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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블루오션 아세안에 대통령특사 보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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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영선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김영선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주변 4강과 유럽연합(EU)에 특사를 파견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와 아주 가까운 핵심 파트너인 아세안(ASEAN)이 빠져 있어 아쉽다. 최근 아세안이 포스트 차이나로서 주목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세안은 ‘포스트 차이나’ 대안 #문화 비슷하고 인적교류도 활발 #시장뿐 아니라 안보 가치도 커 #새 정부, 아세안 외교 강화해야

아세안은 경제적으로 볼 때 우리의 아주 긴밀한 파트너다. 제2의 교역 상대로 매년 300억 달러가 넘는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대아세안 투자도 지난해에 대EU 25억 달러, 대중국 33억 달러를 훨씬 뛰어넘어 50억 달러를 기록했다. 건설 수주도 중동에 이어 2위를 계속 지키고 있다. 아세안의 중요성은 향후 성장 가능성을 고려할 때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세안 10개국은 2015년 말 ‘하나의 비전,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공동체’란 기치를 내걸고 야심 차게 아세안 공동체를 출범시켰다. 아세안 인구는 EU 5억보다 많은 6.4억 명으로 세계 3위이다.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2.6조 달러로 세계 6위지만, 매년 5%대의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하고 있어 2050년께에는 세계 4위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도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데 비해 아세안은 젊은 인구가 많고 중산층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생산 거점뿐 아니라 소비시장으로서의 잠재력도 크다.

한국과 아세안은 상호 보완적인 경제 구조를 갖고 있어 윈-윈 할 수 있는 좋은 협력 파트너다. 아세안은 우리의 발전 전략과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 하며, 우리에게 아세안은 자원의 안정적인 공급원이자 해외 진출의 좋은 파트너다. 또한 한국과 아세안은 아시아적 문화와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 문화적 갈등과 긴장의 여지가 적다. 한국 사람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아세안 지역이다. 지난해 600만 명이나 되는 한국인이 아세안을 방문해 양측 인적 교류는 800만 명을 훨씬 넘어섰다. 긴밀한 인적 교류는 상호 이해와 협력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특히 한국에는 아세안의 근로자와 유학생, 그리고 아세안 출신 ‘며느리’ 등 약 50만 명의 아세안 출신이 거주하고 있고, 아세안 지역에는 거의 같은 수의 한국인이 체류하고 있다.

이 지역의 중요성은 경제·사회·문화 협력에 그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확보를 위해 아세안의 협조는 긴요하다. 아세안은 10개국 모두가 북한과 외교 관계를 갖고 있고, 북한에 상주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5개국이나 된다. 몇몇 국가는 탈북민들의 주요 통로이기도 하다. 지난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김정남이 독살되는 등 북한 관련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 아세안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매년 아세안에서 개최되는 국제회의에서 아세안의 협력과 지지는 매우 긴요하다. 지난달 말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엄중한 우려와 경고를 표함으로써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아세안이 중요한 파트너임을 보여줬다.

이렇게 가깝고 중요한 아세안에 대해 우리는 어떤 비전과 정책 구상을 갖고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우리의 대아세안 전략은 실종 상태다. 아직까지 전략이나 청사진이 발표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미·중·일 등 강국들의 경쟁 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 지역의 국제 관계는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어 우리의 국익 유지와 국제적 위상 확보를 위한 전략 수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반면 일본은 이미 1977년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한 이래 정치·외교, 경제, 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아세안과 폭넓은 파트너십을 강화해 왔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 2013년 아세안 10개국을 모두 순방하고, 최근 요코하마에서 개최된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에서는 40조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라는 통 큰 선물을 제시하며 아세안에 구애작전을 노골화했다. 아세안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과 영향력 확대는 압도적이다. 시진핑 주석은 2013년 10월 인도네시아 방문 시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중국의 야심 찬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 해상 실크로드의 협력 대상으로 이 지역을 설정한 것이다.

우리가 미·중·일 등 강국들과 직접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아세안과 역사 문제나 영토 분쟁 등 갈등 요인이 없고 중견국으로서 그 어떤 숨겨진 의도도 없다. 한국과 아세안은 서로가 원하는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관계다. 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 강점이자 대아세안 전략의 비전과 방향이다. 올해는 아세안 50주년, 아세안+3(한·중·일) 20주년, 한·아세안 FTA 체결 10주년, 그리고 한·아세안 문화 교류의 해다. 아세안과의 관계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인 올해야말로 우리의 대아세안 전략과 비전을 천명할 적기다. 이제 신정부가 막 출범한 지금 우리의 블루오션인 아세안에 대통령 특사를 안 보낼 이유가 없다. 우리의 대아세안 외교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킬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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