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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신세계를 만나다…올드타운 센트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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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빌딩이 즐비한 국제도시이자 쇼핑과 식도락의 천국. 우리가 흔히 아는 홍콩의 모습이다. 지금처럼 많은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들어오기 전엔 쇼핑 하러 가는 도시였고, 고층빌딩이 만들어내는 야경을 보며 맛있는 중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도시가 홍콩의 전부인 줄 았았다. 하지만 홍콩의 ‘올드타운 센트럴’을 만난 후 홍콩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동ㆍ서양 문화가 어우려진 올드타운 센트럴에서 새로운 홍콩을 발견했다. 이토록 매력적인 홍콩을. 홍콩=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의 오래된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 골목마다 개성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윤경희 기자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의 오래된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 골목마다 개성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윤경희 기자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 골목의 벽화. [사진 홍콩관광청]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 골목의 벽화. [사진 홍콩관광청]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은 홍콩섬의 셩완과 센트럴 지역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홍콩 역사와 최신 트렌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인기가 높아지자 홍콩관광청이 2016년 11월부터 ‘올드타운 센트럴’이란 이름을 붙여 도보 코스로 개발했다.
이곳은 근대 홍콩 역사가 시작된 곳인 동시에 156년간의 영국 식민 시대가 시작된 장소다. 아편전쟁 후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체결한 난징조약(1842)으로 홍콩 섬은 영국 지배하에 들어갔다. 앞서 영국군은 1841년 올드타운 센트럴 지역을 시작으로 홍콩을 점령해나갔다. 이런 역사적 배경 덕분에 이곳은 홍콩과 영국, 두 문화가 공존하는 독특한 색깔을 가지게 됐다.

오른쪽 하늘색 간판 가게는 에그 타르트로 유명한 '타이청', 왼쪽 가게는 서양식 사탕을 파는 '올드 스위트 쇼퍼'다. 동서양이 공존하는 홍콩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 윤경희 기자

오른쪽 하늘색 간판 가게는 에그 타르트로 유명한 '타이청', 왼쪽 가게는 서양식 사탕을 파는 '올드 스위트 쇼퍼'다. 동서양이 공존하는 홍콩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 윤경희 기자

'첨밀밀'의 장만옥처럼
지난 4월 14일 셩완과 센트럴 지역에 걸쳐 길게 뻗어 있는 도로인 할리우드 로드에서부터 올드타운 센트럴 관광을 시작했다. 할리우드 로드는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로, 1990년대말 인기를 끈 영화 ‘첨밀밀’에서 남녀 주인공 여명과 장만옥이 걷던 그 거리다. 이름만으로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따왔나 싶지만 이곳 역시 미국 할리우드 이름의 유래처럼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홀리트리(감탕나무)가 심어져 있어 붙은 명칭이란다.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지금 홀리트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할리우드 로드의 '마데라 할리우드 호텔'. 미국 할리우드를 연상케하기도 하지만 사실 홍콩 할리우드 로드 이름은 과거 길가에 많았던 할리트리(감탕나무)에서 따왔다. [사진 홍콩관광청]

할리우드 로드의 '마데라 할리우드 호텔'. 미국 할리우드를 연상케하기도 하지만 사실 홍콩 할리우드 로드 이름은 과거 길가에 많았던 할리트리(감탕나무)에서 따왔다. [사진 홍콩관광청]

