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굿모닝 내셔널]인류 최초 쌀 기원지 기념 조형물이 청주에 들어선 사연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98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된 '청주 소로리 볍씨' [사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1998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된 '청주 소로리 볍씨' [사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와~. 드디어 볍씨를 찾았다.”
1998년 1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 A지구(토탄 2구역) 구석기 유적 발굴현장. 97년 11월부터 석달째 밤낮으로 볍씨를 찾던 충북대 조사단 일행에 낭보가 전해졌다. 2.5m 깊이 구덩이 아래 토탄층(土炭層·유기물 점토)에서 형태가 온전한 볍씨가 발견된 것이다. 한겨울 유적지 옆 비닐하우스에서 충북대 학생과 이곳 주민이 일일이 손으로 흙덩어리를 쪼개 볍씨를 찾던 중 벌어진 일이다.

1998년 2월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파낸 흙 덩어리에서 충북대 조사단이 볍씨를 찾고 있다. [사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1998년 2월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파낸 흙 덩어리에서 충북대 조사단이 볍씨를 찾고 있다. [사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충북대 조사단은 그해 4월까지 소로리에서 고대벼(ancient rice) 18톨과 유사벼(quasi rice) 41톨을 발견했다. 이후 2001년 진행된 추가 조사에서 유사벼 68톨을 더 발견해 학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주 소로리 볍씨를 찾았다”고 발표한다.

1998년 '청주 소로리 볍씨' 발견, 1만7000년 전 쌀 수확 근거 #세계적 고고학 개론서 쌀 기원지를 중국에서 한국으로 수정 #"인류 최초 원조벼 명성 잇자"…소로리 유적에 볍씨 모양 조형물

당시 충북대박물관장으로 조사단장을 맡아 청주 소로리 볍씨 연구를 주도해 온 이융조(76)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 그는 “소로리에서 발견한 볍씨와 토탄을 미국의 연구소와 서울대에 보내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을 했더니 이들 볍씨가 1만2000~1만2500년, 토탄은 1만2000~1만392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며 “탄소 연대 측정 값을 ‘다시 계산하기’ 방법으로 환산하면 청주 소로리 볍씨의 실제 출토 연대는 약 1만5000~1만7000년 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된 '청주 소로리 볍씨'. 소지경이 인위적으로 잘린 흔적이 보인다. [사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1998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견된 '청주 소로리 볍씨'. 소지경이 인위적으로 잘린 흔적이 보인다. [사진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 이사장은 2003년 미국에서 열린 제5차 세계 고고학대회에서 청주 소로리 볍씨를 세계 최고(最古) 볍씨로 발표했다. 청주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97년 중국 후난성(湖南省) 위찬옌(玉蟾岩)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다. 이 볍씨는 약 1만2000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에서 발견된 청주 소로리 볍씨가 중국보다 최소 3000년이나 앞선 것이다.

고고학계는 뒤집어졌다. 구석기 유적에서 인류 최초의 재배벼 흔적이 발견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중국 양쯔강 유역에서 발원해 한반도 등 아시아로 퍼지는 벼 전파 경로의 정설을 한번에 뒤집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청주 소로리 볍씨 발견을 계기로 세계적인 고고학 개론서인 『고고학(Archaeology)』에는 쌀의 기원지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바뀌었다. 91년에 발간된 이 책은 2003년까지 중국 후난성에서 출토된 볍씨를 근거로 쌀의 기원을 중국 양쯔강 유역으로 표기했다. 하지만 2004년(4판) 출간된 책부터 지난해 발간한 최신 개정판(7판)까지 쌀의 기원지를 한국으로 명시했다. 한국에서는 2006년『현대 고고학의 이해』로 번역 출판됐다.

세계적인 고고학 개론서인 『고고학(Archaeology)』에 한국이 쌀의 기원지로 표기돼 있다. 한국에서는 2006년 『현대 고고학의 이해』로 번역 출판됐다. 최종권 기자

세계적인 고고학 개론서인 『고고학(Archaeology)』에 한국이 쌀의 기원지로 표기돼 있다. 한국에서는 2006년 『현대 고고학의 이해』로 번역 출판됐다. 최종권 기자

세계적인 고고학 개론서인 『고고학(Archaeology)』에 벼가 최초로 순화된 위치가 한국으로 표시돼 있다. 1만5000년 전(BC 1만3000년)에 인류가 벼를 생산했다고 연대표에 나와있다. 사진 최종권 기자

세계적인 고고학 개론서인 『고고학(Archaeology)』에 벼가 최초로 순화된 위치가 한국으로 표시돼 있다. 1만5000년 전(BC 1만3000년)에 인류가 벼를 생산했다고 연대표에 나와있다. 사진 최종권 기자

소로리 볍씨는 오늘날 재배벼의 기원이자 원조벼로 평가받고 있다. 소로리 볍씨(고대벼)는 벼의 줄기 부분과 낱알을 연결하는 ‘소지경’이 인위적으로 잘린 흔적이 발견된데다 현대 벼의 종류인 자포니카(Japonica)종과 인디카(Indica)종 모양의 볍씨가 모두 발견됐다. 고대벼 18톨에서는 현대 재배벼의 특징인 '유봉돌기(볍씨 껍질에 있는 젖꼭지 모양의 돌기'가 발견됐다. 자포니카종은 한국과 일본, 중국 등에서 먹는 쌀로 씨앗 길이가 짧다. 반면 인디카종은 낱알이 길쭉하고 밥을 지었을 때 찰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이사장은 “소로리 볍씨는 야생벼의 초기 재배단계와 농경이 완전히 정착되는 과정에 있었던 ‘순화벼(domesticated rice)’로 해석할 수 있다”며 “세계 벼의 기원과 진화의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는 지난해 11월 소로리 볍씨가 발견된 옥산면 소로리 입구에 볍시 모양의 조형물을 세웠다. 청주=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시는 지난해 11월 소로리 볍씨가 발견된 옥산면 소로리 입구에 볍시 모양의 조형물을 세웠다. 청주=최종권 기자

청주시는 지난해 11월 소로리 마을 입구에 높이 5.5m의 소로리 볍씨 조형물을 세우고 시청 상징물(CI) 역시 소로리 볍씨 모양으로 바꿨다. 19년 전 발견한 소로리 볍씨의 의미를 되새기고 청주가 쌀 기원라는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승훈 청주시장은 “소로리 볍씨가 세계 최고의 인류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로리 볍씨 상징물을 설치했다”며 “소로리 유적을 쌀 농사의 기원지로 국내외에 인식시키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관련기사

굿모닝 내셔널 더보기

굿모닝 내셔널

굿모닝 내셔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