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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버스와 어린이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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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심재우
심재우 기자 중앙일보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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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특파원으로 부임한 이후 허드슨 강변을 따라 놓인 9A 도로를 출퇴근길로 이용한다. 9A는 왕복 8차로 정도 되는 큰 도로다. 서울로 치면 88도로인 셈이다. 이 길에서 스쿨버스와 관련해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다. 퇴역한 항공모함 인트레피드함을 이용해 조성한 박물관 길가에 노란색 스쿨버스가 정차하고, 현장학습 하러 온 학생들을 내려줄 때면 왕복 8차로를 다니던 차량이 일제히 정지한다. ‘정지’를 알리는 ‘스톱(STOP)’ 표지판이 날개처럼 펴지면서다. 스쿨버스 정지신호를 무시할 경우 날아오는 벌금이 상당한 것도 이유겠지만 무엇보다 사회가 스쿨버스에 타고 있는 아이들 안전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있음을 직감케 한다.

지난 9일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서 발생한 한국 유치원생 통학버스 화재 참사를 보면서 이 같은 생각이 더욱 확연해졌다. 통학버스 운행 자체를 안이하게 생각한 안전불감증이 비극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세월호 비극을 겪은 한국 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점에서 중국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내친김에 스쿨버스와 관련된 미국 규정을 찾아봤다. 연방 자동차 안전규정을 책임지는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만든 규정의 첫 구절부터 눈길을 확 끈다. ‘도로에서 가장 안전한 차량(The Safest vehicle on the road)’. 이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완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 몇 가지만 소개한다.

우선 눈에 띄는 디자인이다. 멀리서도 스쿨버스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노란색 컬러를 입히고 앞뒤로 빨간색 등을 장착했다. 그리고 스쿨버스임을 알리는 문구가 크게 있어야 한다. 양쪽 방향의 진행 차량을 모두 멈추게 할 수 있는 스톱 표지판도 필수다.

내부적으론 안전을 지향하는 디자인이 곳곳에 채택됐다. 비상구의 위치가 특히 그렇다. 양옆은 물론 뒤로도 나갈 수 있는 비상구가 있다. 심지어 천장에도 달려 있어 차가 옆으로 기울어졌을 경우 쉽게 탈출할 수 있다. 산둥성 버스사고처럼 앞쪽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아이들이 금방 뛰쳐나올 수 있는 구조다.

차량이 뒤집히더라도 강화 처리 쇠로 만들어진 차틀이 아이들을 보호해 준다. 차량 옆 부위에는 철판을 덧대 측면 충돌 시 안전도를 높였다. 연료통 또한 쇠로 만든 케이지 안에 들어가도록 했다. 어떤 충돌에도 기름이 새어 나와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을 낮추기 위함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안전규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매년 스쿨버스를 이용하는 학생 가운데 4∼6명이 숨진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지만 NHTSA는 아이들의 더욱 확실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온갖 데이터를 쌓고 있다.

스쿨버스 때문에 꿈쩍 못하는 뉴욕 택시운전사에게 미국의 어린이날이 언제인지 물어봤다. 곧바로 “매일(Everyday)”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소파 방정환 선생에게 미안하지만 내년부터 어린이날 폐지를 건의해 본다. 1년 중에 하루 챙겨 준 새싹이 나라의 기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어른들의 욕심이다.

심재우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