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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마이클 윈터바텀의 영화가 ‘진짜’ 를 담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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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막 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전과 마스터클래스를 가지며 국내 영화팬들을 만난 영국의 마이클 윈터바텀(56) 감독. 53회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 등 3관왕을 차지한 '인 디스 월드'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후, 미군 포로 수용소의 비인간적 행태를 고발한 '관타나모로 가는 길' , 높은 노출수위로 논란을 일으킨 '나인 송즈' 등 문제작을 만들어온 그다. 이번 특별전에는 현실과 허구의 요소,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형식, 고전 소설, 콘서트를 둘러싼 청춘, 최근의 국제 분쟁 등 다양한 소재를 가로지르는 그의 작품 10편을 선보였다.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2002) ‘인 디스 월드’(2002) 같은 대표작은 물론, ‘쇼크 독트린’(2009) ‘벌거벗은 임금님’(2015) 등의 최근 다큐멘터리와 최신작 ‘온 더 로드’(2016)를 한자리에 모았다. 로드무비와 다큐성 강한 작품을 통해 영화라는 '길'을 유랑하는 그를 영화제 기간 중 만났다.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주인공,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최신작 ‘온 더 로드’는 영국의 록 밴드 ‘울프 앨리스’가 영국 투어를 하는 동안 신참 스태프인 에스텔(리 하비)과 조(제임스 매카들)를 중심으로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여주는 ‘다큐 드라마’다.
“1965년 밥 딜런의 영국 투어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돌아보지 마라’(1967, D A 페네베이커 감독)를 좋아해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투어를 계획 중인 밴드를 찾고, 그 스태프들을 만난 뒤, 에스텔과 조 역의 두 배우를 캐스팅했다. 신입 스태프 에스텔과 고참 스태프인 조의 눈을 통해 그 세계를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울프 앨리스가 실제 투어를 하는 동안 우리도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실제 상황 속에 배우들을 놓고 영화를 찍었다. 록 밴드와 스태프들의 진짜 삶을 포착하자는 콘셉트만 있었을 뿐,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전과 마스터클래스를 연 영국의 거장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라희찬(STUDIO706)]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특별전과 마스터클래스를 연 영국의 거장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라희찬(STUDIO706)]

-‘길 위에서’라는 영화 제목이 당신의 작품 세계를 비추는 키워드처럼 느껴진다.
“내가 로드무비를 많이 만드는 건, 단순한 구조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는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로드무비는 누군가 어딘가를 떠나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단순한 구조다. 그 안에서 그 삶의 중심이 어디에 놓이고, 자신이 떠나온 사람들과 새롭게 만난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지니는지 살펴보는 것이 흥미롭다.”

-당신의 로드무비 속 주인공은 결코 어딘가 정착하지 않는다.
“로드무비의 고전적인 이야기 구조는, 주인공이 여정을 떠나고 그 경험을 통해 뭔가를 배우는 식 아닌가. 실제 우리 삶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여정을 거치지만 그로부터 교훈을 얻거나 그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다. 그런 것 없이 자신만의 여정을 계속해 나갈 뿐이다.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로드무비 '온 더 로드'(2016), 실제 록밴드의 투어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 드라마다.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로드무비 '온 더 로드'(2016), 실제 록밴드의 투어 여정을 따라가는 다큐 드라마다.

-‘온 더 로드’를 비롯해,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 ‘나인 송즈’ 등 록 콘서트가 중요한 계기가 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콘서트는 특별한 경험이다. 청중 한 명 한 명이 무대 위 밴드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아주 사적인 것이다. 청중 개개인과 밴드 멤버들이 교감을 나눈다기보다, 청중이 일방적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 식이다. 일상에서는 그런 강렬한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특히 어떤 관계나 사랑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담기에는 노래가 영화보다 더 적절하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갖춰야 하고 그에 따른 결말을 맺어야 하지 않나. 사실 사랑에 있어서 그런 이야기는 가짜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만나 강렬한 무언가를 느끼거나, 그 관계가 사라진 뒤 그 기억을 돌아보는 건, 이야기가 아니라 순간의 감정에 가깝다. ‘나인 송즈’는 그 감정을 노래처럼 포착하고자 한 작품이다. 영국 런던에서 보낸 일 년이라는 한정된 시공간에, 아홉 번의 콘서트와 두 주인공이 나누는 아홉 번의 섹스를 병치시켰다.”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린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 ‘나인 송즈’, 최근 국제 정세의 이슈를 다큐멘터리 같은 스타일로 그린 ‘인 디스 월드’ ‘관타나모로 가는 길’ 등 영화의 소재가 다양하다. 신문을 읽을 때 어느 면부터 보나.
“창피하게도, 스포츠 면부터 본다. 하하. 나이가 들수록 머리를 비울 시간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정치면을 읽는다. 정치 기사를 읽으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웃음).”

-누군가는 영화를 ‘환상과 꿈의 매체’라 말한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올바른 방법, 그릇된 방법 같은 건 없다. 나로서는 영화사의 통제 아래 모든 게 허구인 영화를 만드는 건 전혀 흥미 없다.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는 게 더 흥미롭다. 진짜 사람들은 거품 속에 살지 않는다. 그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도시에 살며, 어떤 말을 하고, 친구가 누구고, 어떤 일을 하는지 등등의 모든 요소가 그 사람을 형성한다. 진짜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주인공을 실제 상황, 진짜 세계에 던져 놓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영화 안에 실제와 허구가 섞이는 순간이 좋다. 10대 시절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를 볼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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