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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마이너스 … 속 터지는 채권형 IR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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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2015년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가입했던 회사원 박모(35)씨는 증권사에서 운용 보고서를 받을 때마다 속이 쓰리다. 지난해 말 수익률이 -6% 대로 떨어진 뒤 올 들어서도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판매하는 펀드 중 적립금 규모가 가장 컸던 채권혼합형 펀드를 선택한 게 결과적으로 투자 실패의 이유였다. 세액공제 혜택을 노리고 가입하긴 했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정기예금이나 가입해둘 걸’이란 생각이 든다. 박 씨는 “지금이라도 펀드를 갈아타고 싶지만 어떤 상품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개인형 IRP로 노후자금을 마련하라던 금융회사 마케팅에 속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직장인들의 노후 대비에 비상등이 켜졌다. 3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6년 퇴직연금 적립 및 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 적립금의 연간 수익률은 1.58%에 그쳤다.

떨어지는 채권값 대응 못해 #실적배당형 수익률 -0.13% #“트렌드 따라 펀드 교체 바람직”

같은 기간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잔액 기준)인 1.63%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이다. 이중 전체 적립금의 대부분(89%)을 차지하는 원리금보장상품 수익률은 1.72%로 양호했다. 이에 비해 원리금 보장이 안 되는 실적배당형상품 수익률이 -0.13%로 나타났다. 노후 대비를 위한 수익을 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원금을 까먹었다.

퇴직연금 운용 주체가 회사인 경우(확정급여형)보다 근로자 개인일 때(확정기여형, 개인형 IRP) 수익률이 더 낮았다. 회사가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은 실적배당형 상품 수익률이 1.43%로 나쁘지 않았다. 반면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은 평균 -0.52%, 개인형 IRP는 -0.56%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DC형과 개인형 IRP는 가입자의 노력에 따라 성과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당수 가입자는 퇴직연금 계좌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DC형 가입자 가운데 한 번이라도 가입 상품을 바꿔본 경우는 10%가 되지 않는다. 시장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펀드 교체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시장 급변기에 수익률이 요동치게 된다. 지난해 유독 실적이 저조했던 것도 시장금리가 올라서 채권값이 떨어지는 시기인데도 적립금이 여전히 채권형·채권혼합형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펀드에 투자된 퇴직연금 적립금(9조5000억원) 중 85%는 채권형이나 채권혼합형에 투자됐다.

최형준 한국투자증권 퇴직연금영업1부 팀장은 “가입자들이 막연히 장기투자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시장 트렌드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면 수익률이 떨어진다”며 “무작정 장기 투자하기보다는 관심을 가지고 포트폴리오를 바꿔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퇴직연금은 장기 투자상품이기 때문에 지난해 연간 수익률만 가지고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기간을 5년으로 늘려잡으면 실적배당형 상품의 연환산 수익률은 3.05%로 원리금보장 상품(2.82%)을 웃돈다. 분산투자로 리스크를 잘 관리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실적배당형 상품의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다. 권오상 금감원 연금금융실장은 “은퇴까지 시간이 남아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상품 배분을 잘 해서 수익률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금융회사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품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사업자별 과거 수익률과 수수료율 등 비교공시된 정보를 잘 따져보고 결정할 것”을 조언했다.

각 금융회사별 지난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각 금융협회 홈페이지에서 공시한다. 모든 업권의 5년 또는 8년 장기수익률은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종합안내 사이트(pension.fss.or.kr)에서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다.

DC형 실적배당 상품을 기준으로 했을 때 5년 연환산 수익률(2016년 말 기준)이 높은 곳은 IBK연금보험(3.98%), 신영증권(3.92%), NH투자증권(3.69%) 순이었다. 8년 수익률은 한국투자증권(6.47%), 교보생명(6.46%), 메트라이프생명(6.34%)이 높게 나타났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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