 이를 통한 실제 드라이버 선발도 이뤄질 정도다.

레이싱 시뮬레이터는 특히 해외에서 많이 활성화 되어있다. F1에 참가중인 맥라렌 혼다 팀은 이달 초, 전세계의 시뮬레이터 게이머를 상대로 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자들은 실제 맥라렌 F1 팀에서 근무중인 시뮬레이터 드라이버를 비롯해 팀의 베테랑 드라이버인 페르난도 알론소와도 실력을 겨루게 된다. 1등을 차지하는 게이머에겐 팀의 공식 시뮬레이터 드라이버로 채용되는 특전이 주어진다.

독일의 투어링카 대회인 DTM에 참가중인 메르세데스 AMG 팀도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제 프로 선수들과 실력을 겨룰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지난해엔 파이널 라운드에서 실제 DTM 경기의 캐스터와 해설자가 현장에 나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대회를 중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같이 시뮬레이터와 실제 카레이싱을 연계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시뮬레이터를 통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드라이버에게 실제 모터스포츠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사진 GT기어·INTU 레이싱 제공]

[사진 GT기어·INTU 레이싱 제공]

레이싱 시뮬레이터 대회인 '사이드바이사이드'는 지난 19일부터 1라운드 경기를 진행중이다. 참가자들은 시뮬레이터 '아세토 코르사'를 통해 쉐보레의 경차 스파크를 타고 인제 스피디움을 달리게 된다.

다음달 3일 종료되는 1라운드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참가자는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파이널 라운드의 우승자에겐 대한자동차경주협회 공인 대회인 2017 엑스타 슈퍼챌린지의 스파크 원메이크 경기에 출전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공부하는 다이어리'인 모터스포츠 다이어리, 코너링과 시뮬레이터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주에 이어진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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