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권 주도의 사법개혁은 법적 안정성 해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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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법원에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 조짐이다. 진보 성향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의 지명, 사법 개혁을 주장하는 판사 출신의 청와대 법무비서관 기용,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요구하는 일선 판사들의 움직임이 그 전주곡이다. 청와대가 신임 법무비서관의 발탁에 대해 “대법원장 권한 분산, 법관 독립성 등 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의지가 남다르다”고 밝힌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청와대가 '사법 개혁’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를 에둘러 표명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에는 ‘사법 권력’의 대이동이 벌어진다. 모두 14명의 대법관 가운데 오는 9월 임기가 끝나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해 13명이 바뀌고,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이 교체된다. 통합진보당 해산과 전교조의 법외노조 사건에서 반대 의견을 냈던 진보 성향의 헌재소장 지명은 문 대통령의 뜻을 엿보게 한다. 이상훈 전 대법관과 박병대 대법관 후임도 조만간 대법원장의 제청을 받아 문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석인 헌재 재판관 1명도 곧 채워진다. 두 최고 사법기구의 달라질 수뇌부 구성은 판결뿐 아니라 사법부의 전반적인 틀에도 여파가 몰아친다는 얘기다.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역할도 주목된다. 그는 최근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와 갈등을 빚었던 개혁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간사를 맡아 이끌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개혁에 목소리를 냈던 '우리법연구회'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대법원장의 인사권 분산과 사법행정권 독점 문제 등을 논의할 전국법관대표회의까지 예정돼 있어 사법부는 변혁의 회오리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법부의 폐쇄주의와 권위적 재판문화 등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사법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타당하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주도하는 방식은 법의 안정성을 해치고, 코드 인사와 이념 편향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사법 개혁을 하겠다면 중립적인 국민적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해봄직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