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윤석열 중앙지검장은 대표적 특수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57·사법연수원 23기)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다.
지금은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앙수사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지냈고, 2013년 박근혜 정권 초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기도 했다.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점심식사를 위해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강정현 기자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점심식사를 위해 서울 서초동 특검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강정현 기자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지만 검사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서울 출신으로 충암고를 졸업한 윤 검사는 서울대 법대 79학번이다. 김수남(16기)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5명의 검사장이 같은 과 동기다. 선두주자였던 남기춘(15기) 전 서울서부지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윤 검사의 ‘절친’이다. 석동현(15기) 전 서울동부지검장, 김영준(18기)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도 대학 동기다.
하지만 검찰은 ‘늦깎이’이로 입문했다. 윤 지검장은 대학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붙었지만 2차 시험 운이 좋지 않았다. 9수 끝에 1991년에 합격했다. 동기들보다 7~8년 후배로 검사가 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 초기인 2002년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해 법무법인 태평양에 1년여 몸담기도 했지만, 윤 지검장의 ‘멘토’인 이명재 전 검찰총장 등 검찰 선배들의 권유로 검찰에 복귀했다.

수사검사로서의 이력은 화려하다.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2007년 변양균·신정아 사건을 수사했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에서 검찰의 기소 법리를 구성하면서 지금은 사라진 대검 중수부의 선봉장으로 승승장구했다. 2009년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을 시작으로 중수부 2과장, 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고속 승진했다. 중수부에선 C&그룹 수사,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주도했다. 당시 중수부 수사기획관이었던 우병우(50·19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손발을 맞췄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마치고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있을 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장이 그를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하면서다. 윤 지검장은 자신을 임명한 채 전 총장이 ‘혼외자’ 파문으로 물러난 뒤 직속상관이던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정면충돌했다. 조 지검장의 재가 없이 국정원 직원들의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 받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법원에 접수하면서다. 수사팀에서 전격 배제된 그는 며칠 뒤 국정감사장에서 “수사 초기부터 법무·검찰 수뇌부의 외압이 있었고 체포영장 청구 등은 적법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관의 위법한 지시를 따를 수 없었다”고도 했다.

검찰을 한 번 떠났다가 돌아온 만큼 검찰 조직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그에게 “조직을 사랑하느냐”고 추궁하자 “대단히 사랑한다. 하지만 사람에 충성하지는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좌천성 인사로 한직인 고검 검사를 떠돌던 윤 지검장은 지난해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에 전격 합류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그를 일컬어 “수사를 잘하는 합리적인 검사”라고 평했다. 윤 지검장은 특검팀의 수사팀장을 맡아 삼성그룹의 뇌물공여와 관련된 법리 및 입증을 주도했다.

윤 지검장과 함게 일한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 지검장은 결론을 내놓고 밀어붙이는 특수통의 단점을 갖고 있지 않다. 세심하게 증거를 수집해 피의자를 꼼짝 못하게 만들지만, 예의 바르고 피의자에게 인간적으로 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신을 굽히지 않는 스타일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리기도 한다. 2012년 특수부 검사들이 나서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했던 ‘검란(檢亂)’ 사태를 주도하기도 했다. 주위의 의견을 경청하는 편이지만 한 번 판단을 내리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다는 평가가 많다.

윤 지검장이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방향에 ‘예스맨’이 되진 않을 거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이후 보수진영에선 그를 대표적인 ‘좌파·진보’ 검사로 보기도 하지만, 그를 아는 이들은 ’우리나라 보수 평균보다 약간 더 오른쪽에 가 있는 성향”이라고 평가한다. 대선자금 수사, 변양균·신정아 수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고급 아파트 매입 의혹 수사 등 현 정권 인사들과 악연이 더 많다는 시각도 있다.

윤석열(왼쪽 끝) 서울중앙지검장은 박영수 특검에서 수사팀장으로 활약했다. 윤 지검장 옆은 왼쪽부터 양재식·박충근·이용복 특검보.[중앙포토]

윤석열(왼쪽 끝) 서울중앙지검장은 박영수 특검에서 수사팀장으로 활약했다. 윤 지검장 옆은 왼쪽부터 양재식·박충근·이용복 특검보.[중앙포토]

수사구조 개편에 적극적이지만 현 정부의 노선과는 다소 다르다. 경찰에 영장청구권을 주는 등 검찰 권한을 경찰에 바로 옮겨선 안 된다는 입장을 자주 피력했다. 부장검사 시절엔 “경찰은 스트리트 크라임(단순 범죄) 수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윤 지검장은 “검찰은 기소와 공소유지 중심으로 개편하고 국가수사처, 보안수사국 등의 형태로 사법경찰 기능을 전문 영역별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사법경찰 기능은 각 수사영역 따른 기관들로 흡수하고 치안·교통·경비 등 기능으로 전문화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2005년 서울지검이 서울중앙지검으로, 지검장은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후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지검장이 된 건 윤 지검장이 처음이다. 고검장급이던 서울중앙지검장에 초임 검사장인 그를 임명하면서 당분간 윤 검사장의 행보에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 개혁을 주도하는 자리가 아닌데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 방향과 윤 지검장 평소의 소신이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어서 ‘찰떡궁합’을 이룰지는 미지수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