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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라는 선거 변수의 오늘과 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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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김환영논설위원

김환영논설위원

크게 보면 우리는 어린이·젊은이·늙은이 중 한 가지로 불린다. 어린이·젊은이는 대체적으로 긍정적, 중립적 느낌을 준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늙은이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신문 기사를 보면 늙은이는 주로 “우리 늙은이들도 변화 앞에서 싫다고 도리질만 할 것이 아니라···”와 같은 인용문에 주로 나온다. 만약 기사에 “통계청은 지난해 13.2%였던 65세 이상 늙은이 비율이 2030년 24.5%, 2040년 32.8%, 2060년 41%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고 쓴다면 상당히 어색할 것이다.

개인은 생리·사회적 이유로 보수화 #30세 때 정치 성향이 평생 유지돼 #정치 공동체의 미래는 진보의 편 #연령 몰표, 새 부담으로 작용할 듯

언어생활은 바뀐다. 1960년대 ‘블랙은 아름답다(Black is beautiful)’ 운동 이래 ‘블랙’은 결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깎아내리는 말이 아닌 게 됐다. ‘늙은이는 아름답다’ 운동은 어떨까. 충분히 당위성이 있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늙어 봤나, 우리 늙은이들은 젊어 봤다”고 당당하게 말하자. 늙은이를 늙은이라고 하지 달리 뭐라고 부를 것인가.

늙은이에 대한 사전적, 사회적 정의에도 수정을 가해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늙은이는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중년(中年)에 대해서는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고 돼 있다. 요즘 언어 감각과 맞지 않는다.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에 새로운 말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

이번 대선은 연령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거의 모든 사회적 변수는 정치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모든 정치적인 변수는 선거 변수다. 다만 그 경중(輕重)이 다르다. 경중은 계속 변한다. 이번 5월 9일 대선 결과에 따라 상대적으로 지역은 지고 연령은 뜰 가능성이 있다. 지역 변수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던 연령 변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부상할 개연성이 있다.

대체적으로 젊은 층은 이상주의적·진보적, 노년층은 현실주의적·보수적이라고 한다. 물론 보수적 젊은 층과 진보적 노년층이 있다.

다 사람 나름이다. 사람은 통계가 아니다. 하지만 노년층의 보수 정당 지지는 세계 보편적인 경향성이다. 영국 젊은 층은 노동당·자유민주당·녹색당을, 노년층은 보수당을 지지한다. 미국 젊은 층은 민주당, 노년층은 공화당을 찍는 경향이 있다.

노년층은 한때 젊었던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가 진행된다. 우리 주변에도 학교 다닐 때 골수 운동권이 사회에 나와서 보수로 전향하는 경우가 꽤 눈에 보인다. 왜일까. 생리적인 현상이라는 주장이 있다. 사회적인 현상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특히 어버이가 됨으로써 보수화가 시작된다. 애들을 키우다 보면 세상이 갑자기 위험한 곳으로 보인다. 안전·안정이 중요한 개인적인 가치가 된다.

정보처리 능력은 20대 중반이 피크인데, 나이가 들수록 정보처리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세상을 흑백으로 보는 경향, 어떤 사안에 대해 단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에 반론도 만만치 않다. 나이가 들면 보수적이 된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신화라는 것이다. 노년층은 오히려 더 진보적, 관용적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보수로 남는 노년층의 경우에도 강경 보수에서 유연한 보수로 바뀐다는 것이다.

30세에 형성된 정치적인 정체성이 40, 50, 60세에도 유지된다는 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30세였을 때 보수면 평생 보수, 그때 진보면 평생 진보다.

프랑스 정치가·역사가 프랑수아 기조(1787~1874)는 이 30이라는 나이에 주목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세에 공화주의자가 아니면 심장이 없다는 증거, 30세에도 공화주의자면 머리가 없다는 증거다.” 기조의 말을 패러디해 ‘공화주의자’ 대신에 ‘마르크스주의자’를 쓴 말도 생겨났다. 기조의 말은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보수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기조의 시대에는 ‘머리가 나쁜’ 사람만 공화주의자로 남아 있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에는 세계의 대다수가 공화제하에 살고 있다. 군주제 지지자는 사라졌다.

나이가 많은 지도자가 통치하는 과두제인 장로제(長老制, gerontocracy) 성향은 미국의 경우 19세기 초반부터 희미해졌다. 하지만 지난번 미국 대선에 나온 유력 후보들인 힐러리 클린턴(69), 버니 샌더스(75), 도널드 트럼프(70)는 모두 ‘늙은이’들이었다. 정치를 둘러싼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항상 진화한다. 그래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나면 정당의 정강(政綱)이나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당장 코앞에 닥친 대선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남진·남정임 주연의 1969년 영화 ‘억울하면 출세하라’를 패러디한 ‘억울하면 투표하라’가 생각난다. 좌파·우파, 보수·진보를 떠나 방심은 금물이 진리다. 또 1·3·5번 찍은 노년층, 2·4번 찍은 젊은 층이 선거 후 통계에 많이 잡히면 좋겠다. 갈수록 ‘연령 정치’는 피할 수 없다. 서서히 저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역 몰표 시대’를 연령별 몰표 현상이 대체한다면 사회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환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