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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모스다] ⑩ 경신(更新)하러 가던 서킷, 갱신(更新)하러 가다 (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更新'

'更新'이라는 한자는 두 가지 소리로 읽힌다. '이미 있던 것을 고쳐 새롭게 함'이라는 기본적인 의미는 같지만, 그 쓰임은 다르다. 이를 '경신'이라고 읽으면, '종전의 기록을 깨뜨림'이 되고, '갱신'으로 읽으면, '존속 기간이 끝났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서킷을 찾는 사람들은 어떠한 이유로 이곳을 찾는 것일까. 대체로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빠른 기록을 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경신'이 아닌 '갱신'을 위해 서킷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서킷에서 차를 '빠르게' 타기 위함이 아니라 '오래' 타기 위함이다.

직장인 드라이버라면 누구나 한번쯤 퇴근 후 서킷으로 직행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직장인 드라이버라면 누구나 한번쯤 퇴근 후 서킷으로 직행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진 : 박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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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박상욱 기자

사진 : 박상욱 기자

장미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근로자의 날인 1일, <모터스포츠 다이어리> 10회차를 쓰려고 고민하던 도중 인제 스피디움 라이선스를 꺼내어 멍하니 바라봤다. 큰일이다. 라이선스 갱신기간이 5월 2일로 끝난다. 내일이다. 2일은 주요 대선후보 5인이 선거를 앞두고 마지막 TV토론을 벌이는 날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1일과 2일 모두 출근이다. 수백km 떨어진 강원도 인제군을 다녀오는 것은 무리다. 잠이 보약이다. 그런데 라이선스가 만료되면 언제든 불시에 서킷을 향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오직 100% 취미였던 모터스포츠는 <모터스포츠 다이어리> 덕분에 취미와 업(業) 반반이 됐다. 서킷을 달릴 자격도 없이 연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잠을 줄이는 수밖에.

2일 새벽 2시 반, 격무를 마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이 아닌 인제로 향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목을 잡아 예정보다 30분 늦은 출발이다. 예기치 않은 일정이었기에 여벌의 옷은 없다. 딱딱한 구두에 셔츠와 칼주름 잡힌 정장바지 차림. 전국이 때 아닌 초여름 더위를 겪은 덕에 시큼한 땀 냄새도 나는 듯 하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사진 : 박상욱 기자

서킷에 도착하자 동이 트려는지 하늘이 푸르스름하다. 됐다. 이로써 갱신은 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두시간 남짓 지났을까. 알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쪽잠을 자고 나니 온몸이 쑤신다.

화창한 날씨에 햇볕은 아침부터 따갑다. 머리엔 까치집이 만들어졌고, 셔츠는 잔뜩 구겨졌다. 딱딱한 구두 때문에 발은 아프지만 덜 깬 잠 덕에 두둥실 떠오른 기분이다. 라이선스 갱신 접수를 하고나니 필기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 : 박상욱 기자

사진 : 박상욱 기자

문제는 총 20문항. 필기시험을 떨어지면 이론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 서킷의 총 길이가 몇 km인지, 몇개의 좌코너와 몇개의 우코너로 구성됐는지 등 서킷 전반에 대한 정보를 비롯해 안전과 관련된 각종 상황 대처법, 깃발신호의 의미 등을 묻는 질문이다.

20분의 필기시험이 끝나고, 시험지를 제출했다. 잠시 기다리면 채점 결과가 나온다. 70점은 반드시 넘어야 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다. 몇분이 지났을까. 제출한 시험지 위에는 정말 정직하게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와 가위표가 그려져 있다. 95점, 합격이다.

이제 실기 주행에 나설 차례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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