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굿모닝, 광화문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신용호정치 라이팅 에디터

신용호정치 라이팅 에디터

당선되자마자 취임식을 했다. 총리와 비서실장도 발표했다. 야당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됐다.

개방의 광장 정신으로 소통은 겸손하고 솔직하게 #적폐 청산은 서두르기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해야

그는 대선 과정에서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10일 취임사에서도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거듭 밝혔다. 광화문은 촛불집회의 성지다. 촛불 정신은 문재인을 낙점했다. 그런 문 대통령이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얼마나 각별했던지 당선 직후 달려간 곳도 광화문이었다. 거기서 안희정 지사에게 진한 볼 뽀뽀를 당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광화문 대통령이란 곧 소통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이다. 광장이 가진 개방성과 다양성을 흡수하겠다는 거다. 국민과 가까운 곳에서 낮고 솔직해지겠다는 취임식의 다짐도 그래서 나왔다. 그는 이미 지난달 24일 광화문 대통령 공약기획위원회를 출범시키며 “불통의 시대를 끝내고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다짐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고, 청와대를 시민 휴식공간으로 내놓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관저도 옮길 계획이다.

집무실 이전은 소통을 위해선 잘한 선택이다. 경복궁 근정전을 닮은 청와대 본관은 참모진이 근무하는 위민관과 300m나 떨어져 있다. 급하면 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다. 구중궁궐 같은 본관에 덩그러니 자리한 대통령 집무실은 시대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려면 예산도 짜야 하고 시간이 꽤 걸릴 터다. 그런 만큼 당장 참모들과 호흡할 수 있도록 위민관 내에 마련된 대통령 집무실을 사용했으면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곳이다. 위민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 만든 공간이다. 그곳이라면 백악관의 웨스트윙처럼 참모들과 수시로 얼굴을 맞댈 수 있을 것이다.

개방된 청와대는 경복궁-광화문-서촌-북촌과 연결해 역사문화거리로 조성된다. 문 대통령이 이 구상에 대해 가진 관심은 상당하다 한다. 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얼마 전 이 구상을 설명하며 “청와대 주변에 땅을 사놓으면 아마 땅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문화 거리를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란 의지가 담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화문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는 촛불 정신을 잊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60일 만에 치러진 조기 대선이 택한 사람이다. 유권자들이 그에게 표를 그냥 줬을 리 없다. 나라의 정의를 세워달라고 표를 줬다. 촛불 정신은 곧 적폐 청산과 맞닿아 있다. 사전에 적폐(積弊)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니까 적폐 청산은 오랫동안 쌓여온 부정적 현상들을 깨끗이 씻어 버리겠다는 의미다. 다만 적폐라는 단어에는 묘한 공포가 깔려 있다. 마치 상대 진영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뉘앙스가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이 대선에서 적폐란 단어를 많이 쓰자 주변에선 “적폐 란 단어를 줄여라”는 조언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일부 중도와 보수층에겐 거부감을 줬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자는 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하지만 그 실행 방법을 놓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증오나 복수의 느낌이 조금이라도 가미돼선 안 된다. 나라가 나라답게 되기 위해 바꿔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두르기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해야 한다.

끝으로 문 대통령은 청와대 경험이란 자산을 가졌다. 전임 대통령들에겐 드문 일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을 지내는 등 4년 가까이를 거기서 보냈다. 그 경험을 살려야 한다. 특히 참여정부의 실패와 오류를 잘 복기해보기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초 의욕적으로 임했던 ‘검사와의 대화’는 지금 생각해보면 왜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 만하지 않나. 그런 게 한둘이 아닐 거다.

탄핵 이후 탄생한 대통령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때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요즘 적폐 청산보다 오히려 국민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청산 못지않게 통합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얘기다. 하나 청산도 그렇지만 통합은 어디 쉬운가. 대통령의 일이란 게 쉬운 게 없다. 임기 초부터 너무 닦달하지 말고 기대치를 살짝 낮춰주는 것도 국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지혜의 한 방법일 터다.

신용호 정치 라이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