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공일의 글로벌 인사이트

새 대통령 취임 직후, 서둘러 해야 할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이제 며칠 후에 취임하게 될 새 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국내 정치와 외교 양 측면의 가장 어려운 여건 속에서 대통령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우선 전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이후 현상유지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던 무기력한 행정 여건 속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장단기 국정운영 로드맵도 없이 국정에 임해야 한다. 더욱이 ‘촛불’과 ‘태극기’로 상징되는 심한 국론 분열 가운데 끊임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이에 대한 미국 신행정부의 강한 대응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전 이래 최악의 안보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한미 정상회담 서둘러 "한미 동맹, 미 국익에 큰 도움” 설득하고 #정부조직개편 전 ‘한미 FTA 조정위’ 설치로 통상이슈 대비해야

따라서 새 대통령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서둘러 해야 할 일 두 가지만 꼽는다면 첫째는 흔들림 없는 한·미 동맹 관계의 재확인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상호신뢰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정상회의 개최다. 둘째론 현재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는 정부 기능을 정비하고 공직자들이 소신을 갖고 능동적 행정 행위를 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인센티브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부처 간 소통과 협조는 고사하고 각 부처의 소통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여건하에서 좋은 정책이 나올 수도 없고 제대로 집행되기도 어렵다.

그럼 한·미 정상회담은 왜 시급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의회마저 북핵 문제를 미국에 가장 ‘임박한 위협’이자 미국의 최우선 외교안보 이슈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이익을 위해 군사력도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일방주의(unilateralism)적 특성을 지닌 리더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전에 느닷없이 “김정은과 만나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우리를 제쳐두고 갑자기 김정은과 직접 만나 협상에 임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취임 후 첫 100일간 트럼프는 외교와 우방의 관계도 제로섬(zero-sum)적 거래로 본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 왔다. 이러한 사실들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서도 동맹 관계 유지에 의견 상충이 있을 때 “한·미 동맹 관계의 결속력을 시험하려 하지 말라”는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상황하에서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관한 거론을 삼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지난번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미국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그리고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미 국무부는 그의 용어 선택을 큰 뜻 없이 했다고 한 바 있으나, 우리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느닷없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설치비용을 한국이 지불해야 한다는 엉뚱하게 들리는 소리를 한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정(재협상) 문제와 엮어 중국의 북핵 제재 협조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맹국의 방위기여금 인상을 얻어낸 경우처럼 통상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포함하는 패키지 딜을 위한 트럼프식 협상 전략으로 보인다.

따라서 새 대통령은 취임 후 빠른 시일 내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의를 가져야 한다. 물론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빈틈없는 정지 작업이 있어야 한다. 일본의 아베 총리와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의를 통해 얻어낸 게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대통령은 흔들림 없는 한·미 동맹 관계의 유지에 대한 강한 의지와 함께 이 지역에서 한국과의 굳건한 동맹 관계 유지가 미국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펴야 한다. 특히 이 지역에서 재부상하는 중국의 패권국가적 전략이 미국과 한국의 전략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한 인식을 같이하는 일도 중요하다.

취임 직후 새 대통령의 두 번째 우선 국정과제로 정부 기능의 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정부 조직 개편과 함께 개헌 사안인 청와대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들 수 있다. 물론 현재의 정부 통상 조직 개편은 정부 기능 정상화에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시급히 추진돼야 할 한·미 FTA 재협상 작업은 정부 조직 개편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장관급 인사의 책임하에 ‘한·미 FTA 조정위원회’(가칭)를 국무총리 직속으로 한시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부 내 관련 부처와 민간 이해 당사자 간의 조정과 보상·협력을 위해 반드시 기획재정부의 참여가 있어야 한다. 새 대통령 취임 후 수개월은 대통령 리더십의 성패와 국가 명운(命運)이 좌우될 중요한 역사적 순간이 될 것이다.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