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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책, 별별 저자] “진정한 사랑은 지구력 테스트” 몰락한 뇌신경과학자의 사랑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사랑을 지키는 법
조나 레러 지음
박내선 옮김, 21세기북스
288쪽, 1만5000원

스테디셀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2007)를 쓴 조나 레러의 신작이다. 뇌신경과학자인 그가 사랑 얘기를 펼쳐놨다. 책의 원제는 ‘사랑에 관한 책(A Book about Love)’이다. 사랑과 관련된 각종 사례와 실험 결과를 전하면서 사랑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정리했다. 같은 컨셉트의 책이 이미 수백, 수천 권은 있지 않겠나 싶을 만큼 평이한 기획이다. 하지만 저자가 왜 이 책을 쓰게 됐는지, 그 배경을 알고나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조나 레러가 스물여섯살에 펴낸 『프루스트는 …』는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비롯해 조지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폴 세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 예술가 여덟 명의 작품이 왜 감동적인지를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한 책이다. 과학의 눈으로 예술을 바라본 독창적인 시도였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신학과 문학을 공부한 조나 레러는 이 한 권의 책으로 뇌과학 분야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강연과 기고 요청이 이어졌고, 그가 구입한 집까지 화제가 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찾아왔다. 2012년 6월 새 책 『이매진』을 펴낸 직후 ‘자기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서였다. 『이매진』의 몇몇 구절이 그가 이전에 썼던 글을 ‘재사용’한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면서 비난이 쏟아졌다. 거기에다 『이매진』에 수록된 밥 딜런의 발언이 왜곡·조작됐다는 사실까지 드러났고, 2012년 8월 출판사는 『이매진』 인쇄를 중단하고 서점에서 책을 거둬들였다. 그 뒤 조나 레러는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그리고 4년 만인 지난해 7월 미국에서 『사랑을 지키는 법』을 출간했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해 “나를 지탱하는 이 느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책”이라고 밝혔다. 나락으로 떨어진 그를 지탱한 ‘이 느낌’은 ‘사랑’이었다. 2012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집으로 돌아간 그에겐 16개월 된 딸이 있었다. 아빠 노릇에 몰두하며 그는 “아이가 나를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랑의 은밀한 작동 원리”가 알고 싶어졌다. 그는 책을 통해 “어미 쥐의 사랑을 듬뿍 받은 쥐들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 수용체가 더 적다”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는 단 하나의 변수는 바로 사랑하는 능력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문자 그대로 지구력 테스트다. 런닝머신에서 더 오래 버틴 남성들이 훨씬 더 성공적인 애착관계를 가졌다” 등 사랑과 관련된 다양한 사실을 전한다. 또 지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귀찮도록 자세히 인용문의 출처를 밝혔다.

그가 스타 작가로 재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삶의 행복은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가치를 온몸으로 깨우쳤기 때문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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