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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은 쇼" 사건 뒤 갈라섰던 김일-장영철 41년 만에 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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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프로레슬러 김일(왼쪽)씨와 장영철씨가 8일 김해 성모병원에서 41년 만에 만났다. 아래 사진은 선수 시절의 김일(왼쪽)·장영철씨. 김해=이호형 일간스포츠 기자

흑백 TV도 귀했던 1960년대. 프로레슬링이 벌어지는 날이면 만화 가게와 다방은 레슬링 중계를 보려는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다방들은 앞다퉈 '오늘 김일 레슬링'이란 입간판을 세워놓고 손님들을 끌었고, 만화 가게에서는 만화를 보던 꼬마 손님들을 다 내보낸 뒤 다시 TV 손님을 받았다. 마을에 한 대 정도 TV가 있었던 시골에서는 마을 이장이 확성기를 통해 "오늘은 김일이 레슬링 시합하는 날입니다. 중계를 볼 분들은 ××네 집으로 오세요"라는 방송을 할 정도였다.

◆ 프로레슬링은 6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흑백 TV 앞에 모인 사람들은 호랑이에 삿갓과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입은 '박치기왕' 김일과 턱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백 드롭의 명수' 장영철에게 열광했다.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보던 사람들은 김일 선수가 상대의 반칙에 피를 흘리면 동시에 "박치기""박치기"를 외쳤고, 김일이 박치기로 상대를 쓰러뜨리면 다방과 만화 가게는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당시 프로레슬링은 축구.복싱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인기 스포츠였고, 역도산의 제자인 '해외파 영웅' 김일과 '국내파 영웅' 장영철은 최고의 스포츠 스타였다.

그러나 1965년 장씨가 "레슬링은 쇼"라고 폭로(?)한 이후 두 사람은 서로 외면하고 살아왔다. 앙금의 골이 너무 컸기에 레슬링 팬들 사이에선 "김일과 장영철은 저 세상에서도 만나지 못할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41년이 지난 2006년 2월 8일 오후 9시30분, 경남 김해의 한 병원에 휠체어를 탄 노인이 나타났다. 5평 남짓한 병실에서 다른 환자 6명과 함께 잠을 청하고 있던 한 노인이 깜짝 놀라더니 "아니, 아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휠체어를 탄 노인은 김일(78)씨였고, 입원 중인 노인은 장영철(73)씨였다. 파킨슨병과 중풍, 약간의 치매 증상 등과 싸우고 있는 장씨였지만 김씨를 보자마자 어눌한 말로 "꿈만 같다. 이럴 수가"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도 박치기 후유증으로 거대결장증.고혈압.임파부종.심부전 등 합병증으로 15년째 서울의 한 병원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장씨가 91세 노모와 함께 김해의 한 병원에서 외롭게 투병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지금 만나지 못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며 휠체어에 의지해 김해까지 내려간 것이다.

감회에 젖은 두 사람은 마주 잡은 두 손을 놓지 못하며 "우리가 이렇게 병마와 싸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 1m85㎝의 키에 몸무게가 130㎏까지 나갔던 김씨는 지금 75㎏까지 빠졌다. 또 1m80㎝에 100㎏이었던 장씨는 65㎏다. 한때는 손바닥 만한 생선 99마리를 먹었다는 김씨의 한 끼 식사량은 이제 죽 또는 밥 반 공기, 대식가였던 장씨도 밥 한 공기를 비우지 못하고 있다. 김씨가 장씨의 손을 어루만지며 "나보다 손은 더 컸고, 주먹이 멋졌었는데"라고 말하자 장씨는 "뭘요"라며 멋쩍어 하면서 김씨의 손에 난 주사 바늘 자국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장씨는 "저보다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몇 살인지요"라고 물었다. 김씨가 "일흔여덟입니다"라고 하자, "선배인 줄은 알았는데 다섯 살이나 많은지는 몰랐습니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김씨가 "자식들이 몇 명이오"라고 물었고, 장씨가 잠깐 머뭇거리다 "아들만 세 명입니다"라고 답했다.

◆ "다시 만납시다" 약속='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두 사람 사이에 41년간 맺혔던 응어리는 봄눈 녹듯 사라졌다. 김씨는 "체증이 뻥 뚫리는 것 같다"고 기뻐했고, 장씨는"내가 철이 없었다"고 후회했다. 김씨는 "사실 '후배가 한 번도 찾지 않았는데 내가 왜 먼저 찾아야 하나'란 생각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30분간의 짧지만 긴 만남을 끝낸 두 사람은 "보란듯이 벌떡 일어나자"고 서로 격려했다.

둘 다 환자의 몸이 되어 동병상련의 아픔을 나눈 이들은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휠체어를 타고 병원을 나서는 김씨의 모습을 바라보던 장씨는 힘없이 손을 흔들며 "저도 꼭 면회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씨 역시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건강하셔야 됩니다"라는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이들의 다음 만남이 언제 이뤄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김해=정병철 일간스포츠 기자

◆ '레슬링은 쇼' 사건=1965년 11월 2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5개국 친선 프로레슬링 대회가 열렸다. 일본의 오쿠마 선수가 장영철에게 '새우 꺾기' 공격을 했다. 장영철은 고통을 못이겨 매트를 손바닥으로 쳤지만 오쿠마는 계속 공격을 했다. 링사이드에서 지켜보던 장씨의 후배들이 일제히 경기장에 난입, 오쿠마의 머리를 병과 의자로 내리치는 소동을 벌였다. 경기는 중단됐고, 소란을 피운 선수들은 즉심에 회부됐다. 당시 언론은 장씨가 경찰 조사과정에서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말했다고 보도했고, 프로레슬링이 쇠락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는 장씨가 경찰에 프로레슬링의 규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레슬링은 쇼'라는 파문으로 확대된 것이다.

◆ 중앙일보는 중앙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에 이어 일간스포츠와도 기사 교류를 시작합니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JMN) 관계사 간에 콘텐트를 공유하고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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