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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국장 해임 사태, 트럼프 '제 2의 닉슨' 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워싱턴 정가가 제임스 코미 전 FBI(연방수사국) 국장의 후임 인선에 주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찾으려 하겠지만, 야당과 반 트럼프 세력은 신임 FBI 국장이 러시아 내통 스캔들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주시하고 있다.
 새 FBI국장이 수사에 미온적일 경우 '특별검사' 도입이라는 후폭풍이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관련 절차가 빠르게 결정될 것"이라면서 "모두가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그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르면 트럼프가 첫 해외 순방을 나서는 금요일 전에 인선이 끝날 가능성도 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난 9일(현지시간) 전격 해임했다.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난 9일(현지시간) 전격 해임했다. [로이터=뉴스1]

CNN은 제프 세션스 법무부 장관 주재로 후보자 개별 면접에 착수해 앤드루 맥카베 FBI 국장 대행을 비롯해 앨리스 피셔 전 법무부 차관보, 존 코닌 상원의원 등 12일에만 적어도 8명의 후보를 인터뷰했다고 보도했다.

제 입으로 백악관 도청 의혹 제기한 트럼프 #후임 인선에도 박차, 토요일에만 8명 면접

첫 면접자는 조지 W.부시 행정부에서 법무부 차관보를 지낸 앨리스 피셔였다. 그가 발탁된다면 최초의 여성 FBI 국장이다. 하지만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화이트워터 게이트' 조사에 참여한 전력이 있어 의회 인준 과정에서 민주당의 반발이 예상된다. 화이트워터 게이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 부인 힐러리의 친구인 제임스 맥두걸 부부와 함께 설립한 '화이트워터 부동산개발회사'의 토지 개발을 둘러싼 사기 의혹 사건이다. 클린턴 부부는 2000년 9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한편 코미 국장 해임 사태는 ‘녹음 테이프’ 공방으로 번졌다. 코미 국장이 "유임시켜달라는 민원을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관련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코미 국장이 내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확인해줬다. 그는 나에게 FBI 국장직을 유지시켜달라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코미의 요청으로 백악관에서 저녁을 먹고, 두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며 이 같은 민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앞서 뉴욕타임스(NYT)가 이 식사 자리에서 대통령이 코미에게 충성 서약을 요구했지만 코미가 항상 정직하겠다는 약속만 할 수 있다며 이를 거절했고, 그것이 해임 사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보도한 데 대한 반론 격이었다.

코미 국장의 측근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자신의 트위터에 “코미는 우리의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가 없길 바라야 할 것”이라며 협박했다. 이에 코미 측은 “어떤 테이프건 걱정하지 않는다”고 맞받아쳤다.

‘녹음 테이프’ 공방은 새로운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녹음 테이프가 있다면 그 자체가 문제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관행은 지난 40년간 없었다는 게 통념이다.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불명예 퇴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재임중 방문자와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한 것이 들통난 이후 이런 일은 금기시돼왔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폭스 뉴스 인터뷰에서 녹음 여부에 대해 “그것은 내가 말할 수 없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내가 코미에게 원하는 건 단지 정직하라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한편,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는 두 사람의 대화 녹음 테이프 제보에 10만 달러(약 1억1300만원)의 상금을 걸었다.

 코미는 해임 다음 날 FBI 임직원들에게 “이미 끝났고, 나는 괜찮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미국 시민을 보호하고 헌법을 받든다는 우리의 가치와 사명을 계속해서 지켜가길 바란다”는 고별 편지를 남기고 물러났다.

미국 내 여론은 코미의 우세다. NBC뉴스와 서베이 몽키의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과반수(54%)가 코미의 해임이 부적절했다고 응답했다. 적절했다는 응답은 38%였다. 응답자의 55%는 코미의 해임이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커넥션에 대한 수사 공정성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 답했고, 36%는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코미가 해임되자 이웃의 9살짜리 소녀가 초컬릿칩 쿠키를 구워 선물했다. “우리는 당신의 이웃이라는 게 자랑스럽고, 미국을 위해 해온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라는 편지와 함께였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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