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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에게 ‘김정숙씨’가 웬 말이냐고요?…‘영부인’ 호칭은 안 쓴 지 20년

중앙일보

입력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김현동 기자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에서 주민들에게 인사하는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 김현동 기자

 ‘김정숙씨가 아니라 영부인 김정숙 여사입니다!'(아이디 jm05****)

14일 한 언론 매체가 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라는 표현을 쓰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는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영부인, 즉 대통령 부인에게 ‘OOO씨’라는 호칭을 쓰며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디 'veri****'는 ‘정권에 따라 영부인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 고소감이다’고 썼다. ‘김정숙 여사’라고 호칭한 기사에도 ‘영부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아이디 back****)’라는 댓글이 달렸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 대신 ‘대통령 부인 김정숙씨’를 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까?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영부인(令夫人)’은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대통령의 ‘령(領)’자가 영부인의 ‘영(令)’에 쓰인다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둘의 한자는 다르다. 즉 ‘대통령 부인=영부인’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영부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회사 상사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도 영부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영부인’을 비롯해 ‘영식(令息,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부르는 말)’, ‘영애(令愛, 윗사람의 딸을 높여 부르는 말)’ 등의 호칭을 대통령의 가족에게만 사용하는 관행이 있었다. 신문 기사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를 ‘영부인 이순자 여사’로 지칭했다. 그러는 동안 영부인이라는 단어는 대통령의 부인만을 가리키는 말처럼 굳어졌다.

중앙일보 1980년 9월 2일자, 7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에 대해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 여사'로 표기돼 있다. [사진 중앙DB]

중앙일보 1980년 9월 2일자, 7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에 대해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 여사'로 표기돼 있다. [사진 중앙DB]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반대로 ‘영부인’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청와대 안에서부터 퍼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자신이 영부인 대신 ‘대통령 부인’으로 불리길 원했고, 이 때부터 청와대 내 공식문서 등에서 ‘영부인’이라는 호칭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문도 ‘영부인’을 ‘대통령 부인’으로 바꿨다.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아예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대통령 부인에게 ‘영부인’ 대신 ‘김윤옥 여사’로 호칭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중앙일보 1989년 5월 12일자, 2면 동정란.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로 표기했다. [사진 중앙DB]

중앙일보 1989년 5월 12일자, 2면 동정란.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로 표기했다. [사진 중앙DB]

이처럼 ‘영부인’이라는 호칭이 청와대 안에서나 언론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쓰이지 않기 시작한 것은 오래된 일이다. 그렇다면 ‘김정숙 여사’와 ‘김정숙씨’는 어떨까.

‘여사’의 사전적 정의는 ‘결혼한 여자, 또는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여자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씨’는 상대를 부를 때 일반적으로 쓰이는 호칭이다. 따라서 ‘김정숙 여사’가 ‘김정숙씨’보다 높임말인 것은 맞다. 하지만 ‘씨’라는 호칭이 상대를 낮춰 부르는 것은 아니다. ‘여사’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호칭이라는 점에서 반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 부인에 대해 ‘OOO 여사’라고 쓸 것인지 ‘OOO씨’라고 쓸 것인지는 각 언론사의 내부적 지침에 따른다. 중앙일보는 전두환 정권까지 ‘대통령 영부인 OOO 여사’로 쓰다가 노태우 정권부터 ‘대통령 부인 OOO 여사’로 호칭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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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사용되지 않는 호칭은 '영부인' 외에 또 있다. '대통령 각하'다. '고급 관료를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 뜻인 '각하'는 박정희 정권에서는 총무처 규정에 대통령을 부르는 호칭으로 아예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부터는 이 호칭을 대통령에게 붙이지 않고 있다.

윤재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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