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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장마’ 내린 제주 … “임금님 ‘궐채’ 맛보러 오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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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주도 서귀포시 한라산 자락에서 한 관광객이 채취한 고사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 서귀포시 한라산 자락에서 한 관광객이 채취한 고사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최충일 기자]

“고사리 꺾는 손맛을 보면 쉽게 헤어 나올 수 없어요.”

4~5월 비 맞으면 고사리 생장 좋아 #제주 목장·오름 등지서는 채취 한창 #산간 지대서 길 잃는 사고도 속출 #소방본부 “홀로 산행 자제” 등 당부

지난 7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해발 400m 산지. 가족과 함께 제주 관광을 온 최모(40·여·부산시)씨가 환한 얼굴로 고사리를 꺾고 있었다. 최씨는 “봄에 제주를 찾게되면 ‘툭 툭’ 소리를 내며 꺾이는 고사리 손맛이 일품”이라고 말했다.

제주 사람들은 4~5월에 잦아지는 비를 보면서 ‘고사리 장마’라고 부른다. 이 때 내리는 비를 맞으면 고사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막 자라기 시작한 이맘때 꺾은 고사리가 가장 연하고 맛있다. 5월 하순에 들면 고사리의 줄기가 단단해지면서 맛이 없어진다.

봄철 제주의 목장과 오름(작은화산체) 등지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맘때 한참 맛이 있는 고사리를 채취하기 위해 중장년부터 나이 지긋한 노인까지 들판이나 산간 지역을 찾는다.

주로 관광객인 초보자들은 시야가 확 트인 들판이나 숲을 다니며 고사리를 꺾는다. 하지만 고사리꺾기 ‘고수’들은 숨겨둔 자신만의 명당 자리를 찾아간다. 제주에서는 ‘고사리 명당은 딸이나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제주도에서 30년간 고사리를 꺾어온 강상월(64·여·서귀포시)씨는 고사리 꺾기의 달인이다. 강씨는 “상품성이 있는 고사리는 들판이 아닌 수풀 사이의 음지에 있다”며 “살이오른 고사리를 줄기의 20~30% 윗부분을 꺾은 뒤 말려 팔면 1㎏에 7만원정도를 받는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직접 맛을 보기 위해 고사리를 찾아 나선다. 이모(50·여·서울시)씨는 “TV 요리 프로그램 등에서 돼지고기와 함께 먹는 모습을 보고 고사리 채취에 나섰다”고 말했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단백질·칼슘·철분·무기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과거 ‘궐채(蕨菜)’라는 이름으로 임금님께 진상됐다.

고사리 채취객이 늘어나면서 봄철이면 길을 잃는 사람들도 많다. 고사리는 제주의 중산간 지대에 주로 분포하는데 땅 밑의 고사리만 보고 걷다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36건의 고사리 채취객들이 길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4년 44건, 2015년 47건, 2016년 45건 등이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도 봄철이면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한다. 마을 지리에 밝은 의용소방대원 등을 안전길라잡이로 지정해 운영하는 제도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고사리를 채취할 때는 홀로 산행을 피하고 자신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휴대전화와 호각 등을 휴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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