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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조 쓰고도 출산후퇴 … 새 대통령, 아베처럼 직접 나서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25일 낮 서울의 한 유명 산부인과 병원 대기실. 좌석 12개가 텅 비어 있고 TV에서 나오는 야구 중계 소리만 요란하다. 병원의 한 직원은 “예전에는 외래진료를 보려면 2~3주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올해는 당일에 방문해도 진료를 보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산부인과병원에선 올해 출산 아동 수가 사상 최저를 기록할 것이라는 예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2005년 합계출산율 1.08명을 계기로 2006년부터 1~3차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을 내놨지만 출산율은 16년째 초저출산(1.3명 이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1989년 출산율 1.57명)이나 싱가포르(87년 1.62명)처럼 저출산 문제를 국가 존망을 좌우할 어젠다로 인식하고 지난해까지 102조4000억원을 썼는데도 출산율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인구 5000만 지키자 #저출산 예산 80% 보육에만 편중 #출산율 10년 넘게 나아지지 않아 #일본선 총리실 저출산 대책 챙겨 #한국은 복지부 2개 과에서 담당 #지금 10대, 청년 됐을 때 내다보고 #장기적 정책 만들어 추진해야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투입 예산의 80%가량이 보육에 편중돼 있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의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보육 예산이 늘어났으며, 박근혜 정부때 0~5세 무상보육·무상양육이 완성됐다. 그런데도 ‘믿고 맡길 만한 시설’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보육교사 처우 개선이나 민간시설의 질 향상 등은 방치한 결과다.

또 대부분의 선진국이 도입한 아동수당이나 부모보험 같은 게 없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복지정책 지출은 1.38%로 프랑스(3.7%)·스웨덴(3.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들 국가와 달리 육아휴직·유연근무제·출산휴가·질병수당·부모보험·한부모 지원 등에 쓰는 비용이 그만큼 적다 .

일·가정 양립도 풀리지 않는 숙제다. 육아휴직제도(2년 사용) 자체는 세계 최고지만 회사 눈치 보느라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육아휴직 사용률(41%)이 선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남성은 말할 것도 없다. 유연근무제 역시 마찬가지다. 월 60시간 미만 근로자, 캐디 등 특수고용직과 자영업자, 전업주부 등은 고용보험 가입 자격이 없어 육아휴직 사각지대에 빠져 있다. 권미경 육아정책연구소 정책연구실장은 “10년 전에 비하면 육아정책이 확대되고 예산도 증가했지만, 사회 분위기는 그만큼 따라오지 못했다”며 “지금도 육아휴직·탄력근무제 등의 제도가 있지만 ‘눈치 보인다’는 생각 때문에 이용률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핵심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두 차례밖에 주재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 산하 두 개 과가 전 부처의 저출산 대책을 챙기며 고군분투하지만 역부족이다. 일본은 총리실에 자녀육아본부(장관급 부처)를 두고 있고, 1억 총활약상(장관)이 본부장을 겸직한다.

1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안목의 대책도 필요하다. 지금 초저출산 원년(2005년) 세대인 중학생들이 청년이 됐을 때 저출산의 덫에 빠지지 않게 교육제도 개혁, 대학 진학률 낮추기 등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저출산 정책이 너무 보육·양육 지원 등 복지 위주로 갔다”며 “인구정책은 복지부 같은 실행 부처가 아니라 청와대나 국무조정실 같은 총괄기획 파트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또 “지금의 10대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 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장기적으로 정책을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백수진·이민영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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