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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학 바탕 문·사·철 두루 능했던 ‘마지막 선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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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선 유림(儒林)을 잇는 마지막 선비, 국학(國學)의 큰 학자인 벽사(碧史) 이우성(사진)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12일 오전 9시30분 노환으로 타계했다. 92세. 벽사의 별세로 전통 한학(漢學)을 바탕으로 시를 짓고 문학·역사·철학을 통섭할 수 있는 학예일치의 세대는 막을 내렸다.

이우성 성균관대 명예교수 별세 #고려사·한국학 연구 탁월한 업적 #1980년 신군부 비판 해직되기도

1925년 경남 밀양생인 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한학자 집안에서 배운 성리학 과 한문에 대한 조예로 자유자재로 한시를 짓고 한문으로 논(論)과 설(說)을 펼 수 있었다. 20세에 들어서는 독학으로 두루 익힌 서양지식과 신학문을 겸비해 역사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고려 백성고’ ‘고려조 이(吏)에 대하여’ 등 고려사 연구는 한국학 분야에서 손꼽는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성균관대 문과대를 졸업한 뒤 동아대 교수를 거쳐 30여 년 동안 모교인 성균관대에 재직하며 대동문화연구원장·역사학회장·한국실학학회장 등을 지냈고 94년부터 8년간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 회장을 맡아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 고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이끌었다. 만년에는 후학들과 ‘실시학사(實是學舍)’를 창립해 선조의 문화유산을 널리 읽혀야겠다는 일념으로 번역과 출간에 매진했다. 고인은 강단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에도 과감해 61년 학원민주화운동에 앞장섰고, 80년 신군부 세력 집권을 비판하는 ‘361교수 성명’을 주도해 해직되기도 했다. 고인을 사사한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국 한문학과 역사학에 종사하는 학자라면 직간접으로 선생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학계에서도 선생님의 학문은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로 아들 희발(순천향대 명예교수)·희준(재미)·희국(전 LG전자 사장)·희설(아스트로제네시스 사장)씨와 딸 희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이며 14일 오후 5시 병원 강당에서 실시학사가 주관하는 영결식이 열린다. 발인은 15일 오전 5시30분, 장지는 경남 밀양시 단장면 선영이다. 02-798-1421.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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