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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사교육은 SRT를 타고..지방학생들, 대치동 유학 늘어

중앙일보

입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 20일 오후 12시 39분, 서울 강남구의 수서역에 부산발 수서고속열차(SRT)가 도착했다.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남색 가방을 멘 학생이 눈에 띄었다. 오른손에 영어 단어장을 들고 있어 고교생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해말 SRT 개통, 지방서 대치동 접근 빨라져 #천안에서 대치동까지 KTX는 2시간, SRT는 50분 #일부 학원들 주말반 확대 "입시 임박하면 붐빌 것" #"대입 정책 때문에 유학 효과 크지 않을 것" 분석도 #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그는 “평택 지제역에서 오후 12시19분 열차를 탔다”고 답했다. 현재 경기도 평택의 일반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윤 모(16) 군이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강남구 대치동 수학전문 A학원. 매주 토요일 정오를 조금 넘어 집에서 출발하는 윤 군이 대치동 학원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채 1시간이 안된다.

 윤 군은 지난 3월부터 토요일마다 대치동 학원을 오가고 있다. 그는 “수학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아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대치동 학원이 워낙 유명하다고 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집에서 대치동까지 왕복 4시간 이상 걸려 엄두를 못 냈다. 하지만 지난해 말 SRT가 개통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윤군은 “지제역에서 20분이면 수서역에 도착할 수 있다. 매일 등교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비슷해 별 부담이 없다”고 했다.

 이처럼 SRT를 이용해 주말에 지방에서 대치동 학원들을 오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 KTX(고속열차)나 고속버스·전철에 비해 SRT를 타면 대치동을 오고 가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KTX를 타면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내려 다시 대치동까지 버스·지하철을 이용해 한 시간 가까이 더 이동해야 하지만 SRT는 수서역에서 대치동까지 거리가 가깝고 지하철로 바로 연결된다. 예컨대 천안의 경우 전철이나 KTX를 타면 대치동까지 약 2시간 넘게 걸린다. 반면 SRT는 1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대구나 대전 등 좀 더 먼 지역에서 대치동에 올 때도 SRT를 이용하면 시간이 훨씬 단축된다. 매주 토요일 SRT를 타고 대구에서 대치동 학원을 오가는 중학교 3학년 이 모(14) 군은 “서울역보다 수서역에서 대치동까지 가는 게 편하고 시간도 20~30분 이상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속버스는 길이 막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어 이용이 꺼려진다. 아무래도 SRT가 낫다”고 덧붙였다. SRT 운영사인 SR의 방종훈 홍보실장은 “주말에 수서역에서 혼자 내리는 중고생들이 종종 눈에 띈다”고 전했다.

대치동 학원가는 SRT가 개통되면서 지방 학생들이 많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치동 학원가는 SRT가 개통되면서 지방 학생들이 많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중앙포토]

 대치동 학원가도  SRT 개통에 맞춰 지방학생 유치에 나서고 있다. 특목·자사고 입시전문 B학원은 최근 지방 학생을 겨냥한 주말반을 늘렸다. 화·목은 집에서 동영상 강의를 보고, 학교가 쉬는 토요일에 학원을 찾아와 수업을 듣는 방식이다. B학원의 원장은 “SRT 개통 전엔 평택·천안에서 부모가 2~3시간 차를 운전해서 데려오곤 했는데 이젠 대부분 SRT를 타고 학생 혼자서 다닌다"고 전했다.

 영재학교·과학고 입시를 전문으로 하는 C학원도 주말을 이용한 면접 대비반을 개설할 계획이다. 학원 측은 “경기도는 물론 대전·대구의 학부모 중에도 주말반을 문의하는 이들이 있다”고 밝혔다. 중3 아들을 대치동 수학학원에 보내는 정모(46·대구 범어동)씨는 “특히 자녀를 특목고·자사고에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이 대치동 학원에 대해 관심 높다"고 전했다.

대치동의 특목자사고 입시 전문 학원이 지방에서 오는 학생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대치동의 특목자사고 입시 전문 학원이지방에서 오는학생을 위해 마련한프로그램. [홈페이지 캡처]

 오는 9월 대입 수시 전형을 앞두고 대치동을 찾는 지방 학생이 더 많아질 거란 예상도 나온다. 고교 국어·논술 전문 D학원의 원장은 “지난해에도 논술을 배우러 오거나, 자기소개서를 컨설팅 받기 위해 찾아오는 지방 학생이 있었는데 이젠 SRT 덕에 교통이 더 편해진 만큼 숫자가 더 늘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몇몇 학원은 입시철에 대치역과 수서역을 오가는 학원버스를 운영할까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SRT 유학'이 기대만큼 효과가 크지 않을거란 관측도 있다. 학부모 커뮤니티 디스쿨의 김현정 대표는 “새 정부가 외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대입에서 논술도 줄이겠다고 밝혔다. 대치동식 사교육의 효용이 그만큼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대구 정화여고 박상용 교감도  “최상위권 중에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해 대치동 학원을 다니는 학생이 있지만 비용과 시간을 감안하면 스스로 공부하거나 집 근처 학원을 다니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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