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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이사장 비판했다고…학보 회수한 서울 사립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숭실대학교 학보사 ‘숭대시보’는 이번 주 초 학내 가판대에 올렸던 1189호 신문 전부를 회수해 폐기했다. 대신 2면 톱 기사를 바꾼 새 신문을 배포했다. 원래 신문의 2면 톱 자리에는 숭실대 법인 이사장인 김삼환 목사의 교회 세습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가 있었다. 새로운 신문에는 이 기사 대신 학내 서버가 해킹당한 것으로 오해받았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김 이사장 기사에 대해 대학 본부가 부정적인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신지민 숭대시보 편집장은 “해당 기사를 두고 학교 측과 학보사 간 이견이 있었다. 학교와 협의가 덜 끝난 상황에서 기사가 나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1189호 신문은 지난주에 배포됐어야 했다. 하지만 김 이사장 기사를 두고 기자단이 학교 측과 갈등을 빚으면서 배포가 한 주 미뤄졌다. 이번 주에도 신문 회수 소동이 일면서 결국 기사 배포가 두 주 늦어졌다.

숭실대 학보 '숭대시보' 1189호 1면 오른쪽 하단에는 학교와의 마찰로 신문 발행이 한 주 늦어진 것에 대해 독자의 양해를 구하는 글이 실렸다. [사진 숭대시보]

숭실대 학보 '숭대시보' 1189호 1면 오른쪽 하단에는 학교와의 마찰로 신문 발행이 한 주 늦어진 것에 대해 독자의 양해를 구하는 글이 실렸다. [사진 숭대시보]

 이 같은 내용은 자신을 숭대시보 기자라고 밝힌 익명의 글쓴이가 23일 페이스북 페이지 ‘숭실대학교 대나무숲’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글쓴이는 “학교 법인은 중립과 독립의 원칙을 지키는 숭대시보의 편집권을 침해했고, 이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썼다.

학생들의 관심이 몰리자 숭대시보는 “(페이스북 글은) 학보사 전체의 의견이 아니다”며 “해당 기사는 다음 주 지면에 그대로 싣기로 학교와 합의를 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의 편집권 침해 논란에 대해서는 “기자마다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결국 기사를 내기로 학교와 의견을 모은 것에 의의를 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숭실대는 “학내 언론을 탄압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총장 취임 기념 기사와 법인 이사장 비판 기사가 함께 실리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 비판 기사를 한 주 미뤄달라고 했을 뿐”이라며 “편집장과 총장 사이에 그렇게 얘기가 오갔는데 막상 신문이 나온 것을 보니 이사장 기사가 2면에 실려 있어 회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학보사에 대한 대학의 편집권 침해 논란은 종종 발생해왔다. 지난 3월 서울대 학보사 ‘대학신문’은 주간교수의 과도한 편집권 간섭에 반발하는 의미에서 호외를 내고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당시 주간교수는 시흥캠퍼스 반대 학생 농성 기사 비중을 줄이고 개교 70주년 기념 기사 비중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서울과학기술대 학보사는 지난 4월 단과대 학생회비 횡령을 보도한 기사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 측이 신문 배포를 방해하자 규탄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독립언론을 만드는 식으로 대안을 찾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보사는 규정상 대학 총장이 발행인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의 편집권 개입을 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청년단체 대학언론협동조합은 공공기관인 사회적기업진흥원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학교와 학생회 모두로부터 독립적인 대학언론을 지원하는 ‘N대알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 한국외대의 ‘외대알리’를 시작으로 현재 성공회대, 이화여대, 세종대 등 4개 학교에서 독립언론 ‘알리’가 만들어졌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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