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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가봤습니다]] 보수 옷 벗나? 대구의 엇갈린 표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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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아픈데 뭐할라꼬 투표할라 그랍니꺼?" "뭐라카노. 해야지. 투표. 그래야 제대로 대통령 뽑지."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열린 9일 오전 7~8시 사이 대구시 달서구 도원중학교 인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모자로 보이는 한 70대 할머니와 40대 남성이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기자가 "대구에는 여전히 보수색이 좀 있지 않느냐"고 슬쩍 말하자 40대 남성이 "나이가 좀 있는 분들과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좀 다른것 같더라"고 했다.

단단했던 '보수 텃밭' 정치구도에 균열 조짐 #연령·거주지 따라 지지 후보 다른 모습

전통적으로 '보수정당 텃밭'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표심 기류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여전히 보수 정당에 대한 강한 지지를 나타내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바뀔 때도 됐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향의 후보를 뽑았다"는 말을 하는 시민들도 상당수 있었다. 목소리는 연령과 사는 동네에 따라 다소 엇갈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군은 보수에 대한 지지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았다.

화원읍 제5투표소가 마련된 화원중엔 투표가 시작되기도 전인 오전 5시30분쯤부터 20여 명의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에 일한다는 김모(50)씨는 "소신이 확실하고 강력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 그에 맞는 후보를 뽑았다"고 말했다. 한이화(58·여)씨는 "지지하는 후보를 빨리 찍고 싶어서 새벽같이 나왔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통합을 할 수 있는 중도보수 후보를 골랐다"고 전했다. 이상도(84·여)씨는 자신이 원하는 보수 후보를 뽑으려다가 기표를 잘못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50대 부부는 투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기자를 향해 보수 후보의 기호를 외치면서 손으로 숫자를 표시하기도 했다.

9일 오전 6시쯤 대구 달성군 화원중학교에 마련된 화원읍 제5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9일 오전 6시쯤 대구 달성군 화원중학교에 마련된 화원읍 제5투표소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과거 박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사무실로 쓰던 건물 지척에 마련된 화원읍 제1투표소(화원초)도 보수 또는 중도 후보를 지지했다는 시민이 다수 있었다. 김정웅(66)씨는 "박 전 대통령을 생각해 보수 후보를 뽑았다"면서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바른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태엽(56)씨는 "어느 당에 치우치지 않고 여야가 뜻을 모아 정치를 했으면 하는 뜻에서 중도 후보를 지지했다"고 했다.

오래된 주택가가 많은 대구 남구는 노년층 분포가 높은 곳이다. 투표소가 마련된 대명11동 주민센터에서 만난 관문시장 상인이라는 60대 여성은 "그래도 나라 잘 지키는 대통령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했고, 70대 한 노인은 "난 보수다. 보수"라고 말했다. 서민들이 밀집한 서구에선 표심이 완전 갈렸다. 오전 9시쯤 찾은 평리동 투표소인 대구 서부도서관. 백팩을 한 30대 직장인은 "이젠 좀 바뀌었으면 한다. 진보든 보수든 공약을 보고 선택해야지"라고 했다. 투표를 막 하고 나온 50대 주부는 "세금 제일 적게 내게 해준다는 후보를 선택했다. 보수든 진보든 서민경제를 잘 살피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혀야 한다"고 말했다.

9일 오전 대구 중구 성내2동 제2투표소가 마련된 대구 종로초등학교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9일 오전 대구 중구 성내2동 제2투표소가 마련된 대구 종로초등학교에서 시민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대구=김정석기자

반면 기존의 정치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진보정당 후보를 뽑았다는 시민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중구 성내2동 제2투표소가 마련된 대구 종로초에서 만난 신대수(55)씨는 "이번에 대한민국을 바꿔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대통령에 당선된 후보가 평화로운 정치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중구 대봉1동 제1투표소인 대봉1동 주민센터에서 투표한 프리랜서 박지수(27·여)씨는 "약자의 편에 설 후보를 뽑았다"며 "특정 집단만 잘 사는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지역구인 지역은 이런 목소리가 더욱 도드라지는 분위기였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수성구 범어2동 제3투표소(범어초)에서 만난 천운(38)씨는 "이번엔 과거 대통령들과는 다른 사람을 뽑았다"며 "원래 보수 성향의 후보를 뽑아 오다가 최순실 국정농단을 계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최근 복당한 홍의락 민주당 의원 지역구인 북구 구암동 제1투표소(구암고)에서 투표한 김영옥(44·여)씨는 "때가 덜 묻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며 "성실한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받고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9일 오전 대구 북구 관문동 제4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대구=김윤호기자

9일 오전 대구 북구 관문동 제4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대구=김윤호기자

한편 권영진 대구시장도 이날 오전 대구 수성구 신명여중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권 시장은 "대구시장으로서 과연 누가 무너진 우리 대구·경북의 자존심을 세우고 우리 지역의 발전을 적극 지원해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 투표했다"고 말했다.
대구=김윤호·김정석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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