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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합의 추인받은 이란 개혁파, 개방경제의 문 활짝 연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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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14면

[글로벌 뉴스토리아] 하산 로하니 대통령 재선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이란 대통령 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하산 로하니 대통령(오른쪽)이 테헤란에서 투표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이란 대통령 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하산 로하니 대통령(오른쪽)이 테헤란에서 투표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19일(현지시간) 치러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하산 로하니(68) 현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해 4년의 2기 임기를 맡게 됐다. 개표 결과 온건개발당의 로하니 대통령이 전체 유권자의 57.1%를 얻어, 38.5% 득표에 그친 전투적 성직자회 소속의 에브라힘 라이시(57) 전 검찰총장을 700만 표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고 CNN방송이 이란 국영 미디어를 인용해 보도했다.

득표율 57%로 무난히 승리 #핵 합의 반대파에 제동 걸어 #국민 뜻 업고 경제개발 나서 #‘페르시아 영광 재현’에 성큼

로하니는 이슬람 성직자로 1979년 이슬람 혁명에 가담했다. 테헤란대 법대를 마치고 영국 글래스고 칼레도니아대에서 석·박사를 받은 뒤 주로 외교·국방 분야에서 일했다. 최고국방위 위원과 대통령 안보자문위원, 최고국가안보위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핵 협상 수석대표를 지내다 2013년 대통령에 당선했다. 대외 교류와 협상을 중시하며 경제적으로는 대외개방 가속화를 추구해 왔다. 핵 합의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협력해 경제발전을 가속하자고 주장한 개혁파 로하니가 핵 합의를 비난하며 자립 노선을 주장한 보수파 라이시를 상당한 표 차이로 누름으로써 앞으로 내부 개혁과 대외 개방 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핵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개발로 중동에서 영향력을 높여 과거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건한다는 오랜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종교가 세속정치를 지배하는 이란 ‘신정체제’의 특성상 사회적 변화를 예견하기엔 아직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의아스러운 최고지도자의 투표 독려

눈여겨볼 점은 선거 직전인 지난 17일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가 “이슬람 체제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해외의 적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는 이유를 들며 국민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는 사실이다. BBC에 따르면 하메네이는 “미국인, 유럽인과 시오니스트들이 참정 수준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 선거를 주시하고 있다”며 “이란은 적들과 마주하고 있으며 이란 국민은 그들에게 투지와 (체제의) 안정성을 보여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하메네이는 국내 연설에서 시오니스트로 표현하는 이스라엘은 물론 미국 등 서방도 ‘적’으로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연설을 의례적인 투표 독려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핵 합의의 파트너인 미국과 유럽을 굳이 대선 시점에 적으로 표현하며 투표 독려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핵 합의에 불만을 품은 보수파들에게 투표를 독려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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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하메네이는 “우리의 안정을 해치는 어떤 기도도 즉각적인 대응에 마주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2009년 보수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재선되자 그 직후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진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투표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시위를 벌이는 등의 행동을 엄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수백만 명의 시위대가 “투표가 도둑 맞았다”라고 외치며 재투표를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하메네이는 선거 결과는 유효하다며 강경 진압을 명령했다. 그 과정에서 수십 명이 숨지고 수천 명이 구금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로하니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면서 조용히 마무리됐다. 하메네이의 의례적인 연설이 의례적이지 않게 들리는 이유다.

핵 합의 추인 성격의 대선

하메네이의 발언을 의아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 이란 대선의 특징이다. 외관은 재선을 노리는 현직 온건파 대통령인 하산 로하니와 이에 도전하는 강경 보수파 후보인 에브라힘 라이시 사이의 인물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대선의 알맹이는 2016년 1월 이란과 국제사회 간에 이뤄졌던 핵 합의에 대한 추인이냐 거부냐의 성격이 강했다. 이란과 국제사회가 체결한 이 합의로 이란은 핵개발을 중지하고 핵사찰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는 그 대가로 이란에 대한 원유·천연가스·금융·해운·조선·항만·자동차·철강 등에 대한 경제제재와 약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이란의 해외금융기관 자산 동결을 해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선 쟁점은 로하니 대통령이 주도한 이 핵 합의와 경제 운용 실적의 두 가지로 집중됐다. 로하니는 서방과의 핵 합의를 바탕으로 이란이 개방경제로 나아가야 경제발전과 실업난 해소가 가능하다고 호소했다. 이러한 온건 개방노선은 로하니 정책의 핵심이다.

사실상 양자대결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로하니의 경쟁자인 라이시는 서방 핵 합의에도 은행과 금융서비스에 대한 제재가 여전하다며 로하니를 맹비난했다. 서방의 금융 제재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환율이 여전히 불리해 이란인들의 해외 관광이 힘들어졌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란인에게 해외 여행은 아주 중요한 행사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들어선 신정체제 때문에 음주나 공개연애가 금지되고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무조건 히잡을 쓰고 다녀야 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종교경찰의 단속을 받아야 하는 등 엄격한 사회생활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2년에 한 번씩 이웃 터키나 두바이 등으로 출국해 스트레스를 푸는 국민이 적지 않은데, 국제 제재로 이란 리알화 가치가 뚝 떨어지면서 국민 불만이 고조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라이시는 결국 핵 합의와 국제사회 복귀, 개방경제 전환이라는 로하니의 대세에 밀린 것으로 드러났다. 라이시가 당선할 경우 가뜩이나 핵 합의에 불만이 많은 미국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해 핵 합의가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라이시는 아울러 12.7%에 이르는 실업률을 지적하며 일자리 마련을 외쳤지만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난만 받았다.

한국과의 경제관계 강화 계기로

로하니의 재선은 이란 국민이 개방경제를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재선을 계기로 이란은 대외투자를 유치해 인프라 설비를 강화하고 경제성장을 가속화하는 길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8200만 명의 이란은 중동의 대국이다. 터키와 더불어 중동에서 아랍어를 쓰지 않고 모국어를 유지하는 두 나라의 하나다. 역사적·문화적으로도 독자성을 상당히 유지한다는 의미다.

국내총생산(GDP)은 명목금액 기준으로 올해 4383억 달러에 이르러 세계 27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성장률은 2015년 저유가로 -0.4%의 뒷걸음질을 친 뒤 지난해 4.5%의 성장을 이뤘으며 올해는 5.2%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1인당 GDP는 5383달러로 세계 96위다.

이란은 원유매장량 세계 4위, 가스매장량 1위, 하루 생산량 세계 7위의 에너지 부국이다. 이란 국영석유회사(NIOC)는 핵 합의가 발표된 지난해 1월 앞으로 5년 안에 석유·가스 업스트림(광구 탐사·개발·생산)에 1000억 달러(약 1110조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해 앞으로 전 세계에서 투자붐이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천연자원만 팔아 산업기반이 약한 페르시아만 연안의 다른 석유 부국들과는 달리 이란은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는 등 상대적 산업 강국이다. 제조업 비중이 2016년 기준 전체 GDP의 39.9%에 이른다. 중동·중앙아시아·인도·유럽의 중간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도 크다.

주요 수입국 중 한국의 비중이 4.7%로 아랍에미리트(UAE·39.6%)와 중국(22.4%)에 이어 3위로 국경을 맞댄 터키(4.6%)보다 높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UAE가 독자 제조업 없는 중계무역국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은 이란의 2대 교역국인 셈이다. 대선이 끝난 이란에 정부와 민간이 함께 손잡고 대규모 투자·교류 사절단을 보내는 등 더욱 적극적인 프러포즈에 나설 필요가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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