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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가 아니라 동반자를 선택하는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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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윤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김종윤경제부장

김종윤경제부장

내일 대한민국 유권자는 새 역사를 쓴다. 누가 당선되든 19대 대통령은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국가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절차지만, 그렇다고 국민을 통치할 제왕을 뽑는 행사는 아니다. 흔히 대선을 리더(지도자)를 뽑는 선거라고 하지만 이 또한 적절한 말은 아니다.

실체 없는 리더십 아래서 과거 대통령은 과다한 권위 누려 #9일, 권력에 취하지 않고 새 길 찾아 나서는 동반자 골라야

대통령(大統領)이라는 용어는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번역한 말이다. 미합중국이 탄생하기 전인 1774년 9월 필라델피아 대륙회의에서 처음 사용됐다는 게 정설이다. 주(州) 대표들이 모여 연방 국가 건립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회의를 이끌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의장을 선출하면서 그를 프레지던트로 불렀다. 회의를 주재한다는 ‘프리자이드(preside)’에서 나온 말이다. 19세기 일본에서 프레지던트를 ‘대통령’으로 번역해서 쓰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역할과 위상은 달라졌다. 지금 대통령을 회의나 주재하는 인물로 보는 사람은 없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은 입법부 및 사법부에 대한 대통령의 상대적 우위를 보장한다. 대통령은 비상 권한도 갖는다. 긴급명령권·헌법개정제안권·국민투표부의권 등이다. 헌법(66조)이 대통령을 국가원수이며, 행정부의 수반으로 규정하는 이유다.

이렇게 막강해진 최고 권력자를 묘사하기 위해 쓰이는 언어가 ‘리더십’이다. 과거 대통령의 리더십은 실체가 없었다. 리더를 떠받치기 위한 포장에 그쳤다. 그 포장 아래에서 대통령은 과다한 권력과 권위를 누렸다. 결과는 ‘대통령은 다스리고, 국민은 복종한다’는 왜곡된 주종 관계였다. 리더십이라는 용어가 부린 마법이다.

이런 리더십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 기존의 신문·방송 전통 매체에다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레이더망은 더 강해졌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에게 드러났다. 집중 감시와 공개 때문에 대통령은 과거 같은 신비로움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만 해도 그렇다. 관저에 칩거하는 그의 모습은 나라를 위한 심려의 한 방식으로 이해됐다. 착각이었다. 구중궁궐에 자신을 가둬 두고 불통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일상이 드러났다. 권위는 사라졌고 리더십은 붕괴됐다.

이제 지도자라는 발광체는 대중의 냉소 어린 시선에 빛을 잃게 됐다. 9일 유권자의 73.94%가 한 표를 행사할 차례다. 이미 1107만2310명(유권자의 26.06%)이 첫 페이지를 열었다. 전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 지형에서 후보끼리 정책 대결은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적폐 청산이든, 통합 정치든, 보수 혁신이든 구호는 난무하지만 후보들은 정치를 게임으로 보고 이기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후보의 카리스마가 하늘을 찔러도 그것은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할 뿐이다. 전지전능한 대통령은 없다. 대통령은 초인이 아니다. 내일 선출될 한 명도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유권자는 선출된 이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잘하는지 감시하면 된다.

문제는 어떤 기준으로 차선(次善) 또는 차악(次惡)이나마 선택할 것인가다. 우선 후보의 주변 인물을 살피라고 권하고 싶다. 얽히고설킨 국정을 대통령 혼자서 풀 수 없다. 지금 한반도는 안보 위기, 경제 위기, 국론분열 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런 실타래를 풀겠다고 후보 주변에 모인 이들이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하이에나 떼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이들이 당선인에게 직언할 수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다음으로, 후보가 새 길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눈여겨보자. 제왕적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 그런데도 후보가 과거의 길만 따라가겠다는 모습을 보인다면 고려 대상에서 지워라. 권력에 취해 군림하는 소인배를 옹립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난 길을 향할 유권자는 없을 게다. 땅에는 원래 길이 없다. 그 바닥을 밟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질 때 새 길이 된다. 9일은 우리와 함께 새 길을 떠날 수 있는 동반자를 선택하는 날이다.

김종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