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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드가 아니라 신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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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문재인-시진핑 통화로 한·중 관계 복원의 물꼬는 트인 셈이다. 남은 문제는 단 하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다. 역대 최상이라던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떨어뜨린 문제의 근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중국은 여전히 ‘일관되고 명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이미 배치가 진행된 사드를 되물리라고 끝까지 주장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다.

역대 최상이라던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떨어뜨린 사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자료 중앙포토]

역대 최상이라던 한·중 관계를 최악으로 떨어뜨린 사드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다. [자료 중앙포토]

중국의 한 관변 싱크탱크가 주최하는 토론회가 최근 베이징에서 열렸다. 군 출신의 ‘중량급 인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 신정부는 다음 사항 중 적어도 하나는 명시적으로 밝혀야 한다. 첫째, 레이더 시스템을 교체하는 것. 둘째, 중국으로 하여금 레이더 시스템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셋째, 미·일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MD) 체제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넷째,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천명하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사드가 중국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야말로 박근혜 정부가 누누이 밝힌 ‘일관되고 명확한’ 우리 입장 아닌가. 그럼에도 중국 인사는 왜 이 얘기를 꺼냈을까. 한 참석자의 설명은 이렇다. “천안문 망루에까지 와서 모든 걸 중국과 상의할 것처럼 하던 한국 정부가, 끝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더니 하루아침에 우리 뒤통수를 쳤다. 그때부터 한국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자칭궈(賈慶國)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 [사진 중앙포토]

자칭궈(賈慶國)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 [사진 중앙포토]

중국의 대표적 정치학자인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교수와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사드 철회 말고는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있을 것이다. 가령 저성능 레이더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은 사드 레이더의 탐측 범위가 600~800㎞여서 중국에 영향이 크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2000㎞라고 한다. 누구 말이 맞나. 한·미는 탐측 범위가 600㎞란 사실을 믿을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그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대화 제의를 했는데 중국 정부가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신뢰가 충분하지 않아서다. 더 고위층에서 다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검증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 레이더 탐측 범위가 600㎞라 해도 언제든지 2000㎞로 변경할 수 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생각한다. 문제는 중국을 안심시킬 해법을 찾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종합하면 중국 전문가들이 생각 중인 해법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진지한 협의를 통해 절충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간단치야 않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사드 운용 개념도 [자료 록히드마틴·레이시온]

사드 운용 개념도 [자료 록히드마틴·레이시온]

더 어려운 건 한번 금 간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무너진 탑의 벽돌 한 장 한 장을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역대 최상’이란 신기루를 좇아 서두르다 보면 곳곳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더디더라도 길게 보고 찬찬히 기반을 다져야 한다. 알고 보니 문제는 사드가 아니라 신뢰에 있었던 것이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