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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아침 식사 하셨나요?"…10년째 1000원 밥상 선물하는 식당

중앙일보

입력

만나김치식당을 운영하는 김일춘씨가 2일 오전 식당에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만나김치식당을 운영하는김일춘씨가 2일 오전 식당에서 식사준비를 하고 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2일 오전 7시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양촌리의 한 식당. 새벽 일을 마친 환경미화원 3명이 빈 접시에 열무김치·호박무침·고추멸치볶음 등 4~5가지 반찬을 푸짐하게 담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공깃밥 한 그릇과 구수한 된장국이 상에 오르자 먹음직스러운 아침 밥상이 차려졌다. 식당에는 출출한 배를 채우려는 출근길 회사원과 자영업자, 작업복 차림의 일용직 근로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일춘·박영숙씨 부부 2008년부터 1000원에 아침 식사 제공 #환경미화원·일용직 노동자·회사원들에게 든든한 한끼 #손님들 양껏 먹고 1000원 짜리 지폐 바구니에 넣고 가 #김씨 부부 "1000원은 고맙다는 마음의 징표, 오히려 손님께 감사"

식당 한구석에 놓인 노란색 바구니 안에는 1000원짜리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말없이 놓고 간 돈이다. 오순균(55)씨는 “새벽에 음식물 쓰레기 수거를 마친 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이 식당을 자주 찾는다”며 “단돈 1000원에 밥과 반찬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아침 끼니 걱정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에 있는 만나김치식당은 1000원에 백반을 먹을 수 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에 있는만나김치식당은1000원에 백반을 먹을 수 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10년째 아침마다 '1000원의 밥상'을 선사하는 식당이 있다. 김일춘(68)·박영숙(63·여)씨 부부가 운영하는 ‘만나김치식당’에 가면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단돈 1000원에 아침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 각종 김치와 나물·무채 등 반찬과 국이 제공되고 공기밥도 양껏 먹을 수 있다. 반찬과 국은 매일 메뉴가 바뀐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손님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평일 아침 30여 명의 손님이 식사를 해결하고 주말에는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뒤 등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몰려 100명이 넘기도 한다.

이 부부가 1000원 밥상을 제공한 건 2008년부터다. 박씨는 “1990년부터 김치 제조·판매 사업을 시작한 뒤 직접 만든 김치도 홍보하고 안 팔린 묵은 김치를 활용하기 위해 2006년 식당을 열게 됐다”며 “사업이 번창하면서 주변 분들에게 보답할 길을 찾다 2008년 말 무료로 아침밥을 제공하게 된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만나김치식당 한 켠에 놓인 노란색 바구니 안에 1000원 짜리 지폐가 쌓여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만나김치식당 한 켠에 놓인 노란색 바구니 안에 1000원 짜리 지폐가 쌓여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공짜로 주던 백반에 1000원의 값을 매긴 건 밥을 거저 먹으면 민망하다는 손님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다. 박씨는 “무료 식사를 제공한 뒤 2주가 넘어도 사람들이 식당을 많이 찾지 않아 이유를 물었더니 ‘공짜로 주니까 오히려 미안해서 못오겠다’는 말을 했다”며 “한 푼이라도 내면 더 떳떳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한 손님의 권유로 1000원을 받기로 했다”고 했다.

이 식당은 아침 식사 시간 외에 묵은지 찌개와 돼지 주물럭, 묵은지 오리구이 등을 판매한다. 아침 밥은 부인 박씨가 밤 늦게까지 국과 반찬을 미리 준비해 놓으면 남편 김씨가 오전 5시에 밥을 지어 준비한다. 1000원 밥상은 설과 추석 명절을 제외하고 매일 제공된다.

손님들이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김씨 부부는 무심한 척 주방 안을 청소하거나 재료를 다듬는다. 김씨는 “혹여 1000원짜리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길 사람들이 있을까봐 지폐 바구니만 놓고 식사는 자율적으로 드시게 한다”며 “돈을 내는 건 손님들의 자유다. 1000원은 밥을 잘 드셨다는 마음의 징표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춘씨가 1000원짜리 아침 밥상을 보여주고 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김일춘씨가 1000원짜리아침 밥상을보여주고 있다. 청주=프리랜서 김성태

오랫동안 1000원 밥상을 제공하다 보니 고마움을 표시하는 손님도 있다. 5년 전 식당을 자주 찾던 50대 남성은 볼펜 한 뭉치를 식당에 선물했다. 박씨는 “매번 고맙다는 말만 하던 손님이 집에서 쓰거나 기념품으로 받은 볼펜을 주섬주섬 모아 선물로 주셨을 때 뭉클했다”며 “1000원 밥상이 어려운 이웃들과 시민들에게 든든한 한끼를 제공하고 위안까지 준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말했다.서울에 사는 한 블로거는 청주를 직접 방문해 아침 밥을 먹은 뒤 "진짜로 1000원 식당 맞네요"라며 박씨에게 확인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이 식당 단골이라는 사회복지사 이정수(43·여)씨는 “밥 한공기 값으로 매일 따뜻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만나김치식당은 지역의 자랑”이라며 “이웃을 위한 봉사의 마음이 없다면 1000원 밥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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