할리우드 로드는 세련된 레스토랑과 바, 패션 매장 등이 모인 ‘소호’와 최근 홍콩의 젊은 층 사이에서 뜨는 ‘노호’ ‘포호’ 지역을 관통한다. 도로 남쪽이 소호, 북쪽이 노호, 서쪽 끝 오래된 주택가 ‘포 힝 퐁’(Po Hing Fong) 인근이 포호다. 할리우드 로드를 따라 세 지역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성인 여성 걸음으로도 30~40분 정도면 충분하다.
거리는 발걸음을 뗄 때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뉴욕의 소호 거리에서나 볼 듯한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를 조금 지나가면 옆 골목 어귀엔 세월을 짐작케하는 낡은 간판의 딤섬집이 나온다. 다시 몇 걸음 걷지 않아 현대 미술작품을 전시한 자그맣고 예쁜 갤러리가 등장하는 가하면 또 얼마 안 가 골동품 상점이 나타나는 식이다.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의 골목. 골목 한쪽엔 오래된 중국 음식점이, 다른 한쪽엔 서양 수제 맥주와 스테이크 파는 가게가 있다. 윤경희 기자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의 골목. 골목 한쪽엔 오래된 중국 음식점이, 다른 한쪽엔 서양 수제 맥주와 스테이크 파는 가게가 있다. 윤경희 기자


골목에서 마주치는 역사

홍콩 포팅거 스트리트의 계단은 역사적 의미가 깊다. 1841년 시작된 영국 식민시절에 홍콩 노동자들은 항구에서부터 이 계단을 통해 영국군 거주지였던 언덕위로 무거운 짐을 날랐다.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사진 홍콩관광청]

홍콩 포팅거 스트리트의 계단은 역사적 의미가 깊다. 1841년 시작된 영국 식민시절에 홍콩 노동자들은 항구에서부터 이 계단을 통해 영국군 거주지였던 언덕위로 무거운 짐을 날랐다.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사진 홍콩관광청]

역사적으로는 영국군이 처음 점령 깃발을 꽂았다는 할리우드 공원과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한 옛 홍콩 경찰청 건물, 홍콩 노역자들이 영국 관료들 짐을 나르기 위해 다녔다는 계단이 있는 포팅거 스트리트,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만모사원까지 두루 볼 수 있다.
현지인 가이드 오드리 입씨는 "이중 포팅거 스트리트의 계단과 만모사원은 영국군이 처음 들어왔을 당시 노역을 했던 홍콩 사람들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항구에서부터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던 당시 노역자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최근 낡은 거리를 현대적으로 재정비하고 있지만 포팅거 스트리트의 계단은 작고 울퉁불퉁한 옛 모습 그대로 놔둔다는 얘기였다. 그는 "힘든 노역 생활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보니 기댈 곳을 찾아 사찰을 많이 찾았고 자연스레 만모사원이 지역민들에게 중요한 공간이 됐다"고 덧붙였다. 골목 곳곳에 작은 사찰이 많이 들어선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와 현재, 동서양이 하나로 어우러진 공간 #영국 식민 시대의 시작 이젠 트렌드 이끌어 #오래된 맛집과 트렌디한 브런치집 공존 #할리우드 로드 따라 걸으며 홍콩 엿보기

골목이 갤러리, 곳곳에 숨겨진 벽화 찾기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의 벽화. 최근 한국 여행객 사이에서 사진 예쁘게 나오는 곳으로 소문난 곳이다. [사진 홍콩관광청]

홍콩 올드타운 센트럴의 벽화. 최근 한국 여행객 사이에서 사진 예쁘게 나오는 곳으로 소문난 곳이다. [사진 홍콩관광청]

이 지역에 크고 작은 갤러리가 생겨나면서 함께 이주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거리의 낡고 허름한 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벽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공들여 그린 그림들은 옛 건물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 이 지역을 관광 명소로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래서 올드타운 센트럴 여행은 별도의 교통수단 없이 도보로 충분하다. 아니 도보여야만 한다. 마치 그물처럼 촘촘히 연결돼 있는 수많은 좁은 골목길에 있는 볼거리를 들을 둘러 보려면 말이다. 천천히 걷지 않고서는 제대로 그 ‘맛’을 볼 수 없다. 대강 둘러만 보겠다고 마음먹으면 30분도 충분하지만 하나하나에 집중한다면 하루 온종일로도 시간이 부족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즐기다

