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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식물 살아가는 기술 응용 ‘청색경제’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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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 녹색기술에 이어 미래 산업의 먹을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청색기술은 생명체의 기본 구조·원리·메커니즘과 자연 생태계, 자연 현상을 모방하거나 모사해 공학적으로 응용하는 기술을 뜻한다. 자연계 빅데이터(동·식물의 오랜 진화의 결과)를 활용해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신성장동력 기술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자원 순환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자원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술 응용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이 2012년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청색경제(Blue Economy)’의 근간이 되는 기술로 청색기술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청색기술로 일본 신칸센을 들 수 있다. 고속 운행에 따른 소음 해결을 위해 물총새의 길쭉하고 날렵한 부리와 머리를 본떠 열차 앞 부분을 디자인했다. 짐바브웨의 자연 냉방 건물은 흰개미의 둥지를 모방한 설계로 한여름에도 22도 안팎을 유지한다. 섬유 분야에서는 잎사귀가 물에 젖지 않고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연잎 섬유, 접착제 분야에서는 도마뱀의 발바닥을 이용한 나노 접착제, 벼룩·잠자리의 탄력성을 모방한 탄성이 좋은 신물질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청색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청색기술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점점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 전문업체 FBEI(Fermanian Business & Economic Institute)는 청색기술 시장이 지난해 43억 달러(약 4조8000억원) 수준에서 2030년에는 1조6000억 달러로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 자연모사 기술 논문의 연평균 증가율은 11.7%, 특허는 12.9%에 이를 정도로 연구·개발(R&D)이 늘어나고 있다. 청색기술 관련 논문 건수를 살펴 볼 때 미국(25%)과 중국(23%)이 양대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화학과 재료과학 분야에서 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물리화학·나노과학 분야에서도 활발히 응용하고 있다. 특히 빛·물·이산화탄소만으로 유용한 화학 물질을 생산해내는 인공 광합성 시스템은 지구 온난화와 에너지 자원 고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R&D가 활발해지고 있다. 자연모사 관련 정부 R&D 과제는 2010년 14건에서 2015년 56건으로 증가 추세다. 자연 모방 삼각(시각·촉각·후각) 센서 기술은 대표적인 청색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파리·딱정벌레를 모사한 초비전(Super vision) 시스템, 거미의 촉각을 모방한 고감도 분산형 진동 센서, 개의 코를 모방한 초고감도 가스 센서가 이미 개발됐다. 나비의 날개 구조를 모방한 광결정 소재·소자도 만들어냈다. 고해상도 프린트용 입자를 대량 제조할 수 있고, 에너지 절감형 창호를 생산할 수 있다.

사막 풍뎅이에서 착안한 저에너지 소비 제습 기술도 눈에 띈다. 사막의 건조한 공기에서 수분을 뽑아내 생존하는 나미브사막 풍뎅이의 등 껍질 구조를 모방한 무동력 제습 기술이 나왔다. 초발수성·초발유성·초친수성을 모두 갖췄다. 프로펠러 비행기, 헬리콥터, 드론과 같이 프로펠러를 사용하는 비행체에서 발생하는 소음도 억제할 수 있다. 비행하는 조류의 날개 구조를 모방해 소음 수준을 지금보다 20%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인간 친화형 로봇 시스템 기술도 핵심 청색기술로 손꼽히고 있다. 국내에서는 간병 관련 로봇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청색기술은 경제성·환경성·사회성을 모두 갖춘 최적의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이처럼 공학적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임에도 아직 상용화에 성공한 제품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개념이 생소한 탓에 많은 연구자와 관련 산업 인력이 접근하기 어려운 편이다. 이 때문에 미래 유망 분야 선정을 위해 세부 분야별로 어디를 미리 지원해야 하는지 우선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의 첫 총리 내정자인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이끄는 전라남도가 청색기술과 관련해 발 빠르게 움직인 지방자치단체로 꼽히고 있다. 전라남도는 지난해 청색기술을 지역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학계·산업계·연구소 등 각계 전문가 23명이 참여하는 ‘전라남도 청색기술 산업화 추진단’을 출범했다. 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와 협의해 청색기술 자원을 적극 발굴하고, 국가사업으로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우기종 전라남도 정무부지사는 “청색기술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새 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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