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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바뀐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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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국민MC 송해부터 호주 출신 방송인 샘 해밍턴으로부터 “한심하다”고 비난받은 개그맨 황현희, 여기에다 지난 23일 대선주자 TV 토론회를 19금(禁)으로 만든 빌미를 제공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까지.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세상 바뀐 탓에 제대로 망신당한 사람들이다. 귀엽다고 동네 꼬마 고추 만지던 시절은 진작에 지났으며, 얼굴에 까만 칠을 하고 흑인 흉내내며 대놓고 낄낄대던 시대도 벌써 끝났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손주 같아서 고추 만졌다”고 말하고, “‘시커먼스’라는 사랑받던 개그도 흑인 비하냐”며 언성을 높인다. 내가 사는 세상은 분명 자기 손주라도 함부로 고추를 만지면 안 되고, 피부색을 웃음의 소재로 삼으면 눈총받는 2017년인데 어떤 이들은 여전히 1980년을 사는 것 같다. 심지어 ‘시커먼스’는 88올림픽으로 입국할 흑인 선수들이 문제삼을 수 있다는 이유로 올림픽 전에 이미 폐지된 코너 아닌가.

홍 후보는 여기 한데 엮여 억울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잘못한 일도 아니고 2005년에 쓴 책 때문에 무려 12년이나 지나서 이토록 공격을 받아야 하느냐며 말이다. 문제가 된 글 말미에 살짝 반성을 곁들였지만 무용담처럼 자서전에 스스로 언급할 정도로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는 성폭력에 지나칠 정도로 관대했다. 상대 여성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웬만한 폭력적 상황도 상남자 스토리로 포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땐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연히 내뱉은 말 한마디, 소셜 미디어(SNS)에 남긴 행적 하나하나에 성차별주의자나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려 곤경을 겪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을 과하게 반응하는 세상이 각박하다고, 또 불과 몇년 전까지 괜찮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용인받지 못하게 될 걸 어떻게 예측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게 걱정이라면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그냥 남에게 하지 않는 거다. 어른이든 애든 누가 내 고추 만지는 게 싫으면 나도 안 하면 된다. 내 찢어진 눈을 누가 놀리는 게 싫으면 나도 누구 피부색이 검다고 놀리지 않으면 된다. 내 생각에 아무리 ‘이 정도는 별문제 없다’ 싶어도 상대가 싫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하지 말자. 하나 더. 문제가 될 수 있는 일을 해놓고 자랑질은 절대 금물이다. 과거엔 책을 쓸 정도의 유명인 정도만 행적이 남았지만 이제는 누구나 SNS에 자기 생각과 행적을 남기는 시대다. SNS 기록은 미국 들어갈 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