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명작의 아우라, 대박을 부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1호 14면

롯데칠성음료가 지난달 새로 선보인 원두캔커피 칸타타의 ‘빈센트 반 고흐 스페셜 에디션’. 사진 롯데칠성음료

롯데칠성음료가 지난달 새로 선보인 원두캔커피 칸타타의 ‘빈센트 반 고흐 스페셜 에디션’. 사진 롯데칠성음료

바흐(Bach)가 아니고 고흐(Gogh)?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 아트 패키지

지난달 12일 롯데칠성음료는 국내 1위 원두캔커피 칸타타의 ‘빈센트 반 고흐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사용될 그림은 고흐의 ‘해바라기’(라떼), ‘밤의 카페 테라스’(아메리카노), 그리고 ‘고흐의 방’(카라멜 마키아또) 등 세 작품이다. 바흐의 작품 ‘커피 칸타타’에서 이름을 딴 제품의 패키지에 고흐를 입히는 이유는 대체 뭘까.

국내 식품업계에서 명화를 패키지에 도입해 성공을 거둔 사례는 정확히 1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 우유가 2007년 모카라떼 우유 패키지에 모딜리아니의 ‘노란 스웨터를 입은 잔느’를 차용한 것. 카푸치노 우유에는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이 들어갔다. 그리고 1년 후 매출이 750% 늘었다. 고흐, 루벤스, 르느와르, 다빈치, 밀레, 고야 등 5년 동안 커피 베이스 우유에 줄기차게 명화를 입힌 결과, 2012년 동원 덴마크 우유의 매출은 100억원을 돌파했다.

제약업계 아트 패키지의 원조도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종근당은 ‘통증(Pain)에 잘 듣는다’는 뜻의 두통약 펜잘을 출시한 후 배우 사미자를 모델로 써서 “무슨 잘? 펜잘!”이라는 억지 광고를 써오다가 2008년 ‘키스’로 유명한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브 클림트의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패키지에 사용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결과는 의외의 대박. 전년 대비 매출이 무려 161.5% 신장했다. 보기만 해도 두통이 더 심해질 것 같은 화려한 색상의 클림트 패키지가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학자들은 이러한 패키지 혁신을 ‘제품 차별화(product differentiation)’ 혹은 ‘이목 집중(attention grabbing)’의 효과로 설명한다.

명작의 후광효과에 올라타라

하지만 화가에서 학자로 전향한 헨리크 핵트베트(Henrik Hagtvedt)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명화의 존재가 제품의 고급감, 즉 럭셔리 지각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는 동료 교수와의 공동연구에서, 제품의 패키지에 예술작품 이미지를 입혔을 경우 비예술작품 이미지(예를 들면 유사한 이미지의 사진)를 입혔을 때보다 제품의 고급감과 구매의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 한 실험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의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이미지를 제품에 인쇄했을 경우와 동명 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이미지를 인쇄했을 경우를 비교했는데, 이미지의 고급감은 둘 다 높았으나 고급감이 제품에 전이되는 정도는 베르메르의 미술 작품이 스칼렛 요한슨 사진의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후에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이 핵트베트의 연구 결과, 즉 예술의 존재(presence)가 제품의 고급감을 높여 준다는 ‘명작의 후광 효과(halo effect)’를 거듭 입증했다. 그래서인지 종근당은 ‘펜잘큐’라는 브랜드 앞에 늘 ‘명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매일유업의 ‘앱솔루트 명작’이라는 분유는 아예 브랜드 명에 ‘명작’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앱솔루트 명작 분유통에는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마돈나’ 그림 맨 아래쪽에 있는 아기천사 이미지가 들어가 있는데, 통통한 아기천사의 이미지가 분유 카테고리와 너무 잘 맞아서 2미터가 넘는 라파엘로의 그림보다 분유통이 오히려 제자리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이용한 애경의 케라시스 선물세트 겉면과 내부. 사진 애경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이용한 애경의 케라시스 선물세트 겉면과 내부. 사진 애경

고흐 등 인상파 화가들 인기 높아

그렇다고 아트 패키지가 매번 대박이 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크라운제과에서 출시한 과자 에코아트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프리미엄 비스킷에 예술 작품을 접목시키겠다는 생각은 분명 옳았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선정이 문제였다. 앙띠오(A), 로코코(R), 투스카(T)라는 3개의 브랜드명도 요상한데 (셋을 나란히 놓으면 ART!), 각 패키지에 사용된 작품의 작가들이 피에트 몬드리안, 잭슨 폴록, 바실리 칸딘스키라니 나가도 너무 나갔다. 작가들도 어렵고, 추상미술과 비스킷의 만남도 어색하며, 색상도 과자 느낌과 거리가 멀다.

아무튼 식감을 깔끔하게 날려버린 세 현대미술 거장으로 인해 매출은 기대에 많이 못 미쳤다. 크라운해태에서 잭슨 폴록 초콜릿과 로이 리히텐슈타인 오예스에 다시 도전한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렇다면 어떤 예술작품 혹은 작가가 어떤 제품 카테고리에 적용될 때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예술 경영과 예술 심리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시원한 답변은 들리지 않는다. 명화(masterpiece)를 차용할 때에만 효과가 있는지, 작가의 인지도가 효과를 상승시키는지, 예술 사진의 효과는 어떨지에 대한 답도 좀 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 같다.

국내에서 검증된 성공 사례만 가지고 얘기하자면, 아직까지는 고흐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클림트 정도가 먹히는 것 같다(앞에 언급된 덴마크 우유도 2015년 말에 편의점 커피인 ‘덴마크 갤러리카페’를 출시하면서 클림트의 ‘성취’와 ‘아델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사용했다).

애경은 2013년 케라시스 추석명절 선물세트의 패키지 디자인을 고흐의 ‘아몬드 나무’로 바꾼 후 매출이 무려 세 배로 뛰었다. 다음 해에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차용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제품 패키지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좀 더 다양해 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지만, 대중의 미술 사랑이 20세기 초를 벗어나는 데에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오죽하면 칸타타 패키지에 바흐가 아닌 고흐를 쓰겠는가. ●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