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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실망스러운 이낙연 총리 후보자 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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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24일 막 올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컸다. 우리는 조기 대선과 안보·경제 쌍끌이 위기 속의 첫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투명한 처리를 주문해 왔다. 정치권도 후보자의 사소한 잘못을 들춰내 발목을 잡는 대신 정책과 능력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 만큼 이번 청문회는 추궁하는 의원들이나 답변하는 후보자 모두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 희망이 컸다.

신속·투명 청문회 기대 컸지만 #후보·야당 모두 구태 못 벗어나 #남은 하루 ‘송곳 검증’ 실현하길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역시나'였다. 이 후보자는 탈세, 위장전입, 아들 병역, 부인의 그림 강매 의혹 등 눈감고 넘어가기 힘든 여러 건의 의혹이 제기됐다. 특히 2001년 현역 입대 판정 뒤 어깨 탈구로 병역을 면제받은 아들과 관련, 이 후보자는 당시 병원 자료를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아 야당의 반발을 자초했다. 어깨 탈구는 병역 면탈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이 후보자는 말로만 의혹을 부인할 것이 아니라 관련 자료를 낱낱이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 이 후보자는 국회가 요구한 자료 1042건 중 802건의 자료를 제출했지만 병역·탈세·강매 등 논란이 집중된 사안들에 대한 자료는 상당 부분 누락됐다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야당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이 후보자의 개인적 의혹 추궁에는 열을 올렸지만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남 출신인 이 후보자의 총리 지명은 문재인 정부의 탕평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사다. 야당도 쉽게 반발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발목 잡기와 자료 제출은 다른 문제다. 검증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건 국회의 권위와 법치주의에 도전하는 행위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청문회 도중 이 후보자를 추궁한 야당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으로부터 한 사람당 수백 건씩 '문자 폭탄'을 받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협치 의지를 퇴색시키는 몰상식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최순실 사태'로 7개월 넘게 마비돼 온 국정운영 시스템을 하루빨리 정상화해야 할 책무를 안고 있다. 전 정부 사람들이 장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정상적 구조를 바로잡고 정상적인 '문재인 정부'를 가동시키려면 총리 인준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총리가 빠른 시일 안에 인준을 받고 장관 임명제청권을 행사해야 새 정부 내각 인선이 완료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총리 후보의 검증은 어정쩡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탄핵정국으로 이완된 공직사회의 기강을 되살리고, 원만한 협치를 위해서라도 총리 후보자의 도덕성과 능력에 대해선 송곳 검증이 불가피하다. 청문회는 오늘까지 이어진다. 이 후보자는 야당들의 자료 제출 요구에 성실히 응하고, 야당들도 발목 잡기식 추궁으로 총리 후보자의 인준에 제동을 걸어온 악습과는 결별해야 한다. 청문회가 고위 공직자의 자질 검증이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여야 간 힘겨루기의 장으로 변질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