홍콩 캣 스트리트의 골동품 가게. [사진 홍콩관광청]

홍콩 캣 스트리트의 골동품 가게. [사진 홍콩관광청]

올드타운 센트럴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 중 하나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골동품 거리 캣 스트리트(어퍼 라스카 로우)의 구경이다. 과거 장물을 팔던 곳이 세월이 흐르면서 값이 그리 비싸지 않은 옛 물건을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골동품점이 많던 시절의 인사동과 비슷한 느낌이다. 불상이나 중국 여인의 전족 같은 역사가 느껴지는 오래된 물건부터 마오쩌둥 배지나 오래되서 칠이 다 벗겨진 시계처럼 ‘이런 것도 팔릴까’ 싶은 다양한 물건들을 판다.
기념품을 사보려는 마음에 한 가게에서 물건을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미국인 부부 사이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남편이 고풍스러운 장식이 달린 칼 한 자루를 사겠다고 집어 들자 아내가 말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잠시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가게 주인은 아내에게 “딸이냐”고 물어 아내의 웃음을 자아내더니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경찰 기숙사를 홍콩 신진 디자이너들이 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PMQ.층마다 작업실과 공방, 레스토랑 등이 있다.[사진 홍콩관광청]

경찰 기숙사를 홍콩 신진 디자이너들이 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든 PMQ.층마다 작업실과 공방, 레스토랑 등이 있다.[사진 홍콩관광청]

사실 골동품 거리보다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홍콩의 매력을 제대로 보려면 소호 지역의 PMQ(Police Married Quarters)가 제격이다. 1951년 지어진 경찰 기숙사를 2014년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매장과 스튜디오, 레스토랑 등이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바꿨다. 이후 젊은이들이 찾는 이 지역의 명소가 됐다. 홍콩 아티스트 외에도 해외 문화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종종 열리는데 지난 5월 11일부터는 서울디자인재단과 협력해 ‘DDP 팝업 스토어’를 열어 한국 신진 디자이너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할리우드 로드의 사탕수수 주스 가게 '콩리'. 1947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전통방식으로 짠 사탕수수 주스를 팔고 있다. 윤경희 기자

할리우드 로드의 사탕수수 주스 가게 '콩리'. 1947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전통방식으로 짠 사탕수수 주스를 팔고 있다. 윤경희 기자

실크스타킹 같이 얇고 촘촘한 그물망에 차를 내려 밀크티를 만드는 '랑 퐁 유엔'의 직원. [사진 홍콩관광청]

실크스타킹 같이 얇고 촘촘한 그물망에 차를 내려 밀크티를 만드는 '랑 퐁 유엔'의 직원. [사진 홍콩관광청]

에그 타르트부터 악마쿠키까지
동·서양의 음식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올드타운 센트럴의 매력이다. 세련된 케이크와 빵, 디저트 가게가 많지만 1947년부터 지금까지 전통방식으로 사탕수수를 짜내 만드는 ‘콩리’의 슈가케인(사탕수수) 주스, 스타킹처럼 얇고 촘촘한 망에 걸러 만드는 64년 된 ‘랑 퐁 유엔’의 밀크티는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꼭 마셔봐야 하는 음료'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습한 날씨에 타 들어가는 목을 콩리의 슈가케인 주스 한 잔으로 달래고 양 손엔 60년 역사의 홍콩 유명 디저트 가게 ‘타이청’의 에그 타르트와 홍콩을 찾는 이들 십중팔구는 꼭 사온다는 ‘마약쿠키’라는 별명이 붙은 ‘제니 베이커리’의 버터쿠키를 들었다. 홍콩의 문화가 담뿍 담긴 과자봉투, 명품 가방보다 낫다.

1954년 문을 연 홍콩 '타이청'의 에그타르트.[사진 홍콩관광청]

1954년 문을 연 홍콩 '타이청'의 에그타르트.[사진 홍콩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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