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앤다고 고용문제 풀리나

중앙선데이

입력 2017.05.2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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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19면

새 정부에 바란다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지난 10여 년 한국은 꾸준한 경제성장을 보였지만, 일반인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실업률, 집값 등 생활물가와 비교해서 느리게 오르는 임금, 부의 양극화 등을 고려할 때 ‘헬조선’으로 표현되는 절박함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지난 2주 동안 나타난 정규직 전환 약속, 공공부문 주도의 일자리 창출의지 등의 행보는 새 정부가 일반인들의 어려움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개선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로 보인다. 하지만 삶의 질 제고라는 선한 정책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런 굵직한 경제·사회적 정책에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위험하고 불안정할 일에 보상 필요
중소·지방 기업일수록 임금 높아야

선한 정책의도만으로 해결 어려워
구직시장·인사제도 투명화 나서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낮은 임금과 처우를 감내해야 하는 불합리를 줄이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환영한다. 그런데 과연 정규직화가 유일한 방법인가? 또 이 방법이 삶의 질을 크게 높혀 줄여줄 수 있는가? 필자의 대답은 아니오다.

비정규직 제도는 1997년도 외환위기 직후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도입됐다.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장시간의 노동을 제공하기 어려운 가정주부 혹은 직업 훈련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미숙련 노동자들의 취업기회를 늘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에서 보듯이 기업에게는 낮은 비용으로 노동력을 사용하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개인은 긍정적인 효과를 경험하기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처럼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기에 앞서, 왜 도입 당시에 기대한 정책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용 문제가 입시·취업 등 사회문제 불러

이론적으로는 노동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개인의 임금은 회사의 이익 창출에 기여한 것에 비례해 보상을 받는다. 이 원칙을 ‘동일 기여, 동일 임금’이라고 부른다. 열악한 업무환경, 위험을 동반한 업무, 불안정한 고용기간 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피하는 특성을 가지는 직장은 그렇지 않은 직장에 비해 더 많은 임금을 제공하여야 한다. 이 원칙이 ‘보상적 임금격차’다. 한국에서 두 가지 원칙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현재의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해 보자. 두 명의 사원이 기여한 바가 같다면 정규직이던 비정규직이던, 직접고용이든 파견사원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 더 나아가 안정성이 떨어지는 비정규직으로 고용할 때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이 원칙이 정확히 반대로 나타난다. 대기업·중소기업, 수도권·지방소재 기업의 측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명도 있는 대기업이나 수도권 소재 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이나 지방기업은 임금이나 작업환경, 직업 안정성 등 근무환경의 측면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현실과는 반대다.

원칙의 부재는 한국의 노동시장뿐 아니라 교육 등 사회전반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젊은이들이 좋은 근로조건을 제공하는 몇몇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 일하기 위해 수년간 취업준비로 골몰한다. 이런 구직활동의 성공률을 높히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높은 비율로 고등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동시에 수많은 취업준비생이 있으나, 중소기업과 지방소재 기업들은 만성적인 구인난에 시달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간접적으로 노동과 기업부문에서 정확한 정보가 유통되고 정상적인 시장원리가 작용하도록 적극적으로 감독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한국의 왜곡된 노동시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여도에 따른 임금, 보상적 임금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이 퇴출될 수 있도록 시장의 매커니즘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자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노동 조건에 대해 사전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근로자를 정당히 대우하는 기업이 있다면 중소기업이든, 지방에 위치하든 많은 사람들이 일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살인적인 근무시간, 높은 산업재해 위험, 조기 명예퇴직이 성행한다면 일하고자 하는 개인들이 줄어들 것이다. 지금도 워크넷 등 구인사이트에는 근무조건이 제시되어 있으나, 초과근무 시간의 정도 등 근무의 질을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수준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고용노동부·국세청·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이 공동으로 기업의 총 근무시간, 보수총액, 실제 사용 휴일, 근속기간별 퇴직률 등 중요한 근로 정보를 수집해 공개해야 한다. 참고로 학교의 경우 교육부는 ‘학교알리미’ 시스템을 이용해 학생 성적, 진학률 등을 제공하고 있다. 유사한 시스템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정당하게 근로자를 대우하지 않는 기업은 인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근로조건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기업이 성장하게 공정성도 강화해야

둘째, 이미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적합한 자리로 이동할수 있도록 기업의 인사시스템을 분권화·투명화 해야한다. 한국의 인사결정은 많은 경우 인력을 활용하는 담당부서가 아니라, 기업의 인사부서에서 중앙집권적으로 담당한다. 따라서 특정 부서에서 긴요한 역할을 담당할 경력자를 데려오려고 하더라도 채용여부나 정확한 보수조건 등에 대해 법률상 구속력이 있는 약속을 할 수가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기업이 미리 보수 등 근무조건을 명시한 채용의향서를 제공하도록 인사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취득을 앞두고 직장을 구했을 때, 근무시작 5개월 전에 해당 연구소로부터 총 보수, 연구비, 계약기간, 수업시수 등 중요한 근무조건이 담긴 채용의향서를 받았다. 한국은 구직자가 정확한 근무조건을 모르고 이직에 따른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세째, 산업 및 공정거래 정책이 정상화돼야 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원칙을 지키는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고,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간의 불공정거래에 확실한 경제적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 기술력 있는 기업이 새로 만들어져도, 납품을 받는 업체가 기득권을 이용해 불공정거래를 강요한다면 채산성 악화로 성장이나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와 더불어 기업의 크기에 연동한 산업정책을은 개선해야 한다. 현재 산업정책은 대기업 대 중소기업이라는 구분에 따라 정책자금, 각종 노동규제 유예, 세제 등을 달리 적용한다. 이는 능력 있는 중소기업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 대기업으로 확장할 유인을 막을 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는 무능력한 좀비기업이 양산돼 새로운 기업이 들어올 자리를 막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수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행정고시를 통해 1999년부터 재정경제부에서 일하다 미국 스탠퍼드대에 유학해 박사과정을 밟았다. 메릴랜드대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2016년 한미경제학회가 수여하는 ‘젊은 경제학자’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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