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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힙합·록과 만남 … 나윤선, 더 원숙한 재즈로 돌아오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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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달 30일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국제 재즈 데이를 맞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올스타 글로벌 콘서트’. 빨간 드레스를 입은 한 동양 여성이 무대에 올라 미국 재즈계의 전설 허비 핸콕과 듀엣으로 ‘이매진’의 인트로를 선보였다. 카메룬 출신의 베이시스트 리처드 보나와 프랑스어로 함께 노래하는 데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48)이란 바로 그런 존재다.

뉴욕서 녹음한 ‘쉬 무브스 온’ 공개 #마크 리봇, 브래드 존스 합류 #시어 사운드 스튜디오서 작업 #지미 헨드릭스 등 팝송도 불러

유럽이 사랑하는 그녀가 9집 ‘쉬 무브스 온(She Moves On)’으로 돌아왔다. 한데 이번엔 미국 뉴욕에서 만든 음반이다. 2008년 한국인 최초로 독일 재즈 프리미엄 레이블 ACT와 계약을 맺고 스웨덴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함께 만든 ‘부아야주’, ‘세임 걸’, ‘렌토’ 등 3장의 앨범으로 유럽 최고의 재즈 보컬로 우뚝 선 그녀가 신대륙으로 탐험을 떠난 것이다.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국제 재즈 데이 무대에서 허비 핸콕, 리처드 보나 등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과 공연하고 있는 나윤선(앞줄 오른쪽부터 셋째 ). [사진 허브뮤직]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국제 재즈 데이 무대에서 허비 핸콕, 리처드 보나 등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과 공연하고 있는 나윤선(앞줄 오른쪽부터 셋째 ). [사진 허브뮤직]

10일 서울 순화동에서 만난 나윤선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1년에 200회가 넘는 공연에 지친 그는 자신에게 안식년을 선물했고, 한국에 있던 덕분에 국악 축제인 여우락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 평창겨울음악제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협업 무대를 선보일 수 있었다. “맘껏 쉬진 못했지만 매일 국악을 듣고 클래식을 접하면서 음악을 새로 배우는 기분이었어요. 공연을 많이 하다 보면 남의 걸 잘 못 듣거든요. 원래 김민기·김현식·조동진 이런 포크 음악도 너무 좋아하는데.”

‘새로운 만남’을 경험한 그는 지난 여름 뉴욕으로 떠나 3개월 동안 힙합·록·재즈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러던 중 아방가르드 음악을 하는 뮤지션 존 존의 음악을 통해 피아니스트 제이미 사프트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그 겨울에 무작정 뉴욕을 다시 찾았다. “3주 동안 매일 같이 만나 음악을 듣고 얘기를 나누는데 의외로 밥 딜런·조니 미첼 같은 싱어송라이터를 좋아하더라고요. 보통 뮤지션들은 보컬을 중시하지 않는데. 영어가 모국어다 보니 이 부분을 한 호흡으로 가는 게 왜 중요한지 같은 대목도 설명해주고. 유럽의 재즈가 아카데믹한데 반해 미국 재즈는 물과 공기처럼 좀 더 일상적이라고 할까요.”

나윤선

나윤선

결국 필을 받은 둘은 내친 김에 녹음을 시작했다. “템포에 갇히기 싫어서” 10년간 드럼을 넣지 않았던 그에게 사프트는 “꼭 맞는 드러머가 있다”며 노라 존스의 드러머 댄 리서를 소개했다. 뉴욕 재즈신 최고의 세션인 마크 리봇(기타)과 브래드 존스(베이스)가 합류해 뉴욕에서 가장 오래 역사를 자랑하는 시어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지만 이들은 혼자 튀기 위해 내달리는 법이 없었다. 서로 들어주고 공간을 내어준 덕에 녹음은 이틀 만에 끝났다.

그러고 보면 나윤선은 본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국립합창단장을 지낸 나영수씨와 성악가 김미정씨 사이에서 태어나 음대가 아닌 불문학을 택할 때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통해 늦깍이 데뷔를 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날 때도 모두 “아니 왜?”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제가 무슨 아이돌도 아니고, 이미 미국 공연을 하고 있는데 꼭 진출하고 싶어 이런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새로운 사운드를 내고 싶었어요. 세계 민요에 관심을 갖는 것도 다들 비슷한 감성을 공유할 수 있으면서도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보게 해줘서인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자작곡 ‘트래블러(Traveller)’로 시작해 ‘이브닝 스타(Evening Star)’로 끝을 맺는다. 그는 “부끄럽지만 인트로와 아웃트로에 딱 맞다는 설득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대신 앨범 타이틀은 지난해 생을 마감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레아 공주를 연기한 캐리 피셔를 위해 폴 사이먼이 작곡한 ‘쉬 무브스 온’에서 따왔다. 지미 헨드릭스의 ‘드리프팅(Drifting)’이나 조니 미첼의 ‘더 돈트레더(The Dawntreader)’ 같은 팝스타의 숨겨진 명곡을 다시 불러 이전 음반보다 한층 대중적이다.

19일 전세계 음반 동시 발매를 시작으로 25일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내년 4월까지 이어지는 투어의 중반쯤인 올 겨울 한국 공연이 예정돼 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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