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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선 전부터 교황 중재 구상 … 이념 초월한 극적 효과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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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김희중 대주교(오른쪽)를 만났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월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김희중 대주교(오른쪽)를 만났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의 물꼬를 틀 창구로 교황청의 도움을 구한다는 구상은 오래전부터 기획돼 왔다.

문 대통령,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북핵 해결 위해 김정은 만날 수도” #대북 제재국면서 국제 공감대 숙제 #여권 일각선 회담 실현 회의론도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22일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지난 9년간 단절됐던 남북 관계의 급격한 진전을 이룰 방식을 고민해왔다”며 “여러 가지 가능성 중 하나로 평화의 상징인 교황이 나선다면 정치와 이념을 넘는 극적인 효과가 창출될 수 있다는 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됐다”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대화가 단절됐던 상황에서 이념적 대결을 넘을 사실상의 유일한 방식이라는 공감대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대선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11일 광주대교구청을 방문해 김희중(70)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을 따로 만났다. 오찬 회동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모든 국민의 마음을 모아 갈등과 상처, 분열을 치유하고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지난 16일 그를 교황청에 별도로 파견할 특사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협력 기반을 강화하고자 하는 새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특사 파견 시점부터 문 대통령의 ‘남북 대화’ 재개 의지가 반영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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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대화 가능성은 항상 열어뒀다. 그는 TV 토론에서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김정은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했었다. 대선 공약집에도 ‘남북기본협정을 체결해 남북관계를 바로 세우겠다’며 남북 대화에 무게를 뒀다.

청와대는 다만 남북 정상회담 시기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날 국회의장을 비롯한 각당의 지도부를 면담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남북 대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너무 앞서간 질문”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2014년 8월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이에게 입맞춤하고 있다. 교황은 방한 중 남북 분단에 대한 질문을 받곤 “가족과 형제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데 대한 아픔을 저도 크게 느꼈다”면서도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게 희망의 요소”라고 했다. 기도도 제안했다. [중앙포토]

2014년 8월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미사에 참석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이에게 입맞춤하고 있다. 교황은 방한 중 남북 분단에 대한 질문을 받곤 “가족과 형제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데 대한 아픔을 저도 크게 느꼈다”면서도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게 희망의 요소”라고 했다. 기도도 제안했다. [중앙포토]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중재에 나선다 해도 실현 여부에 대해선 여당 일각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나라위원회와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공동으로 만든 보고서(‘신정부의 국정 환경과 국정 운영 방향’)에는 “남북관계는 국내 정치에 미치는 영향과 4대국 관계 등을 고려해 남북대화의 방식·시기 등에 대한 전략적 관리가 필요하다”며 “조기에 성과를 내려 하거나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외교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도 “남북 정상회담을 하려면 유엔 제재 국면인 만큼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하고 미국과의 협의도 필요한 문제”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 등 실질적 조치 없이 남북 정상회담 성사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로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북 성사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종교의 자유가 없고 정치적 목적의 종교 활동만 허용하는 북한 입장에서는 교황께서 방북을 원하더라도 방북을 허용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간 한반도 위기와 관련해 지속적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어떤 식으로든 문 대통령이 요청한 중재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관련 발언


“주저없이 말한다. 나는 북한을 먼저 가겠다. 단지 사전에 그 당위성에 관해 미국, 일본, 중국에 충분한 설명을 할 것이다.” 2016년 12월 14일(중앙일보 인터뷰)

“북한 핵을 완전히 폐기할 수 있다면 북한에 안 가겠는가?” 2017년 4월 13일(대선후보 TV 토론)

“(북한과의) 보여주기식 회담은 원하지 않는다. 미국과의 사전 협의 없이 북한과 일방적으로 대화하지는 않겠다.” 4월 19일(타임지 인터뷰)

“대화가 가능하더라도 북한의 태도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함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5월 14일(북한 미사일 도발 직후)

강태화·허진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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