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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른자 부동산 4곳, 새 주인 찾기 큰 장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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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 캐피탈호텔 대연회장.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용산 유엔사부지 투자설명회’에 마련된 좌석 230석이 건설사·금융사 관계자와 투자자로 일찌감치 들어찼다. 자리를 못 잡은 수십 명은 연회장 가장자리에 간이 의자를 펴고 앉았다.

용산 유엔사부지 줄줄이 호재 대기 #축구장 7개 면적, 낙찰가 1조 예상 #명동 외환은행·국민은행 본점 건물 #대기업서 복합 상업시설 개발 노려 #한강 인접한 여의도 MBC 옛 사옥 #A급 주상복합 최적지로 주목 받아

허용주 LH 미군기지본부 차장은 설명회에서 “유엔사부지는 명실상부한 서울 심장부다. 교통, 주변 환경, 탁월한 입지여건을 갖춰 향후 용산공원의 관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엔 사업성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수능을 앞둔 입시 설명회를 방불케했다.

옛 유엔사 부지, 옛 외환은행 본점, 옛 문화방송(MBC) 사옥…. 한때 일대를 풍미했던 서울 시내 ‘알짜 부지’들이 새 주인을 찾아 나섰다. 이들 부지는 서울 도심과 용산·여의도 등 입지가 워낙 좋은 곳이라 부동산업계의 관심이 높다. 한동안 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이 중단된 상황에서 구(舊)도심 땅을 잡기 위해 건설사·투자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이태원동 유엔사부지다. 용산국가공원 바로 옆 5만1762㎡ 규모 땅이다. 축구장 7개 크기다. 이태원 관광특구, 대사관 밀집지와 인접한 데다 남산 2~3호 터널, 반포대교를 통해 도심·강남으로 접근하기 쉬운 요지다. 주거 시설을 비롯해 오피스·상업시설·호텔도 지을 수 있어 사업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남뉴타운 개발, 신분당선 북부연장구간 개통, 용산공원 조성 등 호재도 있다. 부동산 업계에선 ‘제2의 유엔빌리지’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남산 조망을 해치지 않도록 해발 고도를 90m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은 “용산은 서울에서 새 아파트 비율이 낮고 강남 등에 비해 저평가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인근 ‘유엔빌리지’나 ‘한남더힐’처럼 도심에 부족한 저층 고급주택 수요를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26일로 예정된 입찰의 최저 입찰가는 8031억원.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곳이 낙찰받는 최고가 경쟁입찰 방식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낙찰가가 1조원에 달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온다. 한 설명회 참석자는 “사업비 등을 감안하면 최소 3.3㎡당 4500만원 이상 가격으로 분양해야 수익을 낼 수 있어 입찰 눈치작전이 치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도심에선 은행 사옥(땅)이 관심을 끈다. 1980년대 수출과 외화 벌이의 상징이던 명동 옛 외환은행 본점(현 KEB하나은행 본점)도 매물로 나왔다. 1만1442㎡ 규모 땅과 지하 3층, 지상 24층 연면적 7만4834㎡ 규모 사옥이다. 핵심 상권인 명동과 롯데백화점 본점, SK텔레콤 사옥과 가까워 오피스·판매시설·호텔을 결합한 복합 상업시설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롯데·CJ 같은 대기업은 물론 부동산개발회사와 외국계 투자가 등 수십 곳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다만 매도자인 KEB하나은행이 희망하는 1조원 이상 매각가가 부담이다. 23일 입찰해 다음달 중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매각가가 최소 4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명동 KB국민은행 본점도 올 상반기 중 입찰에 들어갈 예정이다. 옛 외환은행 본점과 가깝다. 대지면적 2590㎡, 연면적 2만5715㎡짜리 오피스로 본점·별관·주차타워를 모두 매각한다. 2020년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신사옥을 완공할 때까지 일단 명동 본점을 매각하고 다시 임차해 쓰는 ‘세일 앤 리스백’(Sale&Lease back) 방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KBS와 함께 여의도 방송가를 상징해온 옛 MBC 사옥도 매물로 나왔다. 금융사는 물론 한강변과 인접한 요지인 데다 용적률(사업부지 대비 지상건축연면적 비율) 800%를 적용받는 일반 상업지라 관심이 높다. 1만7795㎡ 규모 땅에 업무·상업·주거시설을 갖춘 건물을 짓는 대형 프로젝트다. 사업비만 1조2000억원대로 예상된다. 인근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여의도에서도 A급 이상 입지에 한강 조망권까지 갖춰 주상복합으로 짓는다면 인기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와 자산운용사, 부동산 개발사 등 20여곳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MBC는 다음달 2일까지 입찰을 받은 뒤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부동산 업계가 알짜부지 쟁탈전에 나선 것은 2014년 이후 신규 택지 공급이 중단돼 사업 가뭄에 시달려왔기 때문이다. 도심이 노후화하면서 재건축이나 용도 변경을 필요로 하는 곳도 늘었다. 김승배 피데스개발 대표는 “사업할 만한 땅은 이미 개발돼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며 “비교적 덜 노후한 강남보다 서울 도심이나 용산, 여의도 같은 곳의 도시재생 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위원은 “도심 부지나 대형 사옥은 매각자 한 곳과 협상하면 돼 신도시 개발이나 재건축보다 사업 진행 속도가 빠르고 위험성도 작다”며 “다만 사업비가 많이 들어가는 만큼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수익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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