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내셔널] '현해탄 스캔들' 윤심덕을 경주서 만나다

중앙일보

입력 2017.05.03 00:01

지난 3일 오후 11시에 시모노세키(下關)를 떠나 부산으로 향한 관부연락선이 4일 오전 4시경에 쓰시마(對馬島)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 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으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수색하였으나 그 종적을 찾지 못하였으며 그 선객 명부에는 남자는 전남 목포시 북교동 김우진이요, 여자는 윤심덕이었으며, 유류품으로는 윤심덕의 돈지갑에 현금 140원과 장식품이 있었고 김우진의 것으로는 현금 20원과 금시계가 들어 있었는데 연락선에서 조선 사람이 정사(情死·연인끼리의 동반 자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더라. - <동아일보 1926년 8월 5일자 사회면>

1926년 8월 4일 새벽에 벌어진 동갑내기(1897년생) 연인의 자살 소식은 조선과 일본을 발칵 뒤집어놨다. 윤심덕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성악가로 1920년대 신여성의 대표인물이다. 김우진은 신극운동을 하던 전라도 거부의 아들이었다. 윤심덕은 미혼이었고 김우진은 유부남이었다. 이들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동반자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의 찬미' 앨범 가사지에 실린 윤심덕의 사진. [사진 문화콘텐츠닷컴]

'사의 찬미' 앨범 가사지에 실린 윤심덕의 사진. [사진 문화콘텐츠닷컴]

조선의 모든 신문은 두 사람의 선상 실종을 '조선 최초의 선상(船上) 정사(情死)'로 단정했다. 유부남이긴 했지만 부잣집 아들에 배운 것도 많으며 인물도 빼어난 당대의 '엄친아'가 조선 최고의 소프라노였던 당대의 스타와 함께 바다에 뛰어든 사건은 세간의 화제였다. 더구나 윤심덕이 실종된 직후 그녀가 마지막으로 취입한 노래가 유성기에 실려 곳곳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사의찬미' 오리지날 유성기 음반 첫 전시
경주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연말까지

윤심덕-김우진 '현해탄 스캔들'도 재조명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헝가리의 민족 작곡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Donauwellen Walzer)'에 가사를 붙인 노래 '사(死)의 찬미'는 당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윤심덕이 김우진과의 죽음을 결심하고 부른 곡으로 널리 알려지면서다. 당시로는 경이로운 10만장 판매 기록을 세웠다.

이 유명한 노래가 담긴 유성기 음반이 경북 경주시 보문관광단지 내 위치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마련된 '윤심덕 사의 찬미 특별기획전'에서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개관 2주년 기념으로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이번 기획전시에선 사의 찬미 오리지널 유성기 음반이 처음으로 전시됐다. 윤심덕을 '이심덕'으로 잘못 표기해 발매된 유성기 음반 1장과 이름을 바로잡고 다시 발매된 유성기 음반 1장이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 2015년 10월 일본 경매 사이트에서 1억원 가까운 경매가를 내고 낙찰 받았다고 한다. 유성기 음반 특성상 재생을 했을 때 훼손될 수 있어 눈으로만 볼 수 있다. 전시는 올 연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경북 경주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윤심덕 사의 찬미 특별기획전.' 사의 찬미 유성기 음반 오리지널 버전이 전시돼 있다. 경주=김정석기자

경북 경주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윤심덕 사의 찬미 특별기획전.' 사의 찬미 유성기 음반 오리지널 버전이 전시돼 있다. 경주=김정석기자

경북 경주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윤심덕 사의 찬미 특별기획전.' 경주=김정석기자

경북 경주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윤심덕 사의 찬미 특별기획전.' 경주=김정석기자

경북 경주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윤심덕 사의 찬미 특별기획전.' 경주=김정석기자

경북 경주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윤심덕 사의 찬미 특별기획전.' 경주=김정석기자

이번 기획전에선 윤심덕이 사의 찬미와 함께 취입했던 희귀 음반 '추억'도 들어볼 수 있다. 윤심덕의 출생, 음악적 재능, 음악세계와 현해탄에서 투신 자살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 등이 함께 소개돼 재미를 더한다. 사의 찬미와 원곡인 다뉴브강의 잔물결, 현대 대중음악가들에 의해 다시 태어난 사의 찬미를 들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다.

한편, 윤심덕은 1897년 1월 26일 평양에서 기독교 가정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윤심덕 위로는 언니 윤심성이 있었고, 아래로는 여동생 윤성덕, 남동생 윤기성이 있었다. 윤심덕은 1907년 진남포 사립여학교에 들어가 서양식 학교교육을 시작했다. 이후 평양사립 숭의여학교,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 이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해 사범과를 우등으로 18년에 졸업했다.

윤심덕은 키가 크고 목이 긴 매력적 용모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잡지에선 그를 두고 "스타일은 그야말로 동양여자로서는 구할 수 없는 맵시 좋은 스타일의 소유자"라고 묘사했다. 미모와 다재다능함에 덧붙여 윤심덕은 성격마저도 쾌활했다고 전해진다. 잡지 신여성 23년 10월호는 "(윤심덕이)누구를 만나도 존경어를 쓰는 일이 별로 드물다"고 전했다.

19년 윤심덕은 조선 총독부가 실시하던 관비 유학생 시험에 최초로 여자장학생으로 뽑힌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쿄(東京)음악학교 사범과에서 성악을 전공하게 된다. 유학 중인 21년에는 학생 서클 '극예술협회'가 주축이 된 '동우회' 순회 연극단의 일원이 돼 국내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을 한다. 이 극예술협회를 이끌던 사람 중 한 명이 극작가 김우진이었다.

윤심덕은 일본 생활을 마치고 23년 귀국해 음악교사와 소프라노로 활동한다. 그 해 6월 김우진의 고향 목포에서 콘서트를 하고, 7월에는 경성여고보 동창회 후원 음악회, 10월에는 종로청년회 주최 추기음악회 2부 독창 출연 등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 차차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 나간다.

하지만 정통 서양 성악으로는 곤궁한 삶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그는 결국 대중가수의 길로 접어들었고, 연극단체 토월회에 들어가 배우를 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윤심덕은 '함경도 출신 재력가와 결혼한다' '장안 거부의 애첩이 됐다' 등 각종 스캔들에 시달렸다. 비슷한 시기에 귀국한 김우진은 문학과 연극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고민하다 26년 가출해 일본으로 간다.

윤심덕(왼쪽)과 김우진. [사진 문화콘텐츠닷컴]

윤심덕(왼쪽)과 김우진. [사진 문화콘텐츠닷컴]

윤심덕도 그 해 7월 일본 오사카의 닛토(日東)레코드회사에서 음반 취입 의뢰를 받고 일본으로 향했다. 윤심덕은 레코드 취입을 마친 8월 1일 음반사 사장에게 특별히 한 곡을 더 녹음하고 싶다고 청했다. '사의 찬미'였다. 앞서 윤심덕은 김우진에게 오사카로 오라는 전보를 보냈다. 오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둘은 결국 8월 3일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에 함께 올랐다.

윤심덕의 이야기는 91년 김호선 감독의 '사의 찬미'라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등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최근 영화 '해어화'에서도 배우 천우희가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가수 이미자·김정호·한영애·나윤선 등이 사의 찬미를 리메이크해 부르기도 했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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