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7살 된 지훈상 시상식, 나남수목원 책박물관 개관식 연 조상호 대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먼 길 달려온 손님을 맞는 조상호(67) 나남출판사 대표 뒤로 나무들이 줄을 섰다. 조 대표가 “사람보다 낫다”고 했던 그의 자식들이다. 지난 20일 오전 포천시 신북면 갈월리 나남수목원 들머리는 초여름 잔칫집 나들이에 나선 100여 명 각계 인사로 붐볐다. 시인이자 국학자였던 고(故) 조지훈 선생을 기려 만든 ‘지훈상(芝薰賞)’ 시상식에 겸해 나남수목원과 책박물관 개관식이 열린 이날, 조 대표는 긴 인사말로 벅찬 감회를 대신했다.
“지훈상이 17살이 되는 동안 말도 못하는 나무를 껴안고 세상사 어려움을 자꾸 잊어먹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37년 출판사 일에 선배님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으니 다 인연입니다.”

지난 20일 포천시 나남수목원 내 나남책박물관에서 열린 제 17회 지훈상 시상식. 왼쪽부터 이윤학 지훈 문학상 수상자, 조상호 나남출판사 대표, 이영미 지훈 국학상 수상자. [사진 신동연]

지난 20일 포천시 나남수목원 내 나남책박물관에서 열린 제 17회 지훈상 시상식. 왼쪽부터 이윤학 지훈 문학상 수상자, 조상호 나남출판사 대표, 이영미 지훈 국학상 수상자. [사진 신동연]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 전병석 문예출판사 대표, 손주환 전 공보처 장관, 천신일 우리옛돌박물관장 등이 후배가 조근조근 풀어놓는 회고의 인사를 고개 끄덕이며 들었다. 조 대표는 저서인 『언론 의병장의 꿈』과 『나무 심는 마음』을 선물하며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나남수목원을 안내했다.
이어진 지훈상 시상식은 문학상의 이윤학(52) 시인, 국학상의 이영미(56) 성공회대 초빙교수가 마련한 기념 강연으로 참석자들 마음을 적셨다. 이 시인은 후미진 곳에서 격렬하게 운동하는 슬픔을 담담하게 진술한 시집 『짙은 백야』(문학과지성사), 이 교수는 근대한국인의 80년 주요 미감을 ‘신파성’으로 분석한 『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푸른역사)로 각기 수상했다.
이윤학 시인은 지독한 말더듬이던 소년을 책을 읽게 만들고 글을 쓸 수 읽도록 기다려준 초등학교 은사에 대한 고마움을 얘기하며 '노래를 부를 땐 말을 더듬지 않지? 말하고 싶을 땐 노래를 부르면 되겠구나' 다독거려 준 선생님을 늘 떠올린다고 했다.
“어눌한 저는 시를 쓴다기보다 옮긴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메모에 충실합니다. 오래 된 것, 잊고 있던 어떤 순간의 기억이 불쑥 떠오르면 제가 어떻게 반응 하는가 지켜보다가 그 느낌에 가까이 가려 노력하며 옮깁니다. 지훈 선생님의 시는 제게 찔레꽃 향기 같은 잊히지 않는 것이기에 그 고매한 정신을 평생 글을 쓰면서 닮아 가겠습니다.”
이영미 교수는 박사도 아닌 석사, ‘날라리’들이 노는 대중예술 분야를 연구하는 학계의 아웃사이더인 자신에게 이 상은 꿈에도 생각 못한 황감한 일이라고 기뻐했다. 조지훈 선생이 기획한 『한국현대문화사대계』 안에 포함된 대중음악 분야가 유일한 참고 글이었다며 “이제 지훈 선생님이 꾸지람을 내리시진 않겠다 싶어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다.
“서른 즈음에 노동가요에 대한 논쟁에 휘말리면서 대중성이 내 학문 화두구나, 하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저는 외국의 유명한 문화연구자들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술문화운동의 경험으로, 수용자를 중심에 놓고 연구하고 책을 썼습니다.”
이 교수는 보름 전 장례를 치른 남편 박인배 전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시상식에 오고 싶어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며 시종 씩씩하게 말했지만 눈물을 비치고 말았다. “연극쟁이 남편이 도와주는 게 없다고 불평했지만 돌아보니 대중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해준 훌륭한 선배였어요. 그의 영전에 이 상을 바칩니다. 쿨 하게 얘기하고 싶었는데 잘 안되네요….”
포천=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나무처럼 자라는 지훈상, #사람들 인연으로 큰 출판사 오래오래 가기를 희망" # 문학상에 이윤학 시인, 국학상에 이영미 성공회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